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기름기 빼는 시원·칼칼 한술… 한바탕 ‘바다잔치’[이우석의 푸드로지]

  • 문화일보
  • 입력 2024-02-08 09:02
  • 업데이트 2024-02-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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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해물탕

꽃게·새우·조개 각종 해산물에 쑥갓·애호박 채소 넣고 팔팔
기름기 적고 단백질 풍부해 영양가 높아… 안줏감으로도 ‘딱’
동서남해 지역따라 재료 달라져… 강진 ‘회춘탕’엔 닭고기도
스페인 사르수엘라·태국 똠얌꿍 등 우리 입맛에도 맞게 얼큰


남의 집 현관 앞에 놓인 선물세트를 보니 바야흐로 설이다. 설은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 대대로 지켜온 최대 명절 중 하나다. 귀한 쌀로 떡을 빚어 고깃국을 끓이고 고기와 생선을 구워 산적을 해 먹었다. 꿩을 잡건 식물을 짜냈건 덕분에 기름도 많이 섭취했다. 불고기, 갈비찜, 산적을 위시한 각종 고기 종류와 돈저냐(동그랑땡), 동태전 등 전유어 종류는 예전 농경민족이 일 년 중 먹는 음식 중 가장 기름진 메뉴였다.

사실 현대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명절이 끼어 있는 1·3분기에 식용유 매출이 두드러진다. 명절에 전과 부침개를 부치는 데 필요한 식용유를 선물로 주고받는 까닭이다. 명절이란 사람들이 모여 좋은 음식을 나눠 먹는, 그것만으로도 퍽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다만 요즘처럼 잉여 농축산물이 넘쳐나고 오히려 영양 과잉을 걱정하는 때엔 기름투성이 명절 음식이 다소 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새큼하고 청량한 동치미, 물김치와 이를 베이스로 만든 냉면도 입맛 정화(?)에 즉효가 있지만, 역시 칼칼한 국물의 해물탕이 당긴다.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내는 해물탕 국물이면 명절에 매끌매끌해진 혀를 ‘계면활성제’처럼 보송보송하게 기름기를 싹 지울 수 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충무로 ‘복정집’의 해물탕.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해물탕은 원리가 간단한 요리다. 해산물의 준말이 해물이다. 해산물에 물을 붓고 끓여내면 된다. 다만 심플한 원리의 음식이 모두 그렇듯 제대로 맛을 내기가 어렵다. 특히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맑은 탕을 시원하게 끓여내기란 여간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그만큼 재료의 신선도도 중요한데 겨울에 제맛이 드는 해물이 많아 해물탕은 요즘 같은 때 특히 맛이 좋다.

비슷해 보이지만 매운탕과 해물탕은 서로 살짝 다른 음식이다. 매운탕은 주로 생선 도막을 넣고 해산물을 곁들이는 경우이며, 해물탕은 아예 생선을 제외하거나 적게 쓰고 기타 해산물을 주재료로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해물탕은 처음부터 끓이며 먹는 전골 스타일로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꽃게나 새우, 오징어, 낙지, 조개, 미더덕(오만둥이), 생선 알과 이리 등 각종 해산물에 쑥갓, 미나리, 무, 애호박 등 채소를 넣어 팔팔 끓이는데 넣는 순서가 중요하다.

조개껍데기 등 해산물에 따라서 오래 끓이면 오히려 시원한 게 아니라 쓴맛을 내는 때가 있다. 낙지나 문어는 먼저 넣으면 푹 익어 질겨지니 냄비에 산 채로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꿈틀거리는 모습 때문에 이런 광경이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들이 경악하기도 한다(요즘은 한식 문화를 인정하고 즐기기도 한다). 무나 배추 같은 채소를 넣어 한결 시원하게 국물 맛을 내는 것도 비결이다. 배추에서 나온 채수는 비린내를 잡아주고 씹는 식감도 살려준다. 지역에 따라 된장, 고추장 등 장류를 쓸 때도 있고 고춧가루와 국간장으로 시원하게 끓여내는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재료가 신선하다면야 양념을 세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해산물 특유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바닷고기나 민물고기 매운탕과는 달리 해산물은 아무리 많이 넣어도 기름기가 거의 없으니 명절 직후 입맛 살리기에 딱 좋다. 지방은 적은 대신 단백질과 여러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해 영양가가 높다.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이다. 조개와 꽃게, 오징어, 낙지 등에 함유된 타우린은 피로 해소에 도움을 주며 무기질 또한 많이 들어 빈혈이나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낙지와 문어, 오징어 등 연체동물이 들어가는 까닭에 ‘씹을 거리’도 풍부해 안줏감으로 즐기기에도 더 낫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 안양의 노포 ‘정호식당’의 해물탕. 뜻밖에 내륙 도시 안양의 대표 음식 중 하나가 해물탕이다.



예전부터 동서남해 해안가에 해물탕을 잘하는 집이 많았다. 특히 인천과 강릉, 포항, 통영, 제주 등에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해물탕 문화가 발달했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오징어를 쓰는 지역, 조개를 많이 넣는 곳도 있고 커다란 활문어나 전복을 곁들이기도 한다. 진한 육수도 내고 먹는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서 해물탕에 ‘육고기’를 쓰기도 한다. 전남 강진에서 유명한 ‘회춘탕’도 닭을 넣긴 하지만 사실은 해물탕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내륙인 경기 안양시가 나름 해물탕으로 유명한데, 1970∼80년대 호서와 호남 지방 해안가에서 일찌감치 이주해온 이들이 많아 신선한 해물을 잔뜩 넣은 해물탕 문화가 생겨났다고 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인천 부평에도 해물탕 골목이 형성돼 있다.

높은 해물 가격이 부담스러울 때 간소하게 해물 라면으로 먹기도 하는데 사실 담백한 우동 면발이 더 어울린다. 적게 덜어 뚝배기에 담으면 해물뚝배기, 육수를 맑게 내고 칼국수를 말면 그대로 해물칼국수가 된다. 여러 해산물을 잘게 썰어 넣고 끓여낸 ‘해물죽’도 있다. 1인당 해산물 섭취 1위 국가답게 이래저래 한국인은 해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세계적으로 대한민국만큼 해물탕을 즐기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지만 유명한 해물탕(스튜) 메뉴는 꽤 있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지방 향토 요리로 유명한 부야베스(bouillabaisse)는 모양도 우리 해물탕을 꼭 빼닮았다. 조업을 끝낸 어부들의 공동 식사 메뉴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지는 부야베스는 지중해 해산물을 잔뜩 넣고 팔팔 끓여내는 국물 요리다. 홍합 같은 조개류, 꽃게, 오징어에 아귀살, 대구 등의 생선도 들어가는 일종의 ‘해물잡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주요 양념으로 토마토가 들어간다는 점이 다르다. 물론 고추와 마늘을 넣는 방식도 있지만 우리처럼 맵고 얼큰하게 양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맵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묵직하고 짭조름하다. 스튜처럼 자작하게 조려 파스타 면을 넣어 먹는 방식도 있다. 해산물을 일일이 발라서 먹고 국물은 그대로 스푼으로 떠먹거나 바게트 빵을 적셔 먹는다.

지중해권 유럽에선 비슷한 요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사르수엘라(zarzuela)는 부야베스보다 더 얼큰한 것이 입맛에 맞는다. 마늘과 고추, 파프리카를 더 많이 넣는 까닭이다. 오징어와 조개를 잔뜩 넣어 모양새는 부야베스보다 해물탕에 더 가깝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추코(cacciucco)는 해물잡탕 격이다. 조개류는 물론이며 오징어와 문어, 새우와 가재 등 고급 재료가 많이 들어간다. 와인으로 조리해 달큼한 맛이 국물에 녹아 있다. 흔히 ‘이탈리아 짬뽕’이란 이름으로 파는 국물 파스타가 이 요리 스타일에 가깝다.

해산물 요리라면 빠질 수 없는 포르투갈에는 칼데이라다(caldeirada)와 카타플라나(cataplana)가 있다. 마찬가지로 둘 다 조개와 새우 등 해산물로 요리한 스튜인데, 칼데이라다가 생선이 들어가는 ‘매운탕’이라면 카타플라나는 갑각류 위주로 끓인 ‘해물탕’이랄 수 있다.

같은 아시아권인 중국에도 있다(무엇인들 없겠나, 중국인데). 우리가 아는 짬뽕의 기원인 초마면도 닭 육수에 돼지고기와 해산물을 넣은 국물 요리다. 초마면이 국내에서 짬뽕으로 탈바꿈했을 당시보다 요즘 유행하는 짬뽕 스타일이 해물탕에 더 가깝다. 애초에 짬뽕에는 돼지고기와 해산물이 균형을 이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해물탕을 닮아갔다. 중국 음식점 중 짬뽕에 아예 고기를 넣지 않는 곳도 많다. 볶지도 않고 딱 해물탕 방식으로 조리해 국수만 말아서 내는데, 이게 한국인에겐 익숙한 맛이라 오히려 인기를 끄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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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요세나베, 잔코나베, 가이센나베 등 생선과 해산물로 끓여내는 나베 요리(鍋料理)가 많지만 대부분 얼큰하지 않기 때문에 해물탕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태국의 대표적인 수프 요리인 똠얌꿍이 시큼한 새우 해물탕의 맛을 낸다. 쥐똥고추(프릭키누)라도 첨가하면 딱 태국식 해물탕이다. 바다를 한술 떠먹으니 명절에 쌓인 혓바닥과 배 속의 기름기가 비로소 걷힌다. 명절 전후로 다녀볼 만한 해물탕집을 몇 곳 소개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복정집 = 충무로에서 해물탕과 통오징어찜으로 유명한 집. 점심은 식사로 저녁은 술자리를 찾는 이들로 가득하다. 오징어를 메인으로 꽃게, 새우, 명태 이리, 홍합, 조개를 넣고 팔팔 끓여 먹다가 얼큰한 국물에 우동 사리를 넣어 먹으면 된다. 까먹기 귀찮지 않도록 손질해준다. 서울시 중구 퇴계로 235 남산 센트럴 자이 1층. 5만8000원.

◇정호식당 = 이른바 ‘안양 해물탕’으로 명성을 오랜 시간 지켜온 노포. 바닷가 도시는 아니지만 현지에서 직송한 갖은 해산물이 푸짐하게 들어가 만족도가 높다. 재료의 감칠맛이 녹아든 매콤한 국물이 식욕을 당긴다.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도 좋고 국수사리를 넣어 먹어도 그만이다. 안양시 만안구 안양로343번길 16. 4만2000원(2인).

◇차이797 = 칼집을 낸 한치, 코끼리 조개, 새우, 관자, 초록홍합 등 해산물이 5가지 들었다는 짬뽕을 판다. 일명 ‘5가지 해물짬뽕’. 해산물을 양파와 함께 볶아낸 진한 국물에 매끄러운 면을 말아낸다. 고기 육수로 꽤나 묵직한 맛을 낸다. 아예 해물탕면도 있다.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36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2층. 1만6000원.

◇하나로식당 = ‘회춘탕’은 강진군에서만 쓸 수 있는 이름이다. 다양한 해산물에 닭을 첨가한 ‘해천탕’인데 한약재 등 특별한 비법을 곁들였다. 정말 회춘시킬 기세다. 커다란 냄비에 그득한 건더기들을 커다란 문어와 제법 큰 전복이 덮고 있다.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고 국물과 건더기를 먹으면 배가 떡 불러온다. 강진군 강진읍 보은로3길 29. 10만 원(중).

◇우도해녀식당 = 해물탕과 보말칼국수를 잘하는 집이다. 해물탕에 든 재료가 무척 ‘제주스럽다’. 뿔소라와 전복, 꽃게가 서로 어울려 냄비 안에서 작은 제주 바다를 이룬다. 맑게 끓여 낸 육수가 살짝 푼 된장과 어우러져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 맛을 낸다. 제주시 우도면 우도해안길 440. 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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