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맵게, 때론 달게… 입맛 살리는 ‘파씨 가문’[이우석의 푸드로지]

  • 문화일보
  • 입력 2023-10-05 09:03
  • 업데이트 2023-10-0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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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파를 듬뿍 넣어 부치는 동래파전. 동래할매파전.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제철맞은 대파·양파

아시아가 사랑하는 대파
열 가하면 매운맛 사라지고 달달
韓, 국탕에 곁들이고 전·김치로
中선 기름 내고 日선 꼬치구이

서양에서 온 양파
수분많아 아삭하고 파보다 달아
고기요리에 넣으면 잡내 잡아줘
서양선 수프·튀김·샐러드 즐겨


입맛을 잃을 땐 매콤한 맛이 좋다. 얼얼한 고추의 신랄(辛辣)한 매운맛이 아니라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향신채(香辛菜)는 기운과 입맛을 북돋우는 효과가 있다. 대파나 양파가 우리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다.

한국맥도날드가 출시한 진도 대파 크림 크로켓 버거가 소비자로부터 인기를 끌며 업계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향과 맛이 진한 진도 대파를 활용한 지역 농산물 특화 상품인 진도대파버거는 출시 일주일 만에 무려 50만 개나 팔렸다고 맥도날드 측은 밝혔다. 한국맥도날드는 진도 대파를 전국에 알렸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진도군수로부터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파버거에서 주목할 점은 오랜 시간 한식 주재료로 여겨졌던 대파가 양식에도 퍽 어울린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대파는 중국 서부가 원산지로 추정되는 작물이다. 동아시아에선 모두 즐겨 먹었지만 예전부터 서양에선 거의 재배하지 않아 아예 존재를 모르던 식용채소다. 비슷하게 생긴 리크(Leek)나 칼소트(Calcot)가 있지만, 양파의 일종이며 대파와는 품종이 서로 다르다. 여느 작물보다 추위에 강해 1년 내내 수확할 수 있지만, 주요 수확 철은 양파처럼 여름을 포함한 가을까지다.

외국에선 봄 양파(spring onion), 녹색 양파(green onion) 등으로 부르지만, 이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양파의 다른 품종으로 여긴 탓이다. 반대로 파를 먹어오던 한국에선 양파를 두고 서양에서 왔다고 양(洋)파, 중국에서 전해졌다고 호(胡)파, 구슬처럼 둥글게 생겼대서 옥(玉)파 등으로 이름 붙였다. 일본어 다마네기가 ‘구슬파’란 뜻이다.

우리나라에선 과거 낙동강 하구에서 대파를 많이 재배했다. 부산 서부 지역인 명지 대파로 유명했지만 요즘은 이곳에 대파밭만큼이나 빽빽한 아파트 신도시가 생겨나며 경작지가 많이 사라졌다. 이젠 앞서 언급한 진도나 신안, 평창의 대파가 많이 알려졌다.

파는 기본적으로 매운 향과 맛이 진하지만 열을 가하면 매운 기운이 사라지며 달달한 맛이 난다. 그래서 국이나 볶음, 찜 등 여러 요리에 두루 쓰인다. 국을 끓이고 먹기 직전에 파를 썰어 넣는다.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한다. 주로 배추를 수확하기 전인 봄과 여름에 파김치를 담근다.

한국인의 대파 사랑은 유별나다. 안 들어간 음식이 거의 없다. 파가 떨어지면 분식점도 문을 열지 못할 지경이다. 왜 거 떡볶이 먹다가 마지막 한 점인 줄 알고 집었더니 대파였던 기억도 있지 않나. 곰탕과 설렁탕은 물론이며 육개장, 국수, 뭇국 등 무수한 국·탕 요리는 물론 심지어 인스턴트 라면에도 대파를 곁들인다. 쪽파나 대파는 전을 부치기도 한다. 파전은 잔칫날 챙겨 먹는 전 종류 중 기본이며 산적에도 기본 재료 중 하나로 대파를 쓴다.

대파를 즐기기론 중국도 빠지지 않는다. 볶음밥, 총요우빙(蔥油餠·대파전병) 등 많은 음식에 대파가 들어간다. 식용 기름을 낼 때 아예 돼지비계와 대파, 생강 등을 볶아서 풍미가 좋은 파 기름을 내서 쓴다. 중국인들은 날파를 그대로 먹는 것까지 즐긴다. 개항 시기에 청나라 산둥에서 온 노동자 쿨리(苦力)들이 늘 호떡 한 장에 날파 한 뿌리로 끼니를 해결했다는 자료도 있다. 춘장도 원래 대파를 찍어 먹는 장인 총장(蔥醬)에서 발음이 바뀌어 춘장이 됐다는 설도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에선 요즘처럼 생양파를 주듯 생대파를 춘장과 함께 냈다. 양파 수확량이 늘어난 이후 달달하고 아삭한 맛이 대파를 대신하게 됐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파와 양파를 곁들이는 일본 징기스칸 요리. 이치류.



일본에서도 쪽파와 대파를 즐겨 먹는다. 특히 음식을 꼬치에 꿰어 구운 야키도리에는 대파를 닭고기 사이에 넣은 네기마(ねぎま)가 대표적 메뉴다. 우리처럼 대파를 우려낸 국물도 즐긴다. 쪽파를 잔뜩 얹은 라멘이나 소바도 인기다. 초밥집에서 찬으로 내는 염교(락교) 역시 쪽파 뿌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작물이다. 파처럼 보인다고 모두 대파는 아니다.

최근엔 대파를 다양한 곳에 쓴다. 고깃집에서 채 썬 대파를 내주는 것은 기본이고 대파를 곁들인 곱창이나 치킨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 곁들여 내주는 대파 채 무침은 따로 파조리개(파절이)라 한다. 이를 잔뜩 넣고 무쳐내는 골뱅이 무침도 사실 주재료는 대파다. 기름진 음식에는 어김없이 대파를 곁들인다. 강한 향취를 품은 대파가 음식의 기름기를 담백하게 걷어 주는 이유다.

대파에는 철분, 인, 칼슘, 칼륨 등 다양한 무기질과 항산화물질인 셀레늄을 함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리보플라빈, 니아신, 티아민, 비타민(A·C·P) 등이 풍부하다.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매운맛을 내는 성분인 알리신은 감기 예방에 좋다고 한다. 뿌리 부분은 총백(蔥白)이라 해서 한약재로도 썼다.

지금부터는 수확 철을 맞은 양파 이야기. 모양은 다르지만 양파는 대파와 한집안(부추아과 부추속) ‘사촌’이다. 4000년 이상 재배되어 온 작물로 서아시아나 지중해 지방을 원산지로 추측하고 있다.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190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양파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기록된다. 동의보감에 자총(紫蔥)이 등장하는데 지금의 적양파와 같은 종인지는 알 수 없다.

양파는 일조량이 많은 황토에서 잘 자라는 특성 덕에 전북 부안과 전남 무안, 신안 등지에서 많이 재배한다. 경남에선 창녕과 남해의 양파가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 우리가 주로 먹는 건 둥글게 자라는 비늘줄기 부분. 대파보다 수분이 많아(90%) 아삭하고 포도당을 많이 함유해 설탕이 귀하던 시절 단맛을 내기 위해 요리에 많이 썼다. 고기 요리에 넣으면 달달한 맛과 함께 은은한 향기로 잡내를 잡아주고 영양분까지 더하니 육류 요리에 많이 쓴다.

전래 식품인 양파는 도입 후 금세 널리 재배되며 우리 식탁을 장악했다.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연육 작용도 하며 뻑뻑해지지 않도록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햄버거에 슬라이스 양파를 넣으면 복합적으로 맛과 저작감이 좋아진다. 아예 햄버거 패티나 미트볼, 돈저냐를 빚을 때 갈아서 넣기도 한다. 알양파를 그대로 김치로 담가 먹기도 하는데 수확 철인 8월에 며칠 익혀 내면 여름철 입맛을 살려주는 별미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양파를 넣어 볶은 짜장. 간짜장은 양파가 나는 지금이 제철이다.



양파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중국음식점이다. 짬뽕이나 우동, 짜장 등 식사 메뉴는 물론, 요리에서도 양파를 많이 쓰는데 특히 간짜장은 재료 대부분이 양파다. 따라서 양파 수확 철인 요즘이 중국 음식의 ‘제철’이다. 신선한 양파를 볶아 만든 간짜장이 특히 맛있을 때다. 매운 대파보다 양파가 그대로 먹기에 더 좋다. 중국음식점에서 춘장에 찍어 먹는 날파를 생양파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식초를 뿌리면 매운 기운이 가신다.

양파는 일식 요리에도 두루 쓰이는데, 특히 카레나 규동, 스튜 등에 넣는다. 일식 볶음 요리에 빠지지 않는 것이 양파다. 예로부터 양파를 상식해 온 서양에선 샐러드 재료나 수프, 튀김으로 많이 섭취한다. 특히 달달한 맛의 양파 수프는 프랑스 대표 가정식 요리다.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샹젤리제 등 파리 거리에서 따끈한 양파 수프와 함께 뱅쇼(끓인 와인)를 파는 노점이 생겨나기도 한다.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에서도 양파는 즐겨 먹는 향신채다. 커리에 넣거나 볶음 요리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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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란 흔한 주례사나 장바구니 한편에 삐죽 나온 대파 한 단의 익숙한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 대파는 우리 삶 속에 늘 함께해 온 채소다. 이제 더위도 보냈으니 고기 일색의 식단에서 잠시 벗어나, 인생살이처럼 맵고도 달달함이 함께 조화로운 제철 양파와 대파의 짜릿한 맛으로 무뎌진 입맛을 돋워 보면 어떨까.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이치류 = 살치살과 등심 등 좋은 부위의 양고기를 일본 ‘징기스칸’ 스타일로 구워 파는 집. 언제나 싱싱한 양파와 대파를 곁들인다. 흘러내리는 양 기름에 구워서 함께 먹으면 고기 맛과 향이 더욱 좋아진다. 양과 파가 퍽 어울리니 진정한 ‘양파’ 맛집이다.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3안길 44. 살치살 3만1000원.

◇파막창바이반하고 = 이름은 길지만 성주에서 ‘파막창’ 하면 이 집이다. 막창 안에 대파를 박아 넣었다. 당연히 막창 특유의 냄새는 익히면서 사라진다. 단맛과 향이 강해진 대파가 막창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1길 8-12. 2만 원(300g).

◇동래할매파전 = 전국에서 파전으로 가장 유명한 지역이 동래다. 쪽파와 해물을 찹쌀풀로 지져낸 부산 전통 음식. 여느 파전과는 달리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살짝 간장에 적셔 먹으면 향긋한 파 향을 즐기기에 좋고 초고추장을 찍으면 아삭한 파와 잘 어우러진다. 부산 동래구 명륜로94번길 43-10. 2만8000원.

◇진향 = 칭징(淸蒸)우럭은 청장에 쪄낸 조피볼락(우럭)이다. 대파채가 필수로 수북하게 오른다. 달달한 간장이 촉촉한 생선살에 스며 감칠맛을 더한다. 부드러운 살점을 파채와 씹으면 맛이 잘 어우러진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1길 60 1층. 3만4400원(회원가).

◇해공 = 다양한 토종닭 야키도리를 오마카세(맡김메뉴)로 내는 집. 닭꼬치를 부드럽고 촉촉하게 구워내 쓱쓱 들어간다. 네기마는 닭다리살 사이에 대파를 끼워 구워낸 메뉴. 숯불에 그을린 대파 향과 즙이 감칠맛을 더한다. 부산 수영구 민락본동로19번길 30-5. 야키도리 1개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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