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에머슨 콰르텟’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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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2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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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이스라엘계 미국인 감독 야론 질버먼의 ‘마지막 4중주(2012)’는 푸가라는 이름의 세계 정상급 현악 4중주단 멤버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과정에서 겪는 사랑과 갈등을 담은 영화다. 팀 리더인 첼리스트 피터는 오래전부터 앓아온 파킨슨병을 숨길 수 없게 되자 은퇴를 선언한 후 고별무대를 준비한다. 그가 선택한 곡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 베토벤은 교향곡 9번을 작곡한 뒤 건강이 악화하자 관현악곡 대신 현악 4중주에 집중하는데, 14번엔 병마에 시달리면서 느끼는 내면의 고통과 희열이 드러나 있다.

영화의 푸가 4중주단처럼 창단 멤버의 은퇴로 위기를 맞거나 해체된 실내악단은 꽤 많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계 음악인들이 1947년 런던에서 결성한 아마데우스 콰르텟은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전곡 녹음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40년간 연주를 이어온 뒤 해산했다. 197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결성된 알반 베르크 콰르텟은 세계 최정상급 실내악단으로 이름 높았다. ‘실내악 연주의 전범(典範)’이란 평을 들었지만, 2007년 고별 음악회 후 해산했다. 과르네리 스트링 콰르텟은 1964년 뉴욕에서 결성됐는데 우아하고 미묘한 실내악의 묘미를 잘 살린 연주로 유명했다. 그러나 2009년 “아직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이제 우리 시대는 갔다”며 해체했다. 러시아의 보로딘 콰르텟은 1945년 창단 후 70년 넘게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데 멤버 교체를 통해 전통을 유지해온 게 비결이다.

이제 또 하나의 전설적 실내악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 결성된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이 해체 선언 후 세계 각국에서 고별공연을 갖고 있다. 미국 철학자이자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이름을 딴 이 실내악단은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 출신들이 결성해 지난 47년간 최고의 연주를 들려줬다. 뛰어난 통찰력과 응집력이 담긴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9번 수상해 ‘실내악의 전설’이란 명성을 얻었다. 에머슨 콰르텟은 25일 광주를 시작으로, 29일 대전, 27일 서울, 28일 경기 부천에서 고별무대를 갖는다. 연주곡은 베토벤과 모차르트·하이든 작품 등이다. “은퇴라기보다 삶이 다음 단계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에머슨 네 멤버의 표정에선 애잔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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