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궈와 불가마[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 문화일보
  • 입력 2024-01-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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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옌볜(延邊)에 거주하는 중국 동포 젊은이 중 상당수는 서울말을 쓴다. 본래 이 지역의 말은 함경도에서도 육진 지역의 말에 기반을 둔 말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육진 지역 사람들이 이주해 집단 거주지를 유지해 왔으니 함경도 말이 이들의 모어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서울말을 퍼뜨린 결정적 역할은 놀랍게도 가마솥이 담당했다. 더 정확하게는 중국 동포들이 ‘가매 뚜껑’이라 부르는 솥뚜껑이다.

1990년대 후반 시작된 우리의 위성방송은 중국 동포들이 집집마다 커다란 가마 뚜껑을 장만하는 계기가 되었다. 위성방송을 수신하려면 안테나가 필요한데 이 안테나의 모양이 솥뚜껑과 비슷하다 보니 중국어로는 ‘궈가이(鍋蓋)’라고 한다. 이를 번역한 가마 뚜껑을 집집마다 설치하고 한국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울말을 익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솥을 뜻하는 중국어 ‘궈’가 꽤 익숙하지 않은가? 그도 그럴 것이 갖가지 고기와 채소를 육수에 데쳐 먹는 ‘훠궈’를 한자로는 ‘火鍋(화과)’로 쓰니 자주 접하는 중국어이다. 사실 우리가 흔히 ‘웍’이라 부르는 중화 팬도 한자로는 ‘鍋’로 쓰고 광둥 말로 ‘웍’이라 발음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솥, 냄비 등 불을 이용해 조리하는 도구를 옌볜의 동포들은 모두 ‘가마’라고 부른다. 말 풀이를 여기까지 하다 보면 ‘훠궈’는 엉뚱하게 ‘불가마’가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 불가마는 찜질방이나 사우나에 있는 그것이니 훠궈와는 영 다르다. 장작불로 도자기나 숯을 굽기 위해 설치해 놓은 것을 가마라 하기도 하고 열기가 남은 그곳에 들어가 땀을 흘리기도 했으니 이것이 오늘날 불가마의 시초가 되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몸도 따뜻하게 해야 하고 속도 따뜻하게 해야 한다. 뜨끈한 훠궈가 몸과 속 모두를 달래주니 불가마 집에 가서 지나치게 맵고 짜지 않은 훠궈로 따뜻함을 느껴 보는 것도 좋겠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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