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걸렸던 코로나바이러스 구조파악… ‘로제타폴드’ 론 몇초면 가능”[M 인터뷰]

  • 문화일보
  • 입력 2023-09-0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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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지난 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교수 연구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을 통한 단백질 구조 예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 M 인터뷰 - 포니정賞 수상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화학 좋아서 전공 선택했지만
이세돌-알파고 바둑대국 본 후
AI 활용한 단백질 연구로 선회

‘단백질 구조파악 정확도 90점’
구글 ‘알파폴드’개발에 자극
경쟁적으로 만든 ‘로제타폴드’
더 빨리 개발하지 못한 아쉬움

단백질-생체분자 결합 연구중
언젠간 노벨상도 노려볼 영역
생로병사의 비밀도 풀지 않을까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인공지능(AI)으로 단백질의 비밀을 푸는 과학자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의 AI 단백질 구조 예측 프로그램 ‘로제타폴드’ 개발을 주도했다. 로제타폴드 연구는 지난 2021년 세계적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서 그해 최고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로 꼽혔다. 한국인 연구자가 사이언스지 최고의 혁신 연구 성과에 등재된 것은 백 교수가 처음이다. 로제타폴드를 통하면 몇 달, 몇 년이 소요되는 단백질의 구조 분석을 단 몇 초, 몇 시간 만에 마칠 수 있다. 정확도는 100점 만점에 90점에 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단백질의 비밀을 풀어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백 교수는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2만여 개의 단백질 분자는 몸 구석구석에 산소를 보내고 근육을 움직이며 더우면 땀을 내고 추우면 움츠리는 반응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며 “단백질의 구조를 잘 이해하면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질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고칠지를 밝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확산했을 때 로제타폴드를 활용할 수 있었다면 당시 3∼6개월 걸린 코로나바이러스 구조 예측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는 게 백 교수의 설명이다. 프로그램 주 개발자인 백 교수는 지난 7월 포니정재단이 수여하는 제4회 포니정 영리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4일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실에서 백 교수를 만났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부임한 지 1년이 됐다. 한국행을 택한 이유는.

“지금은 한국에서 단백질 구조 계산 분야가 블루오션이지만 미래엔 연구자가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이것을 공부할 수 있는 학교, 교수진이 아직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남거나 연구소, 스타트업에 가는 게 나을 수 있었겠지만 한국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게 더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학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로제타폴드 개발을 주도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화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뒤 고비가 여러 번 있었다. 고등학교 때 화학 과목을 제일 좋아해서 화학과에 진학했다. 신약 개발 연구를 하겠다고 목표를 세웠는데 대학 수업에서 유기화학 실험, 합성 실험이 너무 괴로웠다. 냄새도 좋지 않고 피로감을 많이 느꼈다. 적성에 안 맞는다고 느낀 와중에 학부에 처음 ‘계산 화학 생물학’ 수업이 신설됐다. 운이 좋았다. 그 수업을 듣고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약 개발 연구를 할 수 있는데 컴퓨터를 활용하면 되고, 실험실에서 실험을 안 해도 된다는 게 신선했다. 그렇게 단백질 구조 계산을 전공하게 됐지만 사실 박사 직전에 1∼2년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같은 걸 반복하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는데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AI가 이슈로 떠올랐다. AI가 연구의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박사후연구원으로 워싱턴대를 선택한 이유는.

“워싱턴대의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연구 분야의 최고 대가다. 베이커 교수의 진짜 관심은 단백질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디자인해 신약이나 효소를 만들고 유기화합물을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백질 디자인 전에 우리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 단백질이 어떻게 생겼을지를 예측하는 일이다. 박사후연구원으로 나갈 때 AI가 열풍이었고 베이커 교수님 연구실에는 AI를 통해 단백질 구조 연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둘을 접목한 연구를 하고 싶다고 지원서에 써서 워싱턴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

―로제타폴드 개발은 어려웠나.

“제가 박사후과정을 시작하면서부터 로제타폴드에 매달렸다고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사실 로제타폴드는 6개월짜리 프로젝트였다. AI는 박사후과정을 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처음에는 단백질 구조 파악에 도움이 될 만한 작은 AI 모델을 연구했다. 그렇게 작은 연구를 깨작깨작하고 있을 때 2020년 구글 딥마인드가 AI를 활용한 단백질 구조 예측 AI인 ‘알파폴드’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전까지 인류가 단백질 구조 예측에서 100점 만점에 60점을 맞고 있었는데 딥마인드가 AI로 평균 90점을 달성했다. 솔직히 그 소식을 듣고 경악했다. 딥마인드가 다 해결해 버리면 나는 앞으로 뭘 연구해야 할지, 뭘 먹고 살지 막막했다. 다행히 당시 딥마인드는 아이디어만 살짝 공유하고 프로그램은 나중에 공개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 연구팀은 로제타폴드 개발에 나섰다.”

―딥마인드의 알파폴드2와 로제타폴드가 거의 동시에 개발됐다고 들었다.

“2021년 7월 로제타폴드 논문이 사이언스지에 실리는 날 알파폴드2 역시 네이처지에 실렸다.”

―어느 프로그램이 더 우수한가.

“둘 사이에는 장단점이 있다. 제가 로제타폴드2를 개발해서 제출 중이다. 코드 자체는 공개를 했는데, 알파폴드2랑 비교하면 정확도는 비슷하고 로제타폴드가 조금 더 계산이 빠르다. 잘 푸는 문제, 못 푸는 문제가 조금씩 달라서 상호 보완적이다.”

―상업적 가치를 기대해볼 수 있나.

“무료로 다 공개된다. 아무나 가져다가 쓸 수 있다. 알파폴드가 특허를 낸 건 나중에 혹시나 쓸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한 방어적인 조치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 모두 지금은 연구용이든, 상업용이든 무료로 쓰도록 공개하고 있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투입됐을 텐데 돈을 좀 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구글 딥마인드가 왜 무료 공개 결정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로제타폴드를 무료 공개한 이유는 AI 자체가 여태까지 사람들이 무료로 세상에 내놓은 지식을 기반으로 학습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걸 돈 받고 파는 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업적으로 쓰기엔 애매한 측면도 있다. 로제타폴드로 단백질의 비밀이 풀렸다고 하는데, 사실 이것만으로 신약 개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신약 개발로 이어지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가.

“신약 개발을 하려면 단백질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아는 데서 더 나아가 이 단백질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쉬운 예로, 누가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하면 소개팅 당사자들에 대해 잘 알고 어울릴 만한 사람들을 매칭해 줘야 하잖나. 단백질 구조 예측은 성격, 외모, 배경 등 소개팅 당사자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잘 어울릴 것 같은 조건을 갖췄다고 두 사람이 꼭 맺어지진 않는다. 구조 예측이 신약 개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세계가 학수고대했다. 로제타폴드가 있었다면 얼마나 빨라질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의 단백질 구조 연구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의 피를 뽑아서 그 안의 항체 단백질을 뽑아내고 어떤 단백질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지를 알아내야 했다. 누군가 코로나19에 걸려야 하고, 그 사람의 동의를 얻어서 피를 뽑아야 하고, 샘플에서부터 역으로 실험을 통해 찾아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사실 모든 사람이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에 3∼6개월 만에 구조를 알 수 있었다. 보통은 몇 년 걸린다. 로제타폴드를 활용했다면 몇 초, 몇 시간 만에 구조를 풀 수 있었을 것이다.”

―AI를 활용한 단백질 구조 예측이 향후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나.

“AI 생명과학 연구가 언젠가는 노벨상을 받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보고 있다. 노벨상은 늘 과학의 흐름을 바꾼 연구에 수여돼 왔다. 알파폴드와 로제타폴드도 생명과학의 흐름을 바꿨다. 옛날에는 다 실험 과학이었는데 지금은 계산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저는 수상자가 아닐 것 같다. 노벨상은 같은 업적을 세운 최대 3명에게 수여되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와 주 개발자, 연구팀을 꾸린 제 박사후과정 지도교수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님 이렇게 3분이 수상하지 않을까.”

―아쉽다. 앞으로 어떤 연구에 집중할 계획인가.

“단백질 구조를 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단백질은 움직이는 분자다. 혼자서 기능하지 않고, 기능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생태 분자와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한다. 다른 물질과 붙으면 구조가 변하고 환경에 따라 구조가 바뀌기도 한다. 단백질이 어떻게 다른 생체 분자랑 결합해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내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단백질의 비밀이 완전히 풀린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봤는지. 연구를 통해 이루고 싶은 포부는.

“저는 사실 그때그때 내가 재밌는 연구를 찾아서 쭉 왔을 뿐이다. 30년 뒤를 잘 상상하진 않는다. 다만 우리가 왜 늙어가는지, 왜 병에 걸리는지를 알면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또 지속가능한 개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생명체만큼 친환경적인 시스템이 지구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단백질을 통해 생명체를 잘 이해하고 잘 배운다면 인류가 지구에 덜 해롭게 자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연구실 건물 앞 교정에 앉아 그간 걸어온 학문의 길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박윤슬 기자



■ 백교수는…

과학고 → 서울대 → 워싱턴대 ‘엘리트코스’…수학 7등급땐 자퇴결심도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광주과학고와 서울대 화학과를 거쳐 미국 유학을 떠나 30대 초반에 서울대 교수가 된 엘리트 과학자다. 백 교수는 학창 시절 공부법을 묻자 “사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고, 특별한 공부법이랄 게 없었다”고 다소 충격적인 답을 내놓았다. 수학 교수인 아버지와 고등학교 사회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백 교수는 어릴 때부터 집 곳곳에 손이 닿는 곳마다 책이 널려 있었다고 한다. 책 읽는 것이 곧 놀이였고, 부모님은 단 한 번도 “공부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공부하고 싶으면 백 교수의 집을 찾았다. 집에서 친구들과 책을 읽고 느낀 바를 서로에게 이야기해주는 작은 발표회를 했던 순간은 학창 시절의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백 교수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공부를 즐기는 아이였다. 아무도 압박을 주지 않았지만 시험 성적이 잘 나오니 성취감이 느껴져서 스스로 열심히 했다. 전교 상위권을 계속 지켰던 백 교수는 자연스레 지역 인재들이 몰리는 광주과학고에 진학했다.

그때가 첫 인생의 고비였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생의 롤모델인 어머니께 과학고를 자퇴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했다. 공부를 좋아하는 백 교수가 자퇴를 생각한 이유는 ‘수학의 벽’이었다. 그는 “학교에 선행학습을 하고 온 친구가 많았고 고등학교 1학년 수학 과정은 한 학기에 끝나버린다”며 “수학 성적이 6등급, 7등급이 나오자 수학에 질려서 포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언제든 자퇴해도 좋으니 딱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까지만 치러보자”고 백 교수를 달랬다. 어머니의 말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중간고사 공부를 하다 보니 자퇴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무엇보다 연구 위주의 과학 수업이 수학으로 질려버린 학교생활에 다시 흥미를 갖게 했다. 백 교수는 “수학 성적도 처음보다는 올라가고, 고등학교 때 제일 재미를 느꼈던 화학을 대학 전공으로 택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젊은 나이에 학문적인 성과를 이룬 비결로 “내가 흥미 있고 재밌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좇았다”며 “인생의 큰 지향점이나 목표를 생각하면서 살지는 않는다”고 했다. 백 교수는 그러면서도 최근의 이공계 기피, 의대 선호 현상에 대해 “이해는 간다”고 말했다. 이공계를 택했을 때 미래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학계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똑똑한 학생들이 안정적인 의대로 몰려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로 학문의 길이 힘들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학계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데, 교수와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이 같이 배우고 연구하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상황이 훨씬 나아지리라 본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1990년 광주 출생 △광주과학고 △2013년 서울대 화학부 입학 △2019~2022년 미국 워싱턴대 박사후연구원 △2022~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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