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나한테 맥주 한 잔을 주면, 난 그걸 맛있게 마셔버릴 거야[소설, 한국을 말하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1-27 09:02
  • 업데이트 2023-11-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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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의자 작가



AI(인공지능)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가속하는 저출산과 고령화, 사교육 광풍, SNS가 발신하는 끝 모를 욕망 속에서 한국인은, 또 한국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 9월 4일부터 연재에 들어간 문화일보의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15명이 들여다 본 ‘지금, 한국’을 짧은 소설에 담았다. 매주 월요일 한 편 씩 공개되며, 12월까지 계속될 예정.

(12) 김연수
집중 - 어쩌면 영영, 아마도 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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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느냐는 질문은 언제나 어려웠다. 내게 삶은 곡예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줄에서 안 떨어지려고 버둥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지금 잘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만 할까? 꿈과 현실, 삶과 일,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그렇게 줄타기를 하다 보면, 갑자기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가 온다. 9년 만에 우연히 길을 가다가 지현을 만났을 때가 바로 그럴 때였다. 나는 병원 진료 때문에 외출했다가 회사로 복귀하던 길이었고, 지현은 지하철 입구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를 알아보자마자 지현은 “잘 살고 있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얼떨결에 “아니, 뭐, 그래요”라고 대답했다.

“무슨 대답이 그래요? 잘 살고 있다는 거예요, 못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지현 씨는 어때요? 잘 살고 있어요?”

내가 되물었다.

“언니가 보기에는 어때요?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제가?”

“글쎄요,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완전히….”

“망한 인생?”

내 말끝을 받아 그렇게 말하면서 지현은 깔깔거리고 웃었다.

“아니, 아니요. 완전히 줄에서 내려선 사람. 겉모습부터가 너무 자유로워 보여요.”

“집도 없고, 직장도 없고, 애인도 없으니까 서울에서는 완전히 망한 거 맞아요.”

“영영 외국에서 안 돌아올 줄 알았는데, 언제 귀국했어요?”

“2년 전에요.”

“서울을 떠난 게 2014년이었죠?”

“네. 7년 동안 여행 실컷 했지요.”

그러자 2014년의 일들이 떠올랐다. 그 무렵, 업계 대표들 사이에서는 명상 붐이 일었다. 명상의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한 구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회사에서도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해 목요일 오후에 신청자를 대상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배우는 시간을 마련했다. ‘목요일의 마음챙김 수업’을 줄여 부른 ‘목마 수업’에서 지현을 처음 만났다. 우리는 일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비슷했다. 돈도 중요했기에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틈만 나면 딴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다 때려치고 무작정 세계여행을 한다거나. 퇴근한 뒤 따로 만나 그런 엉뚱한 소리 사이사이에 진심을 섞어 말할 수 있는 회사 동료는 지현뿐이었다.

그래서 2014년 여름, 그녀가 사직서를 내고 세계여행을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무척 놀랐다. 하지만 지현이 인트라넷에 올린 글을 읽고 나자 처음의 충격은 조금씩 가시면서 질투심만 남았다.

제가 스무 살이 되자 아빠가 맥주를 사주셨어요. 술맛이 어때? 아빠가 제게 물었고, 저는 모르겠다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아빠가 말했어요. 지금 아빠랑 처음으로 술 마시고 있잖아. 그 생각하면서 마셔 봐. 어때? 여전히 저는 그 맛을 모르겠더라고요. 지금은 이게 아빠랑 처음 마시는 술이라는 걸 알고 마시잖아. 하지만 마지막은 달라. 이게 아빠랑 마지막으로 마시는 술이라는 걸 알면서 술을 마시는 딸은 아무도 없어. 마지막으로 마신 술은 지나고 난 뒤에야 그게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나는 네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목요일 오후마다 참여한 마음챙김 수업 덕분에 저는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매 순간을 사는 법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이 마지막 순간이라면 나는 뭘 해야 하지? 저는 퇴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회사 그만두며 지현 씨가 올린 글을 읽고 최 이사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네요. 회사에서 마음챙김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지현 씨뿐이라고. 그분은 젊었을 때 김광석의 콘서트에 가지 않은 게 제일 후회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마지막 콘서트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는 거죠.”

“맞다, 최 이사님이 있었지. 그분은 좀 달랐죠? 그때도 ‘어째서 그런가요?’라고 마음챙김 강사에게 물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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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마음챙김이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어떤 편견이나 판단 없이 그저 지켜보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빅테크 기업들은 마음챙김이 직원들의 집중력을 강화시키고 생산성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한다고 덧붙였다. 회사에 도움 되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랬겠지만, 강사는 마음챙김을 하면 회사 일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최 이사가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그런가요?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편견이나 판단 없이 그저 자기 마음을 지켜보고도 회사 계속 다닐 사람이 있을까요?

“한동안 그 말 우리가 많이 써먹었잖아요. 위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때마다 ‘어째서 그런가요?’라고 말했잖아요.”

우리는 웃었다. 그때 이야기를 하니 9년 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전세금을 빼서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그녀가 그때 나는 무척 부러웠다. 그러나 전세금을 뺄 자신이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면 그건 아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미래에 대한 계획으로 가득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로 내내 들었던 게 그거였기 때문이었다.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라, 저러저러한 사람이 되어라. 그 마음챙김 수업 말고 내게 어떤 사람도 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 결국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다들 이름이 있는데, 나만 아직도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 사람’이 되어 꿈과 현실, 삶과 일,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여긴 갈수록 지옥인데, 한국에는 왜 돌아온 건가요?”

내가 물었다.

“아버지가 폐암에 걸리셨거든요.”

지현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한국에 돌아온 게 2년 전이라고 했으니 그사이에 그녀의 아버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지현이 말했다.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나는 지현 씨 아버지라면 아빠랑 마지막으로 마시는 술이라는 걸 알면서 술을 마시는 딸은 아무도 없다는 말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그러자 지현의 눈에 금세 눈물이 맺히더니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러면서도 지현은 웃고 있었다.

“저는 알았어요! 병원에서 제가 울고 있었더니 아빠가 말했어요. 인생이 나한테 쓴 레몬을 주면 그걸로 내가 뭘 한다고 했지? 제가 대답했죠. 달달한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라고요. 어릴 때부터 늘 듣던 말이거든요. 마찬가지야. 인생이 나한테 맥주 한 잔을 주면, 난 그걸 맛있게 마셔버릴 거야. 그래서 수액을 꽂은 아빠랑 병원 앞 편의점까지 갔어요. 제게 마지막으로 아빠랑 술 마실 기회를 주시려는 거였죠. 저는 물방울이 맺힌 맥주 캔을 한참 바라봤어요. 이게 아빠랑 마시는 마지막 술이구나 하면서요.”

지현이 말했다.

“이제 다시 취업하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어째서 그런가요?”

지현이 내게 반문했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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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회사 그만두고 세계여행 하겠다는 건 언니 생각이었잖아요. 그래서인지 처음에 저는 엄청 불안했어요. 그런 초창기의 일이었는데, 경비 걱정 때문에 비행기 대신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캄보디아 시엠레아프까지 가는 버스를 탄 적이 있었어요. 태국에서는 길이 좋았어요. 그래서 한 치 앞도 모르고 내내 돈 걱정만 했답니다. 전세금 다 쓰고 나면 돌아가서 뭘 하나? 이렇게 돈도 못 쓰고 다니는 게 무슨 여행인가. 그러다가 국경을 넘어가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캄보디아에는 길이 파이고 끊긴 곳이 많아 버스가 널뛰기 시작한 거예요. 그 길에서 제 인생의 오토파일럿 모드가 박살 났답니다.”

“오토파일럿 모드요? 비행기처럼요?”

“네, 최대한 손해를 안 보는 경로를 택하는 비행기처럼요. 그거 아세요? 비행기에 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잔다는 거? 하지만 그 버스에서는 한시도 잠들 수가 없었어요. 방심하다가는 제 몸이 어디에 가서 부딪힐지 알 수 없었거든요. 덕분에 저는 제 옆에 누가 탔는지, 그 사람의 가방 속에는 어떤 주전부리가 있는지, 우리가 지나가는 곳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알게 됐답니다. 이제 저는 잠들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티켓을 구하는 삶으로는 영영 돌아갈 수가 없게 됐어요.”

지현이 말했다. 지현이 서 있는 길 옆으로 오후의 온화한 빛이 드리워졌다.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그 빛을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방금 인생이 나한테도 맥주 한 잔을 내밀었어요. 우리 낮술 마시러 가요.”

나는 오랜만에 만난 지현이 좋았다. 지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나는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영영, 아마도 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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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집중을 잃는다는 건 행복을 잃는다는 뜻

■ 작가의 말


“집중을 잃는다는 게 단순히 몰입하지 못한다는 뜻만이 아니라 행복을 잃는다는 뜻 같습니다.” 소설은 행복해지려 하는데, 행복과 더 멀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풍경이다. 김연수 작가는 이를 비행기의 ‘오토파일럿’에 비유한다. 열심히 돈을 벌어 올라탄 비행기에서 우리는 내내 잔다. 삶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소설가라고 뭐 다르겠습니까?” 김 작가도 그런 시절이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기업체에서 창의력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더군요.” 김 작가는 그때 “소설을 쓰고 싶으면 제일 먼저 소설을 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지현’이 ‘마음챙김’ 수업 후 무엇에 ‘집중’할지 알아차리듯. 그는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자신과 주변에 신경을 쏟아야 하는 삶으로 옮겨간다. 깨어 있기를 선택한다. 김 작가는 “요즘엔 소설만 쓰고 산다. 오래 원했던 삶인데 이제 겨우 그렇게 산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라면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 김 작가는…

1970년생. 1994년 등단 후 ‘꾿빠이 이상’ ‘일곱 해의 마지막’ 등을 썼다.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수상.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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