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 문화일보
  • 입력 2024-01-12 11:45
  • 업데이트 2024-01-1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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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아니 ‘치킨’을 주문하려고 메뉴판을 들여다보면 ‘순살’이 눈에 띈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참 잘 지었다. ‘순수한 살’의 줄임말일 텐데 뼈가 없이 순전히 살만 있다는 뜻이다. 먹을 때 편하라고 뼈를 발라낸 후 요리한 것을 가리킨다. 갈비는 일부러라도 살을 뼈에 붙여 놓기도 하지만 닭은 뼈를 발라내는 것 자체가 귀찮으니 주로 닭고기를 재료로 쓰는 음식에만 적용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씹다’는 대부분의 음식을 먹을 때 필요한 동작인데 고기에는 특별히 ‘뜯다’라는 동사를 쓰기도 한다. 이는 뼈에서 살을 분리해 내는 동작을 뜻하는데 이것이 고기를 먹는 특별한 맛을 더해주기도 한다. 갈비와 닭 다리는 뜯어야 제맛이라 믿는 이가 많은 까닭이다. 육식동물은 사냥감을 뜯어 먹을 수밖에 없지만 인간은 칼로 살을 도려낼 수 있으니 굳이 고기를 뜯을 필요는 없어도 야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순살은 고기를 준비하는 이, 혹은 음식을 만드는 이들의 노고를 드러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소나 돼지의 정육 과정에서 발골은 매우 중요하고도 전문적인 과정이다. 닭의 발골은 이 정도의 전문성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잔뼈를 일일이 다 제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씹기에 편한 것, 목으로 넘기기에 수월한 모든 것이 누군가의 수고 덕분임을 안다면 순살 요리를 먹으면서 늘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이 순살이 엉뚱하게도 건축, 특히 아파트에도 쓰이기 시작했다. 콘크리트로 건물을 지을 때 철근이 뼈대 역할을 하는데 이 철근을 쓰지 않거나 줄여 쓴 아파트를 순살 아파트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순살 치킨은 먹는 이를 위한 노력의 결과이지만 순살 아파트는 짓는 이의 주머니를 불리려는 얄팍한 술수이다. 게다가 사는 이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짓이다. 그래서 순살 아파트는 ‘순살’에 대한 모욕이자 범죄이다. 짓는 이는 벌을 달게 받을 각오를 해야 할.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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