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고 정체하면 죽는다… 이것이 100년 화랑의 비결”

  • 문화일보
  • 입력 2023-11-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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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완규 통인가게 주인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통인가게 4층에 전시된 고미술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 1924년 문 연 ‘통인가게’ 주인 김완규

어릴 때 심부름하며 안목 길러
20代 때 골동품 가게 물려받아

이곳서 ‘묘법’ 첫 전시한 박서보
다 망해도 통인은 남을거라더라

고미술서 현대미술로 사업확장
홍콩·뉴욕 등서 갤러리 열기도

골동품 넘어 문화·예술 파는 것
남은 삶에서 또다른 도전하겠다


“1976년에 내가 박서보 작가한테 물어봤어요. 왜 우리 화랑에서 ‘묘법’으로 첫 전시를 하느냐고. 그랬더니 하는 말이 다른 화랑은 다 망해 없어져도 통인은 남을 거라고 하대요. 그러니까 우리 화랑에서 처음으로 그림을 걸겠다는 거지.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벌써 100년이 흘러가 버렸어요. 하하하.”서울 종로구 관훈동 16. 안국동 사거리에서 탑골공원을 잇는 인사동 ‘쌈지길’ 정중앙에 ‘통인가게’가 있다. 아기자기한 전통 공예품에 홀린 외국인 관광객과 오래된 고미술품을 보러 온 노부부, 서양회화 같은 현대미술을 공부하는 학생까지 별다른 접점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쉼 없이 찍히는 곳이다. 날이 저물면 우리 가락을 부르는 소리꾼이나 수준급 오페라 가수가 방앗간에 날아드는 참새처럼 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뚝 솟은 독특한 모양의 7층짜리 건물이 인사동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사랑방이 된 건 50년 전부터다. 도자기와 오래된 서화에 열광했던 고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들렀고, 시인과 소설가, 신문기자들도 약간의 과장을 보태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고 한다. K-미술을 대표하는 단색화 거장 고 박서보 화백이 묘법 화풍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던 장소도 이곳이다. 당시에도 통인가게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미술 상점이자 화랑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통인가게가 한 달이 지나 해가 바뀌면 창립 100년을 맞이한다. 지난 14일 인사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통인가게 꼭대기 ‘상광루’에서 김완규 통인그룹 대표를 만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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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로만칼라 셔츠에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큼지막한 반지를 낀 세련된 차림의 노신사는 이날 ‘통인가게 주인’이라 적힌 명함을 건넸다. 통인갤러리부터 이사업체 통인익스프레스 등 20여 개 회사를 거느린 대표답지 않은 소박한 직함이다. 1924년 부친인 김정환 회장이 세웠던 당시 이름 그대로다. 그는 “선친이 통인가게 주인이었단 게 인상적이었다”며 “고미술부터 화랑, 다른 법인까지 모두 내가 100% 주인이다. 자신 있게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주인의식과 긍지는 부친과의 약속에서 비롯됐다. 한양 사대문 밖을 벗어난 적 없는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의 자제였던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가구점으로 시작해 한국에서 제일 좋은 물건만 내놓는 골동품 가게를 만들었다. 코흘리개일 때부터 잔심부름을 하며 미술품 보는 눈을 기르다, 1973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부친의 일을 물려받게 된 김 대표가 여태껏 가게 주인장을 고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00년 가는 가게를 만들어 보라는 게 부친의 유지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호암 (이병철) 선생을 비롯해 한국화학의 김종희 회장은 물론 데이비드 록펠러도 우리 가게를 자주 드나들었다”며 “적어도 우리 가게에선 가격 한 푼 깎는 일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인사동에서나 알아주는 골동품 가게로 만족할 수 없었다. 골동품이 아닌 문화·예술을 파는 가게 주인장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골동품은 구입하는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되지만, 문화·예술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등 잘나가는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제대로 된 예술가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갤러리를 열고 동양 미술품뿐 아니라 현대미술까지 전시를 개최하며 외연을 확장한 이유다. 그는 “지금도 새로운 예술을 하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해외에 소개하느라 바쁘다”면서 “1980년대에 홍콩에 갤러리를 열었고, 2000년대엔 미국 뉴욕에 갤러리를 열어 8년이나 유지하며 우리 작가들을 소개했다”고 말했다.

고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서비스 확장은 또 다른 선순환을 낳기도 했다. 김 대표는 “고미술품부터 한국 화가들의 그림을 해외에 잘 소개하려다 보니 포장 서비스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물류업에, 우리나라 첫 포장이사 서비스인 통인익스프레스까지 사업을 뻗치게 됐다”면서 “통인가게 로고가 호작도인데 까치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고, 나쁜 일은 호랑이가 물리치지 않느냐. 그러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화랑이란 수식어와 어울리지 않게 김 대표는 늘 ‘변화’를 강조한다. 그는 “고미술을 하려는 젊은 친구들이 조언을 구하면 항상 변화하라고 한다”면서 “변하지 않고 정체되면 죽는다. 멈추지 않고 변화해 왔기 때문이 통인가게가 10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100주년을 맞이하는 순간 또 다른 변화에 나설 것도 예고했다.

그는 “내년에 가게가 설립된 지 100년이 되면 선친과의 약속을 다 지키게 된 것”이라며 “남은 삶이 한 갑자(60년)라 생각하고 나만의 사업을 또 한 번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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