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때려 더 아픈 코미디… “극장 나설 때 묘하게 생각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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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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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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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영화 ‘말바말’ 감독 윤성호

노동착취 · 동물권 · 젠더갈등 등
10분 남짓 6개 에피소드 그려


말로 때리면 더 아프다. 상처가 오래 남으니까.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비틀어 재기발랄한 속사포 대사로 웃음과 뜨끔함을 동시에 안기는 윤성호(46·사진) 감독은 누구보다 말과 이야기의 힘을 아는 창작자다. 장편 데뷔작 ‘은하해방전선’(2007)의 재능있는 독립영화 유망주에서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0)의 웹드라마 시조새를 거쳐 ‘이야기 깎는 장년’이 된 윤 감독을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옴니버스 독립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말바말’·17일 개봉)엔 그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옴니버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중 젠더 간 혐오 문제를 다룬 ‘진정성 실천편’.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윤 감독은 ‘말바말’에 대해 “일반 시민이 자신보다 약한 시민을 폭력적이지 않은 척 매끄럽게 미끄러트리는 사례를 재미있게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설명대로 10분 남짓의 6개 에피소드는 한국 사회의 차별 문제를 가볍고 날렵하게 보여준다. 그가 연출한 ‘프롤로그’는 노동 착취, 김소형 감독의 ‘하리보’는 동물권, 박동훈 감독의 ‘당신이 사는 곳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는 지역 갈등, 최하나 감독의 ‘진정성 실천편’은 젠더 간 혐오, 송현주 감독의 ‘손에 손잡고’는 환경, 한인미 감독의 ‘새로운 마음’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담았다.

소재만 보면 무겁고 심각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웃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띵하다. 이는 ‘기승전 아이러니’란 구성 덕분. 윤 감독은 “교훈인지 웃음인지 감독들이 헷갈릴 때마다 주문한 게 ‘아이러니하면 된다’였다”며 “극장을 나설 때 묘하게 마음에 남는 건 예상을 비틀어 일상에서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아이러니”라고 했다.

유튜브 쇼츠를 방불케 하는 빠른 대사 역시 그의 장기다. “사람들이 남미 가는 건 좋아해도 되는 건 싫어해” 같은 대사들이 쉴새 없이 오가는 프롤로그는 흡사 펀치를 주고받는 권투경기 같다. ‘숏박스’ 에피소드를 외우며 유튜브 콘텐츠를 수차례 언급하는 윤 감독에게 극장 영화보다 쇼츠를 경쟁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윤 감독은 “정곡을 찔렸다”며 웃었다. 이어 “라이벌은 아니고 빠른 호흡에 대한 성취 욕구가 있는 사람으로서 존경하고 참고한다”고 살짝 바로잡았다.

윤 감독은 한국 영화가 성장을 거듭했던 지난 20년 동안 진득한 극장 영화보다 웹·모바일용 짧은 콩트를 주로 만들었다. 그는 “예전엔 장편영화 하자 할 때마다 ‘왜 3년에서 7년 걸리는 영화를 고생해서 만들까. 시간·돈 아껴서 5분짜리 만들면 충분한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 긴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어졌다. 더는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순간순간 기지를 뽐내기보다 오래 살아남는 이야기꾼의 욕망이 강해진 덕분일지도 모른다. “드디어 쇼트폼 시대가 왔는데 왜 난 역행할까”라고 자문한 윤 감독은 “예전엔 창대한 서사는 내 몫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인간 삶의 형태를 고민하는 SF(과학소설) 장르라면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오징어게임’과 나란히 작품상 후보에 오른 웨이브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역시 그의 생각엔 SF다. “2023년 현재 한국을 배경으로 만들라면 어려운데 2024년으로만 설정해도 신나죠. ‘이상청’도 지금 한국이 아니라 평행우주 한국이라 치고 만든 거예요.”

‘제국’ 국가보안법 철폐 프로젝트 ‘우익청년 윤성호’ 등에 이어 ‘말바말’까지 사회적 고민이 담긴 옴니버스 작업만 7번째인 윤 감독. 그렇지만 “남들보다 사회 이슈에 민감한 건 아니다”라고 손사래 쳤다. 다만 최근 기후위기엔 진심이다. 올해 1월에 태어난 딸 덕분이다. 윤 감독은 “딸이 대학 갈 때 70세를 바라본다. 내가 지켜줄 수 없으니 환경이 걱정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올해는 3월까지 패딩을 입었어요. 지구가 더워질 걸 대비해서요.” 지구 온난화까지 대비하는 그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맞은 선남선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신작을 준비 중이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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