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흰살? 담백한 붉은살?… 고민될 땐 다 모아 ‘한 판 승부’[이우석의 푸드로지]

  • 문화일보
  • 입력 2023-04-06 08:59
  • 업데이트 2023-04-0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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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양한 참치의 종류와 부위를 섞어 내놓은 모둠 참치회. 모둠 메뉴는 회 등 일식에 특히 많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모둠 요리

‘모둠’ , ‘모으다’ 의 명사형으로
손님들은 다양한 음식 맛보고
업주는 버리는 재료 없어 이득

모둠튀김 · 쌈 · 전 · 족발 · 순대 등
식재료와 요리법에 따라 다양

서양은 치즈 · 바비큐 · 디저트 등
한접시에 담은 ‘플래터’ 대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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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식탐(Gluttony)을 중대 죄악 중 하나로 규정했지만, 잉여 식품이 늘어난 요즘은 더 이상 옛날만큼 식탐(食貪)을 죄악 삼지는 않는 분위기다. 다만 건강학적으로 경계할 뿐이다. 먹을거리가 지극히 제한적이던 당시, 누군가 값비싼 것을 남들보다 더 많이 먹으려는 행위는 당연히 사회적 식량 불균형을 가져왔고 지탄받는 해악이었다. 고대와 중세에는 아예 정치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교리로까지 제한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5가지나 경우를 들며 죄악시했지만, 식탐이 탐욕이 되는 것을 크게 경계했다.

과거에도 줄곧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미식(美食)은 식량 생산이 대폭 늘어난 현대에 들어서 도드라지게 발전한다. 미식을 뜻하는 프랑스어 구르메와 영어 고메, 일본어 구르메(グルメ)는 사실 모두 같은 말(gourmet)에서 나왔다. 많이 먹기를 원하는 식탐(gluttony)과는 좀 다른 의미다.

인간이 좋은 음식을 많이 먹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본능이다. 제한된 위장의 용적 탓에 다양한 음식을 먹기 위해 은연중 노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식 행위는 바로 이런 본능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미식에서 늘 고민되는 것이 메뉴 선정이다. 이럴 때 ‘모둠’이 좋다. ‘모둠’은 우리 옛말 ‘몯다(모으다)’가 명사형으로 바뀐 말이다. 따라서 흔히 보는 ‘모듬’은 표준말이 아니다. 모둠전, 모둠회, 모둠튀김, 모둠쌈, 모둠족발, 모둠순대 등으로 써야 한다.

모둠은 소비자의 입장에선 한 번에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어 당연히 좋다. 식당 업주로선 대중적 메뉴와 좀 더 비싼 메뉴를 함께 판매할 수 있는 데다, 수요를 예측하고 미리 준비해둘 수 있어 유리하다. 값도 조금 더 올려받을 수 있어 부가가치도 향상된다. 예를 들자면 한 접시에 1만 원짜리 일반 당면순대와 2만 원짜리 고급 대창 순대를 반반 섞어 1만6000원짜리 모둠 순대로 팔면 매출면에서 조금 더 이득인 데다, 고객 만족도까지 올릴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손님 입장에서도 동시 식사 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데 다양한 메뉴를 맛보고 싶을 때 모둠을 주문하면 당장 해결된다.

메뉴를 보다 다양하게 구성한 것이 ‘모둠의 원리’이다 보니 각각 다른 입맛을 얼추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다. 핵심원리는 ‘믹스(mix)’다. 미식의 기본 원리를 지키며 비용과 공복을 아껴 보다 다채로운 맛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모둠회의 경우, 광어와 우럭 등 담백하고 달달한 흰살생선에 풍미가 진한 등푸른생선, 기름 맛이 두드러지는 붉은 살의 연어 등을 더해 구성하면 여러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대형 횟집에선 모둠회를 메뉴로 많이 내는 편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용산 ‘모둠 콜드컷 소시지’의 콜드컷 메뉴.



맛을 추구하는 본능이야 인지상정, 동서양을 막론하고 웬만한 곳에선 이런 ‘모둠’ 메뉴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영어권에선 플래터(platter), 프랑스에선 플라토(plateau)라 해서 치즈나 소시지, 해산물, 바비큐, 디저트 등 다양한 음식을 큰 접시에 한데 담아낸 상차림을 이른다. 미국 텍사스식 바비큐 플래터가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상당히 종류가 많다. 특히 프랑스의 유명한 모둠 해산물 요리인 플라토 드 프뤼 드 메르(Plateau de fruits de mer)는 다양한 조개류와 갑각류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우리 해산물 모둠찜과 비슷하다.

수십 종류에 이르는 디저트와 과자류를 2∼3단 플레이트에 쌓아놓은 애프터눈티 플래터는 몇 년 전부터 호텔가를 중심으로 큰 유행을 타고 있다. 접시는 보통 플레이트(plate)라 부르는데 커다란 공용 쟁반에 여러 음식을 올려놓은 상태를 플래터라 따로 구분하면 된다. 1인용 접시보다 넓은 쟁반을 쓰니 많은 종류의 음식을 올리기 쉽다. 메뉴 이름도 뒤에 플래터라 붙이면 이해하기 쉽다.

반면 샘플러(sampler)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한 끼나 1인분을 챙겨 먹는다기보다는, 이름처럼 작은 조각 한두 개를 여러 종류로 모아놓은 시식(試食) 세트 개념이다. 여러 가지를 모아놓은 샘플러를 먼저 맛본 후, 자신의 입맛에 맞춰 주요리를 주문하라는 뜻이 숨어 있다. 그래서 요리에도 샘플러가 있지만 맥주나 음료에 적용하기도 한다. 작은 컵에 여러 종류를 제공한다.

일본에선 모둠과 같은 개념을 모리아와세(盛り合わせ)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한 접시에 같거나 다른 종류의 음식을 모아 놓은 것이다. 모둠회 격인 사시미(刺身) 모리아와세, 꼬치구이인 야키도리(燒鳥) 모리아와세 등 단품요리 이름 뒤에 붙여 ‘○○모둠’을 의미한다.

한편 해산물과 채소, 육류 등 이것저것 모두 넣어 끓여 먹는 요세나베(寄せ鍋)를 ‘모둠전골’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각기 다른 여러 종류를 넣는다는 의미에서 모둠보다는 ‘섞어찌개’가 더욱 본 의미에 들어맞는다.

중국에선 ‘핀판얼(拼盤)’이라 한다. 한데 섞지 않고 다채로운 종류의 소요리를 차려 내는 것을 채소요리(蔬菜拼盤), 버섯모둠(蘑菇拼盤)이라 부르는 등 음식 문화가 뛰어난 중국 역시 다양한 모둠 메뉴가 존재한다. 특히 수십 가지 이상 요리를 제공하는 딤섬의 경우 따로 모둠(点心拼盤)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모둠이 가장 선호되는 상황은 상반된 것을 준비한 경우다. 예를 들어 매운양념이나 소금양념, 카레양념 등 다양한 양념을 내놓을 때, 소고기의 여러 부위를 조금씩 모아놓은 때, 쌈채소나 사리를 한꺼번에 주문하는 때 모둠 메뉴의 인기가 높다. 특히 ‘소 한 마리’처럼 1인분씩 주문하기 어려운 각각의 부위를 조금씩 떼어 한 접시에 내주면 편하게 각양각색의 맛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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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선택할 때 늘 고민을 하는 편이라면 모둠만큼 편한 것이 없다. 기억에 남을 만큼 맛좋은 식사란 선택에 실패하지 않았을 때 거둘 수 있는 보상이다. 이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 선택지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생활 속 식도락을 챙기려면 이것저것 고를 것도 많다. 너무 많아 알쏭달쏭 도저히 판단을 내릴 수 없을 때라면 모둠과 플래터, 이 두 단어를 기억해두면 좋을 일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먹심 = 모둠한우구이. 살치살, 부챗살, 갈빗살, 채끝살을 합쳐 420g이 나온다. 지방층이 서로 달라 각기 다른 맛을 내는 여러 부위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모둠 주문이 조금 더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숙성을 통해 맛을 이끌어낸 고기 맛도 좋다. 숙성 삼겹살과 목살, 항정살을 섞은 모둠한돈구이도 있다. 고양시 덕양구 신도2길 15. 12만 원.

◇백화양곱창 = 양 모둠 소금구이. 쫄깃한 양깃머리와 기름진 대창, 꼬들꼬들한 염통 등을 섞어서 구워준다. 원래 담백한 양깃머리(특양)는 대창과 함께 먹어야 더욱 맛이 살아난다. 자갈치 시장 양곱창 골목의 터줏대감 격이다. 가게 간판은 하나지만 들어가면 여러 집이 각각 영업하는 부산 전통 방식이다. 부산 중구 자갈치로 23. 3만7000원.

◇미나미오뎅 = 1990년대부터 유명한 ‘오뎅’집이다. 어묵이 아니다. 소힘줄, 달걀, 곤약, 유부주머니, 무, 어묵 등 다양한 종류를 넣은 모둠 전골로 낸다. 일본 정통방식보다는 국물이 좀 더 많은 편. 겨자를 살짝 풀어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튀김 등 안주류도 다양하게 갖췄다.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로594번가길 46 1층. 1만8000원.

◇야키니쿠소량 = 대량카세. 590g. 일본에서 먹는 방식이다. 가게 이름처럼 소량으로 즐길 수도 있고 인원수가 많다면 대량으로 주문해도 된다. 어떤 것을 주문해도 맡김(오마카세)으로 내는 고기 종류가 육회부터 우설, 차돌박이 등 다양하게 서비스된다. 샘플러 식으로 먼저 모둠으로 먹고 입맛에 맞는 것을 추가 주문해도 된다. 서울 마포구 포은로 38. 5만9000원.

◇용산소세지 전문점 = 모둠 콜드컷 소시지. 상호처럼 소시지를 비롯해 다양한 샤퀴테리(염장 육가공품)를 파는 집이다. 소시지 플래터는 외국에서도 즐겨 먹는 ‘모둠’ 요리다. 식사를 겸한다면 철판 위에 각종 소시지를 내는 매시포테이토소시지 모둠을, 가벼운 맥주 안주로는 슬라이스한 소시지를 모아놓은 콜드컷이 좋다. 고양시 덕양구 삼송로185번길 5. 1층. 2만5000원.

◇산해횟집 = 모둠회. 제철 생선회를 부위별, 어종별로 모아 올려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곁들임 찬 역시 해삼과 전복 등 모둠 해산물과 함께 내온다. 늘 손님이 많은 집이라 신선도가 좋아 남는 부위 없이 모둠회를 구성할 여건이 충분하다. 풍경 좋은 광안리 민락에 위치한 회타운에 있다. 부산 수영구 광안해변로344번길 17-20 풍경타워 8층.

◇펍피맥 = 세트로 판다. 더블치즈피자와 감자튀김, 샐러드(갈릭콘 또는 로메인)가 한 쟁반에 펼쳐진다. 맥주와 피자를 함께 즐기는 콘셉트의 펍으로 오목교가 본점인데 가산디지털단지, 요즘 핫하다는 용리단길에도 입점했다. 할라페뇨 등을 토핑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40길 30. 2만 원(토핑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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