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와 ‘새’ 사이, 다문화가정의 홀로서기[박준우 특파원의 차이나인사이드]

  • 문화일보
  • 입력 2023-06-2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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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2일 중국 베이징 북경한국국제학교에서 열린 다누리가족 단오절 어울림축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준우 특파원



■ 박준우 특파원의 차이나인사이드

현지 단오절 다문화가정 축제
공관 관심은 한중 모두 부족


베이징=박준우 특파원



"‘우리 엄마는 한국 분이시고, 아빠는 중국 분이셔… ’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하게 된다. 아빠의 성이 두 음절로 발음돼 선생님들은 내 이름을 몇 번 다시 물으셨고, 나는 부끄러워 울어버렸다."

지난 22일 중국 북경한국국제학교에서 열린 다누리가족 단오절 어울림 축제에서 단상에 오른 싸이지윤(賽智允) 양은 자신이 쓴 다문화가정 글짓기 대상작 ‘다문화는 나에게’를 낭독하며 이같이 술회했다. ‘새’(賽)라는 한국어 독음 대신 ‘싸이’라는 중국식 병음을 사용하는 자신의 성(姓)에 대한 정체성과 고민을 담담하게 풀어낸 싸이 양의 글은 축제에 참가했던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의 공감을 받았고, 몇몇은 싸이 양의 낭독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2019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열리지 못하다 4년 만에 다시 열린 이날 행사에 참가한 한·중 다문화가족들은 사물놀이, 가야금 연주, 태권도 시범, 케이팝 댄스와 밴드 활동 등을 선보이며 하나가 됐다. 행사를 주최한 북경한국인회 다누리센터의 김영란 센터장은 "복잡한 정세 속에서 어려움도 많지만 그럴수록 더 포용하고 화합하며 서로 의지하며 좋은 이웃으로 큰 가족으로 서로 사랑하며 정을 나누자"라고 말했다.

북경한국인회 등에 따르면 한·중 수교가 31년을 맞은 2023년 현재 베이징(北京)에 거주하는 한·중 커플은 약 500쌍에 이른다. 이들 부부와 그 가족들을 합하면 베이징의 한·중 다문화가정 구성원 수는 약 2만 명이나 된다. 이들 가정 대부분은 싸이 양 못지 않게 다양한 고민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가장 근본적인 고민은 한·중 관계의 악화다. 관계 악화 속에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자신들을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특히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다문화가정 상당수는 극심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중국 여성과 결혼한 한 남성은 "한국에 대한 인식이 악화하는 것을 아이들이 피부로 느낄 때가 가장 가슴이 아프다"며 "잘못 없는 아이들이 이런 문제로 고민해야 되는 상황이 늘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중 양쪽의 경계에 몰린 다문화가정의 불안이 심각한 수준이지만 양국 재외공관들은 이들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기보단 더욱 키우는 것 같다. 이날 현장에서 대사관이나 총영사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하던 중국 언론사에 "선정적이고 부적절한 어휘를 사용해 우리 정상은 물론,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일방적으로 폄훼해 양국 국민 간에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고 있다"고 항의 서한을 보내며 적극적인 대처를 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도 지난 9일 내정간섭에 가까운 ‘베팅’ 발언을 하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지도하에 중국몽이란 위대한 꿈을 한결같이 이루려는 중국 인민들의 확고한 의지를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국 외교공관의 행보를 보면 이들이 언급한 ‘국민’과 ‘인민’은 각국의 국가원수만을 지칭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감정 싸움이 격화되는 가운데 가정을 이룰 정도로 가까운 양국 국민과 인민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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