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편집자 김민정 “나는 시집 간판 만드는 ‘문단의 김상궁’… 책으로 인생 바뀐 시인 보면 기뻐 눈물”[M 인터뷰]

  • 문화일보
  • 입력 2023-09-22 09:03
  • 업데이트 2023-09-2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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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난다’ 대표이자 ‘문학동네 시인선’ 기획위원인 김민정 시인은 시인선 기획 당시를 “예쁘게 만들고 싶어 디자인에 미쳐있던 시기”라고 말했다. 별다른 이미지 없이 색과 타이포그래피만으로 구성된 ‘문학동네 시인선’ 표지는 “색종이냐”는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특유의 감각으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문호남 기자



■ M 인터뷰 - ‘詩 파는 시인’… 난다 출판사 김민정 대표

‘문학동네 시인선’ 기획하며
파격 디자인 등 다양한 시도
박준·고명재 등 신인 발굴도

원고 외울때까지 보고 또 봐
그러다 보면 갑자기 느낌 와
‘당신의… 며칠은 먹었다’ 등
시집에 문장 제목 처음 붙여

간판을 한번 잘못 달게 되면
시인의 다음은 없어지는 것
그래서 정말 미쳐서 해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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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생각 없이 서점의 시집 코너를 둘러보다 저절로 손이 이끌려 표지를 들춰보게 되는 경험을 한 번쯤 다들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이끌림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시인의 이름과 출판사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내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그 책의 표지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 아닐까.

박준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문학동네)가 신인 시인의 첫 책으로는 이례적으로 60쇄까지 찍으며 ‘시 열풍’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제목도 분명 한몫을 했다. 이 시집을 기획하고 제목을 지은 이가 바로 1999년 등단한 시인이자 출판사 ‘난다’의 대표이면서 ‘문학동네 시인선’의 편집자인 김민정(47)이다. ‘시 파는 시인’ 김민정을 지난 20일 문화일보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을 시인보단 편집자라고 이야기했다. “2005년에 제 첫 시집이 나왔고 거의 동시에 제가 기획한 시집 시리즈(‘문예중앙 시선’)가 론칭됐는데 제 시집은 별로 신경이 안 쓰인 반면 제가 기획한 시집은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아, 나는 확실히 편집자구나.’ 시를 많이 보다 보니 시로 평생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것도 느꼈죠.”

그런 그는 ‘문학동네 시인선’을 기획하며 ‘스타 편집자’로 거듭났다. 2009년부터 2년간 기획해 2011년 처음 내놓은 ‘문학동네 시인선’은 1호 최승호의 ‘아메바’로 시작했는데 일반판과 특별판을 따로 만들어 당시엔 파격으로 여겨졌던 시도들을 했다.

드라마 대본집처럼 시집을 가로로 만들었고 일부러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자체를 사용했다. 느리게, 단어 하나하나 곱씹어 시를 읽었으면, 하는 의도였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일반판의 표지 디자인은 단순한 아름다움의 극치다. 앞표지엔 아무 그림 없이 색만 가득하다. 제목만 위에 적혀 있는데 ‘시집’이란 글자의 ‘시’는 첫 번째 줄에 위치한 반면, ‘집’은 두 번째 줄로 넘어간다. 이 한 권이 한 편의 ‘시’일 수도, 시들의 모음인 ‘집’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당시 일을 묻자 김 시인은 “정말 욕 많이 먹었다”고 했다. “‘색종이냐’고 하신 분, ‘시집’의 ‘집’은 언제 윗줄로 올릴 거냐고 묻는 분 등 다양한 반응이 나왔어요. 스무 권쯤 내자 반발의 목소리는 사라지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는 “디자인에 미쳐 있었던 시기”라고 이야기했다. “디자인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도 정말 예쁘게 만들고 싶었어요. 시집이라고 안 예뻐야 한다는 법 있나요? 예쁘고 감각적인 게 좋잖아요.”

김 시인이 편집자로 더 이름을 알린 건 박준, 신철규, 고명재 등 젊은 시인들을 발굴하면서다. “처음엔 기성 시인들이 선뜻 저희와 계약하려 하지 않아, 할 수 있었던 일이 새로운 시인을 찾아내는 것뿐이어서 신인들을 찾았어요. 신인 시인의 시집을 기획할 땐 더 열성적인데, 사실 이름 있는 분들은 제가 막 뭘 해드리지 않아도 미안하지 않아요. 그런데 막 등단하고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은 잘 안 될까 봐, 잘 읽히지 않을까 봐 매일 밤을 새웠어요. 담당 편집자가 있는데도 열 몇 번씩 고치고 제목 생각하고, 그렇게 해서 정말 인생이 바뀌게 된 시인들도 있어요. 그럴 땐 정말 눈물 나게 기뻐요.”

다른 시인의 시집을 위해 일하고 그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의 별명은 ‘문단의 김상궁’이다. 스스로도 이 별명이 마음에 든다는 그는 “남들 수발드는 게 제 팔자”라고 말하며 웃었다. “남을 보필하는 위치가 전 정말 좋아요. 재미있고요. 얼마 전 지역 서점에 갔는데 한 독자분이 고명재 시인의 시집을 만들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 울었잖아요. 멋진 옷 입고 방에 앉아 있는 중전마마보다는 버선발로 여기 갔다 저기 갔다 다니며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상궁이 좋아요.”

그는 시인과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에도 관심이 많다. 그 도구로 이용하는 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다. 낭독회나 북토크 등 행사가 열리면 바로바로 SNS 라이브로 내보내고, 지역을 다니며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등 동료 문인들과의 시시콜콜한 일들도 모두 SNS를 통해 공유한다. 그는 “어떤 한마디가 한 사람에게 가닿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시인들의 경우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시인을 알면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시인과 독자의 거리를 좁히려 한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은 SNS를 잘해요. 그렇게 하면 독자들이 시인의 일상을 볼 수 있잖아요. ‘이 시인이 꽃을 좋아하는구나’라는 것을 알면 ‘시에 꽃 이야기가 많네’로 연결돼요. 시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지고 시인도 더욱 친근하게 느끼는 거죠.”

김 시인은 시집에 문장 형태의 제목을 붙여 하나의 유행으로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비롯해 신철규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2017·문학동네) 등이 그 예다. 박준 시집의 제목을 두고 어느 중견 문인은 “어법에 맞지 않다”고 전화를 해오기도 했다.

김 시인은 제목을 어떻게 짓겠다고 마음먹기보다는, 원고를 보다 보면 제목이 자연스레 떠오른다고 했다. “원고를 보다 보면 제목으로 하고 싶은 구절이, 종이 위에 물이 번져 글자가 크게 보이는 것처럼 갑자기 크게 보여요. 그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냐면요, 시집 전체를 외우고 뜯어 먹을 때까지 계속 봅니다. 시집을 들고 욕조에도 들어가고 사우나에도 들어가고, 그렇게 계속 보다 보면 느낌이 오는 게 있어요.”

시집의 주요 독자층인 20∼30대 여성의 감각을 자극하는 제목들을 만들어내지만, 의외로 그는 독자를 염두에 두진 않는다. “이 시인의 시를 제대로 관통해서 이 시집 전반에 걸맞은 간판을 내거는 게 제 역할이에요. 특히 이미 알려진 분들의 시집보다는 신인 시인들의 시집에 더 열성을 쏟습니다. 제가 간판을 한 번 잘못 달면 이 시인의 다음은 없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말 ‘미쳐서’ 해요.”

2009년부터 ‘문학동네 시인선’ 기획위원을 맡아 시인선을 펴내온 그는 올해를 끝으로 기획위원에서 물러난다. 다음 달 11일 나올 ‘문학동네 시인선’ 200호가 그가 관여하는 마지막 호다. 아쉬움은 없을까.

“사실 이전부터 후배 편집자들이 잘 만들어줘서 저는 관여하는 부분이 적었어요. 이제 정말 굳이 제가 없어도 잘해서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잘 컸으니 잘 자랄 것을 믿기에 더한 참견을 안 하겠다는 의미지요. 때가 되면 알아서 자기 의자를 치울 줄 아는 사람이 어른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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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쓴 구절 구절이 나를 일으키고 토닥이는 말… 시는 우리를 살리죠”

■ 김 대표가 말하는 시심

“마음을 치유하는 약 같아
시처럼 삶을 살아가려 해”


김민정 시인은 스스로를 ‘시에 미친 여자’라 이야기한다. 원래는 소설을 쓰려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갔다가 최승자 시인의 “오 개새끼, 못 잊어”란 문장을 읽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검은 나나의 꿈’으로 1999년 등단한 후 2005년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열림원)에 이어 2009년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지성사), 2016년 ‘아름답고 쓸모없기를’(문학동네), 2019년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문학과지성사)를 냈다. 그는 스스로를 시인보다는 편집자로 본다지만,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그의 시들은 시인 김민정 고유의 개성적인 시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는 시를 “살리자는 마음”이라고 했다. “시심(詩心)이 어떤 마음인가 생각해보면, ‘꽃을 꺾자, 나무를 죽이자’는 마음이 아니잖아요. 살리자는 마음이죠. 시인의 말, 시인이 쓴 구절들을 보면 다 나를 일으키는 말이고 등을 토닥이는 말이더라고요. 시는 우리를 살게 해요. 최소한 저는 정말, 시가 살렸어요.”

그는 이어 시는 마음을 치유하는 약이 된다고 말했다. “나의 어떤 부분이 어렵고 상처받았는지를 알 수 있어요. 시를 읽다 밑줄을 그은 부분을 보면 나조차도 또렷하게 설명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알 수 있죠. ‘내가 왜 여기에 밑줄을 그었지?’ 하고 자문해보면 내 마음이 보여요. 시는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약이 되는 것 같아요.”

김 시인은 최근 시집을 직접 사서 읽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데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마음은 더 깊어진 것 같다고 했다. “직접 책을 사서 문장에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하는 독자들이 적어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그런데 ‘문학을 누가 읽냐’는 말은 제가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할 때부터 들었어요. 그 누가 있더라고요. 정말 꼼꼼히 읽고 특정 시인의 팬이 되는 독자들이 있어요. 문학을 좋아하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가 전보다 줄었다고 할지언정 그 진심과 진실성은 더 두꺼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시인들과 함께 독자들을 만나는 행사에 가면 격한 감동을 느껴요. 세상을 아름다운 언어로 재발견하고 관찰하자는 거잖아요. 그분들의 그런 마음이 참 귀하죠.”

김 시인에게 우리가 지금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안 읽어도 상관은 없어요. 그런데 세상에는 숨어 있는, 보석같이 아름다운 것들이 있어요. 살아있는 동안 그 보석을 발견해서 내 눈이 커지고 내 호흡이 가빠지는 경험을 하는 건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여전히 새 원고가 올 때마다 마음에 설레요. 전 앞으로 이렇게 계속 시와 함께, 시처럼 삶을 살아가려 해요.”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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