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새 학기를 맞이하여

  • 문화일보
  • 입력 2023-03-1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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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실에는// 나만 앉아 있다// 학교를 떠나야지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야지 강의실 문을 열고 나가자// 방금 있었던 강의실과 같은 강의실이 나타난다// 계절이 바뀌었음에도 지난 학기가 이어지고 있다’
- 구현우 ‘대학’(시집 ‘모든 에필로그가 나를 본다’)


3월의 거리는 더할 나위 없는 활기로 가득하거니와, 이 활기는 아마, 아니 분명하게, 한 계단 더 올라선 신입생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틀림없겠다. 이즈음 산책을 나는 참으로 사랑한다. 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이 됐어도 설렘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게도 아직 기회가,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철없이 가져보게도 되는 것이다.

이번 학기는 강단에 서게 됐다. 가르치는 일에는 흥미도 소질도 없어, 졸업할 때만 해도 대학과는 영영 작별인 줄로만 알았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다 보니, 차곡차곡 경력이 쌓이고 더러 학생들 앞에 설 기회가 생기곤 했다. 그때마다 공부 부족을 여실히 깨달으면서도 거절치 못하는 것을 보면 내심 이 일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아니, 그것보다는 내 앞에 앉아 있는 저 눈빛과 생기가 좋은지도 모를 일이다. 첫 출석을 확인하기에 앞서 조용한 가운데 나를 보고 있는 얼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보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문득, 나의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서툰 속셈으로 당시 그분들의 나이를 계산해보니, 지금 내 나이와 별 차이가 없구나. 절로 탄식을 하고 만다. 지금의 나를 그때의 그들과 견줄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그들도 지금의 나처럼 설레고 떨렸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자신의 자격에 대해 한없이 회의하면서 마주한 눈빛, 그 청춘의 에너지에 기운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멀고 크기만 했던 그들이 가깝게 느껴지고, 마침내 출석을 부르면서, 수업이 끝나면 은사께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그런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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