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의 너무 잦은 사면[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2-1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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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채 사회부 차장

특별사면권은 민주주의 사회 최고 통치자에게 마지막 남아 있는 ‘제왕적 권한’이다. 법에 따라 처벌을 받은 죄를 한순간에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다. 법치주의가 확립된 이후에도 사면권을 남겨 놓은 것은 국정 운영 최고 책임자만의 판단 영역이 있다는 의미다. 국가는 법으로만 통치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사면의 명분은 통합과 민심 안정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국가나 왕실의 경사가 있을 때, 왕의 병이 나았을 때, 재해가 일어났을 때 등에 사면령을 내렸다. 핍박당했던 특정 당파의 신하들을 사면하기도 하고, 백성들의 죄를 면해줘 경제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공화국이 성립된 이후 대통령은 주로 신년, 명절, 국경일 등을 계기로 특별사면권을 행사했고, 국민통합과 경제 살리기가 단골 사유로 등장했다.

사면권은 법에 명시돼 있긴 하지만, 성격이 초법적이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자 2013년 취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사면권 행사를 자제했다. 4년 1개월의 임기 동안 특별사면이 세 번에 그쳤고, 정치인은 거의 없었다. 경제인 사면 배제 등을 공약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1년에 한 번씩 사면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사면권 행사가 늘어났다. 임기 2년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네 번이나 특별사면이 실시됐다. 윤석열 정부 사면의 특징은 소규모라는 점이다. 이번 설날에는 사면·복권 대상자가 980명으로 ‘초미니’ 규모였고, 현 정부 최다였던 지난해 광복절 특사도 2176명이었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한 번에 3000∼6000명대 사면이 이뤄졌다. 일반인까지 포함한 사면의 전체 규모는 작지만, 정치인·경제인·전직 고위공직자 등 유명인은 많은 편이다. 네 번의 특사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등 굵직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사면을 결정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일관된 원칙도 찾아볼 수가 없다. ‘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에 개입된 인물들은 거의 다 사면을 받았는데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은 계속 제외되고 있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다른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다른 재판 중이었지만, 지난해 신년을 앞두고 재판이 확정된 부분에 대해서는 복권 조치를 받았다. 김 전 실장은 다른 재판이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실형이 확정되고 나서 또, 잔형면제와 복권의 혜택을 받았다. 한 정권에서 사면을 두 번이나 받은 것이다. 같은 사건으로 형이 확정됐지만,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3대 임금 명종이 1년에 세 번 사면령 반포를 강행하려 하자 사헌부에서 “사면은 국법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너무 자주 실시하는 것을 경계했다”며 반대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1년에 두 번도 많다. 대통령에게 사면이 너무 잦다고 누군가는 고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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