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전세, 근본적 보완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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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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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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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부 부장

국어사전에서 전세라는 말을 찾으면 ‘부동산 소유자에게 일정한 금액을 맡기고, 그 부동산을 일정 기간 빌려 쓰는 일 또는 그 돈’이라고 나온다. 국어사전의 정의는 전세라는 말이 주거 수단뿐만 아니라 금융상품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따라서 전세는 다른 금융 상품처럼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금융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전세는 오랫동안 한국인이 자가(自家)를 마련하는 디딤돌 역할을 해왔다. 개발 연대에 우리나라 신혼부부는 값싼 전세에서 시작해 전세 보증금을 차츰 높여 마침내 자기 집을 마련하는 과정을 거치곤 했다. 오랜 노력 끝에 자기 집을 마련한 부부가 그간의 고생을 돌아보며 이불 속에서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얘기는 그 시절에는 흔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자기 집을 마련한 뒤에는 큰 집으로 옮겨가기 위해 또다시 노력하며 살아온 것이 우리나라 중산층(中産層)의 전형적인 삶의 궤적이었다. 오죽하면 옛날 어른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마구 삭아버리는 사글세를 살아서는 안 된다”며 “반드시 전세를 얻어야 한다”고 자식에게 신신당부했을까. 그러나 전세에는 태생적인 결함이 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큰 돈을 임대인에게 맡기지만, 전세 계약이 끝날 때 그 보증금이 전액 반환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장하는 확실한 장치가 없다. 그러면 그동안은 왜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전세 사기’ 같은 일이 자주 발생하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우리나라 집값과 전세 보증금이 꾸준히 상승했기 때문일 것이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현재 거주하는 임차인이 나가고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올 때쯤에는 집값이나 전세 보증금이 올라 있고, 전세 물건을 찾는 사람도 줄을 서 있기 때문에 전세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집값과 전세 보증금이 떨어지는 상황이 닥치면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태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다. 금융 측면에서 전세는 공인된 금융회사도 아니고 개인에게 보증금 반환 여부를 사실상 전적으로 맡겨놓은 상품이다. 순기능도 많았지만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고, 외국인에게 설명하면 바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상한 제도’이기도 하다. 이번에 발생한 전세 사기를 포함한 보증금 미반환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전세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전세가 신규 임대차 계약의 절반을 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근본적인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전세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임대인이 자비로 전세 보증금 보험에 들도록 강제하거나, 전세 보증금을 임대인이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에스크로 계좌’에 묶어두는 방법 등 다양한 대책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보완책이 없다면 전세는 임차인에게 너무나 많은 리스크(위험)를 부과하는 제도다. 그러나 전세 사기 등으로 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할 위기에 놓인 임차인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사인(私人) 간 거래에 개입해 보증금을 대신 지급하거나 선(先)지급해주는 ‘사회주의 포퓰리즘’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허용돼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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