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슬픔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북레터]

  • 문화일보
  • 입력 2023-11-24 09:21
  • 업데이트 2023-11-2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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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팀장의 북레터

상실, 애도, 치유…. 이런 키워드가 많은 책엔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대부분 ‘이별’에서 시작하고, 그것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죽음, 즉 ‘완전한 단절’인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겪고 마주할 일이지만, 그 거대한 충격과 깊은 슬픔, 그러니까 실재하는 사람의 실제를 들여다보는 일이 힘겨워서입니다. 그런데 이번 주엔 유독 그런 책이 많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알려고, 또 보려고 하는 듯합니다. 우린 작고 세상은 가차 없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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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평론가 필립 케니콧의 ‘피아노로 돌아가다’(위고·위 사진), 퓰리처상을 수상한 후아 쉬의 ‘진실에 다가가기’(RHK·가운데), 그리고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아래)는 각각 어머니·친구· 형의 죽음을 맞닥뜨린 저자들이 비탄에 빠져 있다가 음악, 글쓰기, 미술을 통해 멈췄던 걸음을 다시 내딛는 이야기입니다. ‘충격-혼란-회복-화해’라는 상실 극복의 일반적 ‘서사’를 벗어나지는 않지만, 각 단계를 지나는 기간과 애도 방식은 저마다 다릅니다.

케니콧은 5년에 걸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배우며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이해하려 합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이 곡을 습득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음악을 사랑했으나 자식들에겐 냉혹했던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기억과 교차하며 ‘조화’를 찾아갑니다. 대만계 미국인 2세인 후아 쉬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비슷한 문화를 공유했던 친구 켄의 죽음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책은 켄이 살해당한 후 20년이 지나서야 함께 10대 시절을 보낸 1990년대를 회고합니다. 친구를 변형하거나 미화하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일이 최선의 애도라 믿는 저자는 과거 켄에게 품었던 의문까지 고백하며, 이제 그를 받아들이고, 함께 나이 들어가겠노라 다짐합니다. 브링리는 자신의 결혼식 날 형이 세상을 뜨자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완벽한 고독’ 속에 숨어듭니다. 미술관 경비원으로 10년. 매일 인류의 위대한 걸작들과 교감한 저자는 삶과 죽음, 일상과 예술의 의미를 발견하고, 서서히 세상으로 나옵니다.

모두 미국에서 출간돼 호평받고,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음악적 지식, 이민 2세, 경이로운 예술품 등 애도를 끌고 가는 독특하고 지적인 매개물도 눈길을 끌지만, 무엇보다 압도적인 슬픔 앞에서, 저자들이 무방비 상태의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게 가장 큰 힘이자 미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위로와 안식의 글이란, 사실 이렇게 고통스럽게 탄생하기에, 앞으로는 더 용기를 갖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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