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가는 감칠맛… 한 젓갈 하실래요? [이우석의 푸드로지]

  • 문화일보
  • 입력 2023-07-20 08:59
  • 업데이트 2023-07-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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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젓갈이면서 고급 반찬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명란젓을 올려 내는 명란덮밥. 게티이미지뱅크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젓갈

조미료 · 소스 · 반찬 등 무한변신
짭조름해 입맛 살리는 ‘밥도둑’
단백질원이자 음식에 풍미 더해

상하기 쉬운 음식물 저장에 용이
쓰임새 다양해 각국 식문화 점령
생선 · 갑각류 사용 ‘어장’ 보편적

찍어먹는 멜젓 · 반찬으론 명란젓
전복젓 · 성게알젓 비싸지만 인기


지난 유월은 서해안 갯가에서는 젓갈을 담는 때였다. 유월에 잡아 ‘육젓’을 담그는 젓새우는 마침 산란기라 덩치가 커다랗고 투실하다.

돗떼기(정월에 잡은 새우)나 곤쟁이(2∼3월 이른 봄에 잡은 작은 새우)와는 당연히 비교할 바 아니며, 고작 한 달 차가 나는 5월 오젓이나 7월 차젓과도 또 다르다. 지금 잡아서 소금 독에 넣어 두어 달 서늘한 곳에서 숙성시키면 제대로 맛이 든다.

젓갈은 우리 식문화에 없어선 안 될 조미료다. 다양한 요리에 젓갈을 쓸 뿐만 아니라 그대로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젓갈이란 동식물성 단백질 식재료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음식을 이르는 말이다. 젓갈 하면 우선 생선젓을 떠올리지만 사실 고기를 발효시킨 육젓과 콩을 발효시킨 두장(豆醬) 역시 넓은 의미로 젓갈이라 볼 수 있다. 간장, 된장 할 때 쓰는 ‘장(醬)’ 자는 젓갈이란 뜻이다.

단백질이 발효를 거치면서 감칠맛(savory taste)을 내는 원리를 이용한 이런 젓갈류가 자연 발생적으로 세계 곳곳에 생겨났다. 화학적으로도 발효과정에서 단백질이 맛을 내는 성분인 아미노산염, 핵산염, 유기산염 등으로 변화하니, 철저히 경험에 의해 이런 맛의 원리를 찾아낸 인류의 지혜가 놀랍다.

소금(함미료), 설탕(감미료), 식초(산미료) 등 3대 조미료에는 들지 못하지만 젓갈은 인류사에 가장 오래된 가공 조미료 중 하나다.

동아시아의 것이 가장 잘 알려졌지만 사실 젓갈의 역사는 유럽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생선으로 담근 젓갈 가론(Garon)을 만들어 먹었고 이는 로마 제국에선 가룸(Garum)으로 이어졌다. 등 푸른 생선을 통째로 소금과 함께 층층이 쌓아 발효시킨 후 생겨난 액젓인 가룸은 주요 교역 물품이었으며 굉장히 비싼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원리로 보나 위치로 따져도 지금 이탈리아인들이 즐겨 먹는 안초비는 가룸의 진화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악취로 유명한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Surstromming) 역시 청어를 식초에 절여 발효(사실은 삭힘)시켜 먹는 젓갈로 볼 수 있다.

젓갈에는 어장(魚醬)이 보편적이다. 생선이나 갑각류까지 두루 쓴다. 원류는 동남아시아 메콩강 유역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베트남 느억맘, 태국 남쁠라 등 젓갈(fish sauce)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라오스식 생선 식해인 빠솜과 캄보디아의 프라훅 또한 피시 소스와는 살짝 다른 결의 생선 젓갈이다.

보존이 어렵던 시절 상온에 두면 상하기 쉬운 생선을 저장하기도 쉽고 요모조모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까닭에 젓갈은 순식간에 각국 식문화를 점령했다. 특히 피시 소스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통해 널리 전파됐는데 동남아의 케첩도 어장 소스를 뜻하던 말이다. 서양으로 건너가 버섯이나 토마토로 대체된 후에 버섯 케첩 또는 토마토 케첩이라 부르게 됐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남 통영의 원조밀물식당의 멍게젓비빔밥. 멍게젓과 채소, 밥을 넣고 비빈다.



동남아의 어장 문화는 우리나라 액젓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리적으로 동남아와 가까운 전남에선 다양한 액젓이 김치 담글 때 필수 재료다. 다만 액젓 형태가 아니고 먹을 수 있는 건더기가 든 ‘진젓’ 종류는 우리나라의 것이 훨씬 많다. 생선과 그 다채로운 부속 내장, 낙지와 오징어 등 연체동물, 새우나 게 등 갑각류, 조개 패류 등 거의 모든 해산물로 젓갈을 담가 먹는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젓을 담글 수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간장게장 역시 진젓의 한 종류다. 한꺼번에 많이 잡힌 어패류를 오래 먹기 위해 보관하다 보니 젓이란 음식이 됐다. 결국 처음엔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이던 것이 오히려 맛이 좋아지는 것을 발견하고 능동적으로 젓을 담가 먹게 된 유래다.

어장은 두장에도 영향을 줬다. 된장과 간장이 어장의 대체품으로 나왔다는 이야기. 단백질 분해란 원리는 같지만 만주 등 내륙 지방에선 생선 자체를 구하기가 어려워 단백질이 많은 콩으로 대체해 두장을 만들었다. 이후 동남아의 어장과 동북아의 두장 문화는 각각 따로 발달하게 된다.

해산물이 아닌 가축 고기로 만든 젓갈도 있다. 마찬가지로 고깃덩어리를 잘라 소금에 절여 숙성시키는 원리다. 육장(肉醬) 또는 아예 해(해)자를 써서 표기했다. 가자미 식해(食해)할 때 그 ‘해’자다. 지금이야 가자미나 명태에만 식해란 말을 붙이지만 예전엔 꿩고기나 소고기, 사슴고기 등으로 식해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북한 음식 중에는 김장할 때 돼지고기를 같이 항아리에 썰어 넣어 맛이 들도록 하는 방식도 있다. 어장 대신 육장을 쓰는 셈이다.

일본에서도 젓갈을 많이 먹긴 하지만 진젓만큼은 우리 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젓갈은 보통 장아찌를 이르는 즈케(漬け)나 시오카라(염辛)로 표기한다.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건너간 명란젓은 멘타이코(明太子)라고 해서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후쿠오카(福岡)에는 명란젓 박물관도 있는데 명란을 넣은 사탕, 센베이(煎餠), 쿠키 등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종로의 노포 빈대떡 전문점인 열차집에서 빈대떡을 주문하면 함께 내오는 굴무침.



젓갈은 어획의 집산지에서 발달하는 게 이치상 맞겠지만 숙성과 유통을 위해 수운이나 육상 교통편이 좋은 지역에서 일찌감치 그 명성을 가져갔다. 소금도 많이 써야 하니 주로 서해안에 많다. 조선 시대 충남 논산 강경, 홍성 광천, 전남 영광 법성, 전북 부안 곰소 등이 젓갈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들 지역에는 염전이나 토굴 등이 있어 젓갈을 담그고 보관하기에 용이했다. 민물새우를 쓰는 토하젓은 전남 강진 옴천이 유명하고 명태나 가자미 식해는 함경도의 향토 음식으로서 널리 알려졌다.

젓갈에서 유래한 말이 많다. 무엇을 살 때 좀 더 얹어 주는 ‘덤(bonus)’은 젓국 장수가 따로 들고 다니던 덤통(반대말은 알통)에서 유래했다. 쓸모없고 변변찮은 사람을 이르는 ‘덤거리’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눈치가 있으면 절간에 가도 백하 젓국을 얻어먹는다’는 속담도 있다. 우리 식생활에 젓갈이 얼마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젓갈은 조리할 때 조미료로 쓰거나 고기를 찍어 먹는 장(소스)으로 내오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반찬이 된다. 국물을 내거나 반찬을 조리할 때 조미료가 되는 장은 멸치액젓, 까나리액젓 등 액젓류를 주로 쓰는데 새우젓은 그대로 김치 양념에 넣거나 국밥에 넣어 먹는 등 쓸모가 많다.

찍어 먹는 장으로는 새우젓, 멜(멸치)젓, 조개젓 등을 쓴다. 특히 제주도에선 삼겹살을 구울 때 멜젓을 끓여 장으로 쓰는데 요즘 이런 방식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반찬으로 인기가 높은 젓갈은 명란젓, 창난젓, 바지락젓, 호래기(꼴뚜기)젓, 어리굴젓, 오징어젓, 낙지젓, 황석어젓, 갈치속젓, 전어밤젓(돔배젓), 서거리(명태아가미)젓 등을 꼽는데, 요리의 범주에 드는 간장게장이나 간장새우장 등도 엄밀히 따지자면 젓갈에 속하니 이도 포함시키면 한국인은 상당히 다양한 진젓을 먹고 있는 셈이다. 전복젓이나 게웃젓(전복내장), 멍게젓, 성게알(구살)젓 등은 그 재료 자체가 귀하니 가장 값비싼 젓갈 축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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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은 자체로 감칠맛 덩어리라 할 수 있어 두루 쓰이지만 많이 먹으면 염분 섭취량이 늘어나니 주의해야 한다. 괜히 밥 도둑이라 하지 않는다. 밥 도둑은 굴비, 게장, 젓갈 등 주로 짠 염장 음식에 붙는 표현이다. 예로부터 우리 밥상에서 젓갈은 기초 단백질원이자 음식에 풍미를 더하는 귀중한 식자재로 사랑받아왔다. 무더위에 입맛 떨어지는 여름철, 시원한 냉국에 밥을 말아 짭조름한 밥 도둑 한 점 더하면 수그러든 입맛이 당장 되살아날 터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젓갈볶음밥 = 부암갈비. 양념하지 않은 생갈비로 유명한 돼지갈비 노포. 갈비 맛도 좋지만 고기를 먹고 난 후 갈치속젓을 넣고 볶아주는 ‘젓갈볶음밥’이 별미다. 풍미 가득한 갈치속젓에 참기름과 부추 등을 넣고 들들 볶아낸 볶음밥은 전혀 비리지 않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인천 남동구 용천로 149. 3000원.

◇우럭젓국 = 토담집. 태안의 여름철 보양식으로 대표적인 향토 요리다. 우럭을 꾸덕꾸덕 말렸다가 뽀얗게 국물을 우려낸 요리로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다고 해서 젓국이라 부른다. 국물이 삼계탕처럼 진하면서도 시원하다. 청양고추를 조금 썰어 넣으면 칼칼한 뒷맛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해준다.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백로 161. 1인 1만6000원.

◇명란젓구이 = 심야식당 세솔리. 메뉴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한식 이자카야(居酒屋)다. 명란을 버터에 살짝 구워내 미나리 무침과 함께 곁들여 내는데 미나리 향과 식감, 그리고 부드러운 명란젓의 궁합이 딱이다. 수분이 증발하면 더욱 짜지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저염 명란과 무염 버터를 사용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신도길 19 2층. 1만2000원.

◇토하젓 = 달동네보리밥쌈밥. 해남의 8미(味)로 꼽히는 보리쌈밥에 토하젓을 넣어 비비면 그리도 맛이 좋다. 각종 나물 반찬에 강된장과 토하젓을 내준다. 기본으로 스무 가지 이상 밑반찬이 나오는데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메인. 여기다 차조밥과 찰밥, 선짓국이 곁들여진다. 쌈채도 넉넉히 준비해주니 토하젓을 듬뿍 얹어도 짜지 않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663. 1만 원.

◇멍게젓비빔밥 = 원조밀물식당. 멍게를 그대로 쓰지 않고 멍게젓을 만들어 쓴다. 젓갈을 담그면 멍게 특유의 아린 맛이 사라진다. 짭조름한 멍게젓을 잔뜩 얹고 김과 참깨, 해조류를 쓱쓱 비벼 먹으면 고추장 베이스 비빔밥과는 또 다른 미각의 세계가 열린다. 우렁쉥이(멍게)의 주산지인 거제도와 통영 쪽에서 맛볼 수 있다. 경남 통영시 중앙시장1길 8-42.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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