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파괴자’ 윤석열의 숙명[박민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3-07-2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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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논설위원

87체제 35년 적대적 공생하던
좌우 기득권 무너뜨리고 당선
이권 카르텔 전선 꾸준히 확대

내 편에 더 엄한 잣대 적용하고
제도 개혁 과실 국민에 돌리고
인적 쇄신으로 총선 승리해야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이권 카르텔’을 저격하면서 우려와 비판도 확산하고 있다. 이권 카르텔 척결을 국정 기조나 메시지로 읽는 측은 대부분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으로 변질·퇴행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더 큰 어젠다나 프레임이 필요하다거나 과거에 집착해 ‘미래 담론’이 실종될 수 있다는 조언도 등장한다. 좌파 진영에서는 검찰 출신 대통령의 ‘사정 만능 통치’라는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검찰과 감사원, 국세청과 국정원 등 사정·정보기관을 동원해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야당이나 노조, 시민단체 등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낙인 찍어 축출하는 것을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탄생의 시대사적 배경과 흐름을 짚어보면 이권 카르텔은 다른 차원의 프레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파괴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는 박근혜 특검에 참여해 한계에 이른 우파 정권의 숨통을 끊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좌파 아이콘 조국 법무부 장관과 맞서 좌파 스스로 무능과 내로남불을 드러내게 했다. 이어 정계 입문 4개월여 만에 우파 대선 후보로 나서 좌파 정권 재창출을 저지했다. ‘87체제’ 이후 35년간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해온 좌우 정권을 모두 무너뜨린 것이다. 이는 윤석열 개인의 역량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분출한 민심이자 시대정신이 좌우 기득권 세력의 퇴출이었고, 그 기대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윤석열에게 모인 것이다.

윤 대통령은 꾸준히 이권 카르텔 전선을 확대해왔다. 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 당시만 해도 윤 대통령은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했다”며 문 정부를 겨냥했다. 그러나 2022년 12월 민노총 집단 운송거부 사태가 분수령이 됐다. “일자리 세습, 기득권의 일자리 지키기를 위한 이권 카르텔”이라며 노동계를 비판했다. 2023년 2월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5대 은행과 3개 이동통신사가 대상에 올랐다. 3월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카르텔과 연결했고 6월 13일 국무회의에서는 시민단체를 겨냥, “부정과 부패의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부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6월 15일에는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카르텔) 아닌가”라고 말했고 7월 3일에는 신임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마침내 “우리는 반(反)카르텔 정부”라고 선언했다. 민심의 지지도 탄탄하다. 7월 10∼11일 여론조사공정㈜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9.8%에 그쳤지만, 이권 카르텔 타파에 대해서는 57.5%가 공감을 표시했다. 광주·전남북 지역(51.9%)과 40대(53%)에서도 공감한다는 답변이 절반을 넘어섰다.

파괴는 창조의 씨앗을 품고 있지만 모든 파괴가 창조로 개화하지는 않는다. 윤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 척결을 시대정신으로 끌어올려 창조적 파괴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파괴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내 편에는 눈을 감고 네 편에는 가혹했다. 윤 대통령은 공정을 넘어 내 편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담합 등으로 시장을 교란하는 대기업, 인력 확충을 저지하는 의료계, 저렴한 온라인 법률 서비스에 징계를 가하는 변호사 단체 등에 대해서는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 징벌적 목적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 이권 카르텔 구축 핵심 인사에 대해서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권의 연결 고리를 끊는 제도적 개혁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그 과실이 국민에게 고루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창의적 연구나 창작 등 수월성이 강조되는 영역에서의 사회적 자원 집중, 시너지를 위한 각 분야 리딩 그룹의 정상적인 네트워크 등은 카르텔과 구분해 보장해야 한다.

화려한 어휘로 포장했지만, 실효성이 없는 국가 비전 따위의 모자를 굳이 쓸 필요는 없다. 정부가 미래를 주도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민간이 불합리한 규제에서 벗어나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여전히 남아 있는 우파 기득권 정치세력은 확실하게 물갈이해야 한다. 내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모든 게 공염불로 끝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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