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진료하면 빚은 다 갚겠지만…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어요”[M 인터뷰]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8 09:24
  • 업데이트 2024-02-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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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의대 재학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자연분만’ 원칙을 30년간 지켜 온 심상덕 진오비산부인과 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병원 로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 M 인터뷰 - 심상덕 진오비 산부인과 원장

30년째 ‘자연분만’ 원칙 지켜
제왕절개 수술비율 10% 수준
“의사 본연의 역할 따르는것뿐”

분쟁에 7억 빚지고 집도 팔아
“정부 특례법도 형사처벌 국한
수십억 민사소송서 지면 폐업”

“피부미용 해봤지만 잘 안맞아
산모들 출산 돕는게 최고 보람
열심히 노력한 의사로 남고파”



인터뷰 = 권도경 사회부 차장 kwon@munhwa.com

요즘 환자들이 병원을 가기 전에 가장 겁내는 건 ‘과잉 진료’다. 의료 정보가 가진 ‘비대칭성’ 탓에 의사가 권한다는 이유로 굳이 필요하지 않은 진료를 비싸게 받는 건 아닌지 늘 찜찜하다. 몇 년 새 ‘치료’하기보다 ‘영업’하는 의사가 늘어난 세태 탓이다. 의료계 구조도 급변했다.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흔하지만 사람 목숨과 직결된 소아과, 외과, 내과는 사라지고 있다. 저출생으로 약 10년 만에 분만 건수가 반 토막 나자 산부인과도 찾기가 힘들다. 대형화된 산부인과만 살아남거나 전문의들이 피부미용이나 요양병원으로 전업한 결과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는 아직도 ‘야간분만’이란 간판을 올린 분만병원이 있다. 심상덕 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진오비산부인과다. 심 원장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자연분만’ 원칙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의사가 양심을 지키면 손해나기 쉬운 게 의료계 현실이다. 병원 경영에는 소질이 없다는 심 원장은 의사 생활 30년 만에 빚만 7억 원을 떠안았다. 살던 집도 처분한 채 병원에서 살고 있는 그는 소신진료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15일 심 원장을 만나 병원 운영 철학과 의사로서의 신조를 들어봤다.

심 원장이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이유는 산과(産科)만의 밝은 분위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대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수련하면서 희망 없이 퇴원하거나 살기 힘든 중증환자를 많이 봤다. 산과는 달랐다. 병동에 아이가 태어나면 축하하는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다른 과 환자들을 보면 참 우울했어요. 산과는 임신과 출산을 다루지만 질병은 아니잖아요. 한 생명이 태어나는 걸 돕고, 부부 두 사람이 왔다가 세 사람으로 나갈 수 있도록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의사는 산과 빼고는 없어요.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인사말을 건네도 욕을 안 먹는 진료과로도 유일하죠. 산과 자체가 주는 매력이 있어서 평생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의 병원 운영 철학은 ‘원칙을 지키고 최선을 다하자’다. 이 병원은 자연주의 분만으로 유명하다. 출산 시간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는 만큼 의사가 감수해야 할 몫은 많다. 심 원장은 산모가 언제 진통이 올지 몰라 병원에서 30분 이상 걸리는 곳으로는 외출하지 않는다. 야간 대기도 잦다. 이곳의 제왕절개 비율은 약 10%다. 한국의 제왕절개 비율은 2019년 기준 51%로 전 세계에서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국내에선 제왕절개 수술이 가장 보편적인 분만 방법으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산부인과 의사 본연의 역할은 자연분만을 돕는 겁니다. 자연분만이 아이 면역력과 산모 회복에도 훨씬 좋아요. 교과서에 적혀 있는 그대로 따르는 것뿐이에요.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연분만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해요. 산모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 것도 주효했죠. 산모가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왕절개와 자연분만에 대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줘요. 결정권자는 산모 본인이니깐요. 의사는 험지를 여행하는 데 위험한 길을 알려주는 가이드인 거죠. 의사 입장에서 제왕절개를 한다면 수익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해요.”

진오비산부인과에서는 한 달 평균 10명가량의 산모가 아이를 낳는다. 한 달에 30여 명이 분만하던 30년 전에 견줘 3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지난달 분만 건수는 7건에 그쳤는데 이 경우 적자를 면치 못한다. 분만을 위한 인건비 지출은 고정돼 있어 분만이 적으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분만 건수는 줄어든 데다가 산모에게 불필요한 검사나 진료를 권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는 만큼 병원 재정은 늘 어렵다. 심 원장은 병원 수익을 위해 피부미용도 해봤지만 두어 달 만에 접었다.

“항상 ‘올해가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언제까지 병원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분만 건수가 10건 정도 되면 빚을 지지 않고 유지할 순 있어요. 지금도 제 인건비는 못 가져가요. 병원 재정에 보탬이 될까 싶어 피부미용도 해봤지만 제 성향에 맞지 않더군요. 피부과나 성형외과 의사들은 환자를 통해 수요를 창출해야 해요. 환자에게 꼭 필요한 진료라면 권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자신 없어요. 저는 남극에서는 냉장고를 못 파는 사람이에요.”

타격을 가한 건 의료사고 분쟁이다. 응급 상황인 분만에서는 과실 여부를 따지기 힘든 무과실 의료사고가 많다. 심 원장은 그동안 의료 분쟁을 7∼8건 겪었는데 합의금을 1억∼2억 원씩 내야 했다. 7억 원가량 빚을 지면서 집도 팔았다. 그는 6여 년 전부터 부인과 떨어져 병원에서 살고 있다. 심 원장은 분만실에 들어설 때마다 옥상 난간에 서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의료사고에 대한 트라우마 탓이다. 가장 큰 보람은 산모가 무사히 출산하는 것 그 자체라고 했다.

“출산을 돕는 산과 의사에게 의료 분쟁은 ‘상수(常數)’입니다. 정신적 고통도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지난 2019년 산모의 자궁이 파열돼 앰뷸런스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이송했는데 수술실 앞에서 7시간 넘게 기다린 적이 있었어요. 출혈이 멈추지 않아 혈액팩이 50개 정도 들어갔는데 같이 일하던 간호사 3명이 산모 앞으로 지정수혈을 했어요. 수술실 앞에 쪼그려 앉아 산모가 살아나길 애타게 기도하면서도 의사를 택한 걸 많이 후회했죠. 다행히 산모는 무사했고, 의료 분쟁으로도 번지지 않았어요. 정부가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을 추진하지만 형사처벌에 국한돼 있죠. 요즘은 민사소송으로 수십억 원대 배상금을 청구하는 추세라 의도치 않은 나쁜 결과가 한 건만 나와도 문을 닫아야 해요.”

풍족한 환경에서도 신념은 지켜지기 힘들다. 심 원장은 환자들이 비급여 검사와 시술을 원할 때도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환자를 먼저 설득한다. “실손보험은 있냐”면서 비급여 진료를 쉽게 권하는 여느 의사들과도 다르다. 그가 빚을 떠안고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세상 사람들을 다 속여도 단 한 사람을 속일 수 없어서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의사를 감시하거나 감독하는 사람은 없어요. 의사는 오로지 자기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해요. 과잉 진료를 통해 빚을 다 갚는다면 교과서에 나온 대로 원칙을 지키는 진료를 다시 할 수 있을까요? 빚을 다 갚아도 그 의사는 결코 못 돌아와요. 환자는 쉽게 속일 수 있죠. 하지만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잖아요. 내가 환자에게 해를 끼쳤다는 사실을요.”

의사의 자질로도 성실한 자세와 진실된 마음을 가장 먼저 꼽았다. 심 원장은 자신을 오랜 시간을 거쳐 성장한 의사라고 했다.

“처음부터 특출난 사명감을 가진 의사는 아니었어요. 많은 산모를 만나고 아이를 받는 경험이 쌓이다 보니 철학도 생겼어요. 분만병원에 파견 갔을 때 산모는 진통 탓에 비명을 지르는데 간호사가 비급여 진료 선택 여부를 묻더라고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밧줄을 던져줄 테니 얼마 줄래’라고 묻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의료 행위는 환자의 입장에서 해야 한다는 걸 깨쳤어요. 빚은 좀 쌓였지만 의사로서 비겁하게 살진 않았어요. 삶은 결과가 아닌 과정의 집합체이고, 과정이 그 사람을 정의하니깐요. 산모와 환자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의사’ ‘경영을 잘하진 못해도 양심을 지키려는 의사’로 기억되고 싶어요.”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심상덕 진오비산부인과 원장이 직접 재단한 종이를 재봉틀로 박음질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심 원장이 직접 산모수첩 만들어 선물… 퇴원하는 날 첫 가족사진 찍어주기도

■ 특별한 진오비 산부인과

병원의 가치 알아주는 환자들
‘문 닫을라’자발적으로 후원도


진오비산부인과에는 특별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산모수첩이다. 심상덕 원장은 종이를 잘라 재단한 후 재봉틀로 박음질을 한다. 산모수첩에 초음파 사진을 일일이 붙이고 검진 기록을 꼼꼼히 적어 산모에게 준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산모수첩이 있지만 출산계획서 등 따로 넣고 싶은 항목이 많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산모수첩 머리말에는 심 원장의 따뜻한 응원이 담겨 있다. 280일간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어 모든 산모가 순산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심 원장은 산모와 아이가 퇴원하는 날에는 첫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가 된다. 출산 영상도 USB에 담아준다. 산모들은 국내 얼마 안 남은 모자동실(母子同室)에 대한 경험도 각별하다고 입을 모은다. 심 원장은 “가능하다면 부부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같이 지내는 게 좋다”며 “아빠들도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는 등 자연스럽게 육아에 동참하게 된다”고 말했다.

심 원장은 ‘실버 버튼(구독자 수 10만 명 이상)’을 받은 유튜버다. 병원 홍보란 현실적인 이유로 시작한 유튜브는 이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버팀목이 됐다. 심 원장은 “구독자들이 분만병원 의사가 가진 애환을 많이 이해해준다”며 “국내외 구독자들이 분에 넘치게 격려하고 지지해줘 열심히 살아야겠단 마음가짐을 다잡게 된다”고 말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심상덕 진오비산부인과 원장이 산모수첩에 붙일 태아 초음파 사진을 자르는 모습. 백동현 기자



이곳에서 아이를 낳은 부모들은 “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심 원장이라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산모들은 심 원장의 진가를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분만실을 꼽는다. 철저하게 산모 중심이어서다. 이 병원에서 첫 아이를 낳은 한 산모는 유튜브 동영상에 “‘의사 사장님’이 아니라 진짜 ‘의사 선생님’이었다”며 “출산할 때 의사에게 원하는 점을 종이에 적어오라고 하셔서 가져갔더니 심 원장님은 그 종이를 분만실 벽에 붙여두고 출산 전 과정을 세심하게 도왔다”고 댓글을 남겼다.

저출생 시대 속 진오비산부인과는 산모들이 문 닫을까 봐 걱정하는 병원이다.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후원활동을 펼쳤을 정도다. 심 원장은 작은 동네 병원을 운영할 뿐이라고 말했지만 병원의 진정한 가치를 매겨주는 이들은 바로 환자들이었다.

간호사들도 1년에 한두 번씩 월급이 밀릴 때도 있지만 동지애로 버티고 있다. 6년째 근무 중인 송계화 간호사는 “원장님은 산모를 위한 원칙을 고지식하게 지키신다”며 “병원을 위해서만 온전히 사시는 것 같아 이제는 요양병원에서 의료사고 부담 없이 편하게 진료하셨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권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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