완벽한 육즙과 풍미… 자꾸만 손이 가는 맛[이우석의 푸드로지]

  • 문화일보
  • 입력 2023-03-02 08:56
  • 업데이트 2023-03-0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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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기를 갈거나 다져서 만드는 햄버그스테이크. 대부분의 식당 메뉴판에 ‘함박스테이크’로 올라 있는 메뉴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완자

고기 다졌다가 다시 뭉쳐낸 것
중국에선 ‘완쯔’ 일본 ‘쓰쿠네’
서양은 ‘패티’ ‘미트볼’로 불려

우리나라 대표 요리로는 떡갈비
소고기 갈아 뼈에 붙인 ‘담양식’
소와 돼지 섞은 ‘송정리식’ 유명

고기·두부 섞어 부친 ‘돈저냐’
도시락 반찬·안주로 인기 여전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해남 ‘천일식당’의 떡갈비, 서울 연남동 ‘리우’의 갑오징어 완자, 고양시 ‘진미’의 난자완스.



북송조가 배경인 중국 3대 고전으로 꼽히는 ‘수호전(시내암 저)’에 나오는 장면이다. “살코기 열 근을 잘게 썰어라.” 제할(하급군관)이던 노달은 푸줏간을 운영하는 대관인 정가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이렇게 주문한다. 정가가 열심히 고기를 다져 내주자 다시 노달이 말했다. “다시 열 근을 썰되, 이번에는 비계로만 썰어다오.” 다음엔 “다시 연골을 열 근 썰어 내오라”고 했다. <중략> 소설 속 얘기지만 10세기 이전에도 중국에선 고기를 다져 요리에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만두였든 완자였든 식육을 물리적으로 가공하는 기술은 이처럼 일찍이 발달했다.

원래 인류는 채집이나 수렵으로 얻은 고기를 날것 그대로 뜯어 먹었다. 호모사피엔스가 아슐리안 주먹도끼(뗀석기)를 만들어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자를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 그랬다. 세월이 흘렀다. 재료를 보관할 때나 불에 익히기 전 크기를 조절하는 용도로 뼈나 돌, 나무 등 그 시대에 맞는 주방 도구를 개발, 사용했다. 이후 예리한 금속제 칼이 등장하면서 먹기 좋게 자르거나 심지어 다지는 기술이 생겨났다.

지금 생각하면 누구나 당연시하겠지만 도구 수준이 뒷받침되지 못했던 당시로선 굉장한 첨단기술이다. 뭔가 만들 때 화폐로 통용되던 구리를 써야 했던 청동기 시대엔 주방에서 청동제 칼을 쓴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철기시대 이후 철제 칼이 두루 보급된 이후에나 이러한 요리법이 발달했다. 특히 살코기를 발라서 다져낸 다음 다시 뭉쳐내는 도구와 기술이 고안된 것은 실로 고도화된 조리기술이 아닐 수 없다.

고기를 다졌다 다시 뭉쳐낸 것. 서양에선 패티(patty)나 미트볼(meatball), 우리나라에선 완자라 한다. 신기한 것은 정작 어원이 나온 중국에선 완쯔(丸子)라 쓰고 읽는데, 우리말을 한자 사전에서 찾아보자면 ‘음역(完子 또는 椀子)’돼 있다. 아무튼 완자 요리법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생각보다 널리 퍼져 있다.

우리는 완자 또는 돈저냐(동그랑땡), 떡갈비 등이 이에 해당하며, 일본에선 쓰쿠네, 또는 니쿠단고. 영미권에선 미트볼이 유명하다. 중국은 어디서나 완쯔로 통칭한다. 인도네시아 박소(Bakso), 태국 룩친무(Luk chin moo) 등도 있다. 그 유명한 스웨덴식 미트볼은 셰트불레(kottbulle), 그 옆 나라 노르웨이에선 셰트볼레(kjøttbolle)라 부른다. 네덜란드는 비터르발(Bitterbal), 게르만어파라 그런지 발음이 거개 비슷하다. 하지만 정작 독일에선 보통 프리카델렌(Frikadellen)이라 부른다. 미트볼의 원조격으로 꼽히는 튀르키예에선 쾨프테(Kofte)라 쓰고 읽는다. 노안이 있는 이라면 자칫 커피를 시키려다 미트볼을 사 먹는 수도 있겠다.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는 이유는 다진 고기 완자의 장점 덕이다. 가축 한 마리에서 얼마 나오지 않는 고급 부위 말고도 자투리 부위까지 알뜰하게 쓸 수 있어 고기를 크게 절약할 수 있다. 또, 이렇게 하면 부드럽고 연해서 먹기에도 좋다. 특히 기름기가 과하게 많거나 적은 부위를 서로 섞으면 적당히 식감이나 맛이 좋은 상태가 되니 육가공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만드는 방법은 각각 닮은 듯 다른데 같은 종류의 고기를 잘게 다져 뭉치기도 하고, 아예 다른 가축의 고기를 섞어서 만들기도 한다. 접착이 잘되도록 다른 재료를 섞기도 하는데 고기보다 기타 재료를 많이 쓰면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대표적인 것이 ‘빈대떡’이다) 손은 많이 가지만 그만큼 맛이 좋고 먹기 편하게 만들 수 있어 각국의 고기 완자 인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에선 대표 가정식 요리인 미트볼 스파게티에 반드시 쓰며, 특히 햄버거에 필수로 들어가는 패티로 아주 긴요하게 쓰이고 있다. 미트볼 하면 의외로 스웨덴이 유명한데 동글동글 빚어낸 미트볼에 그레이비 소스와 월귤잼을 곁들여 아침부터 일상적으로 먹는다. 세계적 가구 소품 전문점 이케아의 푸드 코트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유명해졌지만, 실은 튀르키예에서 건너온 음식이다. 18세기 초 스웨덴 국왕 칼 12세가 러시아(루스 차르)와의 대북방전쟁 당시 잠시 망명했었던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들여왔다고 알려졌다.

튀르키예에서 쾨프테는 케밥만큼이나 유명한 까닭에 다양한 형태가 있다. 완전 구형은 아니고 살짝 납작한 형태로 숯불에 구워내니 마치 떡갈비와 모습이 비슷하다. 불 향 가득한 쾨프테에 레몬과 매콤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중국의 완쯔는 이미 우리에게 유명하다. 중국음식점 대표 요리메뉴 중 하나였던 난젠완쯔, 즉 난자완스(南煎丸子)로 알려졌던 까닭이다. 이름처럼 중국 남부식으로 고기 완자를 부쳐 먹던 요리다. 식감이 떡갈비나 햄버거 패티와 비슷해 익숙하다.

우리나라에선 사실 많이 먹기로 완자보다 떡갈비가 유명하다. 갈아낸 고기를 떡처럼 뭉쳐낸 다음 넓적하게 눌러 그대로 불에 굽는다. 전남에 떡갈비로 유명한 곳이 세 군데나 있다. 담양군과 송정리(광주광역시), 그리고 해남군이 떡갈비로 명성을 떨치는 곳이다. 원래 궁중이나 반가에서 먹던 요리인 가리(갈비)구이에서 유래했으니 서울 음식이었어야 하나, 고관대작이 내려온 유배지를 중심으로 지방에 퍼져나간 듯하다. 손을 쓰지 않고 젓가락만으로 먹기 힘든 갈비구이를 미리 잘게 다져놓아, 밥상머리에서 품위를 잃지 않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설이 있다.

보통 ‘담양식’이라 하면 소고기만 써서 잔 칼집을 내거나 갈아낸 고기를 뭉쳐 뼈에 붙여 사용하고, ‘송정리 식’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뭉친 것을 패티처럼 눌러서 숯불 석쇠에 구워낸다. 이리 보면 울산 언양불고기 역시 떡갈비 스타일로 볼 수 있다.

대중적 인기가 높아지니 다채로운 종류가 파생됐다. 가래떡을 심처럼 박아넣은 정말 ‘떡+갈비’도 등장하고 돼지고기만 쓴 떡갈비도 생겨났다. 소 떡갈비보다 저렴하니 전통시장 등에서 메뉴로 많이 취급한다. 작게 빚어 계란옷을 입힌 돈저냐 역시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는 메뉴다. 돼지고기를 갈아 채소와 두부 등과 함께 빚었다가 전으로 부쳐내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을까. 도시락이나 일반 가정식 반찬, 막걸리 집 안주로 두루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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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나 양고기 등을 쓰기도 하는데 일본 야키도리 집에서 만날 수 있는 쓰쿠네가 대표적 닭고기 완자다. 세심하게 다져낸 닭고기 살을 꼬치에 두툼하게 발라 구워낸 것으로 닭고기 경단 격이다. 생선을 짓이겨 쓰면 어묵이고 닭을 쓰면 치킨너깃이다. 병아리콩을 갈아 만들면 팔라펠(Falafel)이 된다. 먹기 좋고 맛도 좋아지는 완자는 인류가 발명한 고기의 새 얼굴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떡갈비 백반 = 천일식당. 남도 떡갈비로 이름난 집이다. 해남읍에서만 쭉 근 100년째 영업했다. 개업 연도가 1924년이다. 소갈비에서 살만 발라내 자르고 다진다. 씹는 맛이 살도록 칼로만 다진다. 여기다 특제 육수와 간장, 설탕, 참기름을 섞은 양념에 재웠다 뭉쳐 숯불 석쇠에 올려 구워낸다. 달콤 짭조름한 양념도 좋지만, 한 입 베어 물면 육즙이 기다렸다 폭발한다. 3만2000원. 해남군 해남읍 읍내길 20-8.

◇난자완스 = 진미. 신라호텔 중식당 출신 셰프가 조그마한 가게를 차렸다. 금세 입소문이 나 어찌들 알고 찾아온다. 식사 메뉴가 많지만 난자완스가 특별한 맛을 낸다. 일일이 다진 고기가 육즙을 머금고 부드럽게 뭉쳐 있다. 고기와 소스에는 과일과 채소, 양념 등이 듬뿍 담겨 금방 기름 솥에서 빠져나온 부드러운 고기 맛을 한껏 북돋운다. 1만9500원. 고양시 덕양구 동송로 33 2층 78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훈맨션의 ‘햄버그스테이크’.



◇햄버그스테이크 = 관훈맨션. 이름처럼 레트로 스타일 경양식집. 정식을 파는데 돈가스와 함께 육즙을 잔뜩 머금은 햄버그를 곁들여 내온다. 이른바 ‘함박’이다. 저민 고기가 얼기설기 뭉쳐 있어 굳이 나이프를 쓰지 않아도 한 덩어리가 뚝딱이다. 소스는 겉에 얹었지만 고깃덩어리 속이 더욱 흥건하다. 진한 풍미를 품은 육수가 실밥 같은 살점 사이마다 스몄다. 당연히 수제다. 1만9500원. 서울 종로구 인사동8길 6-3.

◇미트볼 = 이케아. 정통 스웨디시 미트볼을 먹고 싶다면 여느 레스토랑보단 이곳이 낫다. 푸드코트지만 미트볼 종가의 자부심이 서렸다. 작지만 제법 단단하고 꼬들꼬들하다. 씹는 맛이 좋단 얘기. 소스와 완두콩을 곁들여 한 알씩 집어 먹다 보면 벌써 배도 부르다. 취향에 맞춰 플랜트볼과 베지볼도 고를 수 있다. 최근 출시한 생크림 빵 셈라(semla)도 인기몰이 중이다. 8900원(12개). 고양시 덕양구 권율대로 420.

◇떡갈비탕 = 명신식당. 갈비탕인데 떡갈비로 끓인다. 손이 많이 가지만 식감이 좋고 편해 목포 시민들이 보양식으로 많이들 찾는다. 갈비뼈로 육수를 내고 살은 잘 다졌다가 뼈에 붙여 다시 국그릇에 들어간다. 살짝 양념이 된 떡갈비는 그냥 뼈째 건져 먹어도, 흩트려서 고깃가루를 밥과 함께 퍼먹어도 좋다. 당연히 국물은 진국이다. 밥만 말아 파무침을 얹어 먹어도 숟가락이 쉴 틈 없다. 1만4000원. 목포시 영산로40번길 10.

◇떡갈비 정식 = 대나무통밥. 커다란 식당에서 단체나 커플의 밥을 제대로 내는 집이다. 넓적하게 빚어낸 떡갈비와 함께 한 상에 깔아주는 반찬이야 어디든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집은 상차림 면면이 좋다. 즉석에서 끓여주는 국을 먹고 나면 찌개를 낸다. 터지는 육즙도, 씹는 맛도 좋은 떡갈비 맛이야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2만2000원(대나무통 1000원 추가). 대전 서구 대덕대로 370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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