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정원 협의하는 건 의대뿐… 과도한 엘리트의식”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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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직종·해외사례 살펴보니…

변호사 · 회계사 증원과 대비
5000명 늘린 獨도 정부 결정
의료계 일각서도 “명분 없다”


의사단체와 전공의 단체가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라고 요구하는 가운데 특정 직역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들이 국민 생명과 직결된 정책을 좌우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대학 정원은 정부의 정책 결정 영역인데 이익단체와 협의하는 곳은 사실상 ‘의대’뿐이다. 변호사나 회계사 수를 늘릴 때도 관련 직역은 파업에 나서지 않아, 국민 생명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벌이는 의사단체와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27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의대 증원은 지난해 초 주요 국정 과제로 선정된 후 정부가 대한의사협회(의협)와 28차례 협의한 데 이어 사회 각계각층과도 130차례 이상 논의된 결과다. 이를 두고 의협 등 의사단체와 의대생단체는 집단행동을 앞세워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정부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 법적 권한이 없는 이익단체가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의대 증원은 의료 수요자인 국민에게 파급력이 큰 사안인 만큼 직역 단체가 결정권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의협은 정부와 의대 정원 규모를 논의하던 의정협의체가 28차례 이뤄지는 동안 ‘양자 협의’를 주장했다. 지금도 의협은 의대 증원 논의에서 ‘대표성’을 주장하고 있다.

의협은 정부가 의대 증원을 논의하는 정책심의기구에 수요자인 환자단체를 넣자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발하기도 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사단체와 의대생들이 의대 증원에 결정권을 행사하겠다는 건 법적 권한이나 명분이 없다”며 “의사만 정부와의 협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건 과도한 엘리트의식의 발로”라고 지적했다.

다른 직역을 살펴봐도 의사단체와 같은 반발은 거의 없었다.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서 법률, 회계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자 정부는 변호사와 회계사 수를 늘렸다. 1980년 당시 사법시험 정원 300명을 2001년 1000명까지 늘렸던 때나 로스쿨 제도가 도입돼 변호사 수가 2000명으로 늘어날 때도 정부는 변호사단체와 합의하진 않았다. 변호사들의 파업도 없었다. 회계사도 마찬가지다.

최근 세계 주요 각국도 의대 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렸지만 의사단체가 증원을 막아서진 않았다. 지난해 5000명을 늘린 독일의 의대 증원 주체는 ‘연방정부’다. 지난해 6월 한국공동취재단과 면담한 토마스 슈테판 독일 연방보건부 차관은 “의대 증원 결정은 연방정부가 한다”며 “논의 과정에 의사를 관리하는 지방정부와 교육 당국이 참여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일본, 영국, 프랑스, 미국 등도 비슷하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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