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세계가 어렵다면… 첫 문장으로 시작하세요[북레터]

  • 문화일보
  • 입력 2023-08-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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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팀장의 북레터

“거기 누구냐?” 짧고 굵은 문장. 어둠과 적막의 극장 안에 이 말이 울리면 관객들의 시선과 호흡이 일순 멈춥니다. 셰익스피어 연극 ‘햄릿’의 첫 대사입니다. 이건 어떤가요. 길지만 오히려 맞추기 쉽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스스로 침대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벌레로 변한 것을 알았다.’ 당혹스러운 사건부터 알리는, 프란츠 카프카 ‘변신’의 첫 문장입니다. 영원한 명언이 된, 그래서 널리 쓰이는 문장도 있습니다. 공자 ‘논어’ 1편 ‘학이(學而)’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소.’

소설과 산문집 서른일곱 편의 첫 문장을 엄선한 책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마음산책)에서 저자는 첫 문장을 야구의 1번 타자에 비유합니다. 최대한 많이 출루해 경기 승률을 높여라. 그래야 2번 타자, 3번 타자가 나오고, 듬직한 4번 타자가 홈런을 때릴 기회를 잡는다. 다시 말해, 독자가 그다음 문장을 읽고, 그다음 장을 읽고, 마지막 문장까지 가 닿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 문장은 책이라는 집 앞에서, 그 안이 몹시 궁금해 꼭 열고 싶은 ‘문’이 되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읽고 쓰는 것이 주된 일이라,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라는 두 가지 입장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형용사 없어도 강력한 문체. 첫 문장이 소설 그 자체이기도 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시외버스는 끝없이 달렸다.’ 삶은 일방통행이라고 속삭이는 기형도의 ‘영하의 바람’,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시작부터 긴장하게 하는 손원평의 ‘아몬드’…. 그래, 이런 문장 있었지. 아, 이런 문장 있구나. 아는 것은 새롭게, 모르는 것은 놀랍게 마주하며 여러 개의 문을 열고 닫고 했습니다. 새삼 책이라는 세계에 푹 빠져 읽는다는 것의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며.

그러다 문득, 지금껏 어떤 첫 문장을 써 왔나, 나의 글은 ‘문’을 열어줬나 돌아봅니다.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지나간 기사를, 이번 주 서평을 다시 봅니다. 당연하지 않은데 당연한 것 같은 일상. 가끔은 왜 쓰는지, 또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만, 역시 답은 책에 있었습니다. 아, ‘문’이었구나, 열어주는 것이구나. ‘거기 누구냐’로 외치며 시작한 이 글. 끝까지 오셨나요. 그렇다면 답할게요. 여기는 문화일보 북리뷰입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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