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걷는 당신, 축복받은 산책자[북레터]

  • 문화일보
  • 입력 2023-10-20 09:24
  • 업데이트 2023-10-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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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팀장의 북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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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가 되려면 하늘에서 은총이 내려야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걷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맨발 걷기’가 유행인 요즘, 세상에서 가장 쉽고 흔한 게 ‘걷기’ 같아 보였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소로는 산책엔 여유, 자유, 독립이 꼭 필요하고, 이는 돈으로 살 수 없기에 ‘걷는’ 그 자체가 축복이라고 역설합니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 말, 공감합니다. 건강 때문에 걷는다지만 사실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건강이니까요.

곳곳에 흙길이 조성되고 걷기 열풍이 화제인데, 인터넷에는 면역력이 증대되고 불면증이 해소된다며 그 효능을 ‘간증’하거나 ‘검증’하려는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오래 속썩이던 통증들이 사라졌다는 지인의 ‘걷기 예찬’에도 고개를 갸웃하다, 걷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논하는 책이 나와 냉큼 집어 들었습니다. 영국 BBC의 프로듀서이자 편집자인 수지 크립스가 엮은 ‘걷기의 즐거움’(인플루엔셜). 소로는 물론, 장 자크 루소, 버지니아 울프,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등 17∼20세기 작가 34명이 ‘걸으며’ 써내려간 사유와 감성의 문장을 한 권에 담았습니다.

책에 따르면, 루소에게 걷기는 ‘철저하게 자신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고백록’에서 “걷기는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정신을 깨워 주었다”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혼자 걸어서 여행할 때 온전히 살아 있다고 느꼈던 루소는 ‘완전한 삶’을 영위한 때로 젊은 날을 기억합니다. 또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이자 역사학자였던 레슬리 스티븐은 자신의 글쓰기 대부분이 “이리저리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얻은 부산물”이었다고, 몸과 마음을 만나게 해주는 ‘걷기’에 대해 설파합니다. 작가들의 ‘걷기 철학’에는 고결한 사유와 함께 어린이 같은 만족감이 있어서, 읽다 보면 금세 이 ‘단순한’ 행위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얼마나 손쉬운 명상법이자 치유법인지 설득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내 운동화를 양손에 맡긴 채 흙을 밟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또 한 사람이 산책자가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은총이 내린 것이지요.

그런데 실은, 이 위대한 작가들의 말보다 더 강렬했던 말이 따로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는 저자의 친구에게 어머니가 보냈다는 딱 한 줄의 문자.

“바나나 하나 들고 산책 나가렴.”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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