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라는 사건[유희경의 시:선(詩:選)]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8 11:37
  • 업데이트 2024-02-2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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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위치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연다// 오렌지빛이 쏟아지고 있다// 오후에는 청소를 하고/ 깨끗한 바닥에 누워 노을을 보기로 했다// 노을을 보다 잠이 들 수도 있는데/ 배가 고픈 걸 참아야 할 것인지/ 긴 논의는 하지 못하고/ 청소를 끝내고 일단 눕기로 했다’

- 김이강 ‘어느 가족’(시집 ‘트램을 타고’)


청소란 느닷없이 실행된다. 침대나 소파에 누워 있다가, 책상 앞에 우두망찰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청소를 해야겠어 마음을 먹어야 벌어지는 일종의 사건이다. 하루도 빠짐없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아침에는 출근 준비에 정신없고, 퇴근하고 나면 기력이 없다. 귀찮아서, 거치적거리지 않아서 내일로, 다음 휴일로 미루기 바쁘다.

살림을 평생 전담하신 어머니는 얼마나 대단한지. ‘가정주부의 몫’이라는 관습 아래 그 번거로운 일을 당연하다는 듯 처리하셨으니. 그때는 깨끗하고 쾌적한 일상을 당연하게만 여겼다. 급여로는 감히 환산할 수 없는 어머니의 가사 노동을 곱씹어본다. 어찌 감히 누워 있을 것이냐. 일어나 청소를 하자.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기를 밀고, 걸레질하고 이불을 털어 볕에 말려보는 것이다. 평소에는 닿지 않는 구석까지 손을 밀어 넣어도 보고, 내친김에 욕실 청소도 하자. 물방울이 맺힌 거울 사이사이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내 얼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보람과 생기로 상기된 낯빛이겠지. 그러다 보면 잃어버렸던 물건을 되찾거나 잠재된 문제점을 발견하는 뜻밖의 수확을 누리기도 한다. 그러니 일어나자. 몸을 써서 청소를 하자. 마치고 나면 나른함이 몰려들 것이다. 잘 말라 볕 냄새가 나는 이불을 덮고 한잠 늘어지게 자는 거다. 자고 일어나도 빛은 남아 있을 것이다. 집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채로 나를 맞이해줄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그러니 일어나자. 조금만 더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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