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희망 대신 지금 여기 행복이 소중[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문화일보
  • 입력 2023-09-2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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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한가위

■ 호라티우스 ‘카르페디엠’

“현재의 큰 고통 잊어버리려 내일에 기대지 마”

‘죽은 시인의 사회’카르페디엠은 호라티우스의 시

인생은 흐르니 오늘을 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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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여름이었다. 폭우의 피해도 잦았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이상기후의 영향이었다고 비판과 한탄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이에 대한 공적 대비가 철저하지 못한 탓에 수많은 사람이 생활의 터전을 잃었고, 속절없이 목숨까지 앗긴 사람도 적지 않았다. 구조작전에 투입된 젊은이의 희생도 가슴 아팠다. 급류에 휩쓸려가며 구해 달라고 그가 질렀을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그때마다 소스라치곤 한다. 땅을 일구고 씨를 심고 결실을 꿈꾸다가, 나무를 가꾸며 과일을 키워나가다가, 수마의 거친 완력에 쑥대밭이 된 폐허를 바라보던 농부들의 망연자실한 모습이 안타까웠다. 우울하기에 충분한 습하고 눅눅한 여름이었다.

미칠 것만 같은 이 세상. 이해하기 힘든 충격적인 칼부림. 고되고 힘든 삶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삶에 마침표를 찍어야만 했던 젊은 선생님을 향한 울먹임. 유난히 충격적인 소식이 많았던 여름이었다.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질퍽한 분위기가 끈적하게 퍼져나가던 무척이나 힘겨운 여름이었다.

이 여름의 끝이 조금씩 보인다. 새벽녘 선선한 바람 속에서, 그리고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파란 하늘에서 우울함의 끝이 보인다. 시간이 약인가 보다. 검은 담즙으로 물들어 쓰라렸던 마음을 호호 불어줄 상냥한 미소가 코스모스의 하늘거림에서 불어온다. 그래, 시간은 흐르고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며 살아가다가 언젠가는 죽는 법.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말했지. 잘 견뎌내며 살아가는 것이 꺾이는 것보다 얼마나 더 좋은 일이냐고. 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현재의 고통을 잊으려고 몸부림치느니, 지금 여기 내가 누리는 삶을 소중하게 즐기라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기라고.

“그대 묻지 마라, 아는 것이 불경이니. 나에게, 그대에게/ 신들이 어떤 종말을 주게 될는지, 레우코노에여, 바빌론의/ 점성술에 기대지 마라. 뭐든 견디는 게 얼마나 더 좋은가?/ 더 많은 겨울을 유피테르가 허락하든, 아니면 지금/ 티레눔 바다를 맞선 바위로 힘을 빼는 이 겨울이 끝이든,/ 현명함과 술을 흐르게 하라. 짧은 인생에서/ 긴 희망은 잘라버려라. 샘 많은 세월은 말하는 사이에도/ 달아나지 않는가. 내일은 최대한 조금만 믿고,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

1989년에 개봉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속삭이듯 했던 그 유명한 말이 원래 호라티우스의 서정시 마지막 구절에 담겨 있다. 젊은 시절 친구들, 선후배들과 어울려 술 마시며,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노래 부르면서, 외쳤던 말이었다.

로마의 격동기에 카이사르는 로마의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황제가 되어 제국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야망은 공화정을 사수하려는 브루투스의 칼에 난도질을 당했다. 다시 로마는 격한 혼란에 빠졌다. 호라티우스는 로마공화정의 이상을 품고 브루투스와 함께 무장했다. 그러나 그의 꿈 또한 좌절되었다. 로마는 결국 제국이 되었고, 카이사르의 양아들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호라티우스가 깊은 깨달음 끝에 이 시를 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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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티우스도, 아우구스투스도 모두 죽었고, 그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의 시대도, 우리도, 그렇게 다 지나갈 것이다. 기쁨과 슬픔도, 고통과 환희도, 도도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갈 것이다. 흩어질 것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과 함께 지금 여기 이 시간을 소중하게 아끼며 즐겨라. 카르페 디엠. 오곡백과 무르익는 이 가을에,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붉게 익은 사과를 따서 한입 가득 아삭 씹어 먹듯이, 그렇게 오늘을 맛있게, 행복한 마음으로 누릴 수 있기를!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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