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이유 없는 비례대표제[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3-28 11:38
  • 업데이트 2024-03-2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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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기 정치부 차장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의 반대말은 다수대표제(majority representation)다. 우리 선거제도는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다수대표제를 보완하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두고 있다. 표의 비례성, 국회의 다양성, 의원의 전문성. 하나같이 중요한 원칙들이 거론된다. 하지만 지역구로 채울 수 없는 인재들을 등용하는 관문이어야 할 비례대표제는 사실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총재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당의 재정을 책임지던 인물들이 쉽게 의원 배지를 얻는 통로로 활용됐고, 상대적으로 검증이 소홀할 수밖에 없어 송곳 검증을 피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그래도 제17대 총선(2004년)에서 13%의 정당 지지도로 비례대표 의석 8석을 얻었던 민주노동당, 간혹 전문성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비례의원들의 활약 정도가 제도의 존재 이유일 테다.

고백하건대, 5년 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취지에는 찬성했었다. 거대 양당의 극단 정치가 완화되는 계기가 될 수도, 완충지대 제3정당들이 원내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으리라 기대했다. 단, 여야가 합의하고 정치권이 기꺼이 ‘정치제도의 개선이 정치 문화의 쇄신으로 이어지도록’ 다짐한다는 전제에서. 그 전제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진보당은 제22대 국회의원 3명을 사실상 확보했다. 과연 더불어민주당이 ‘위성정당’이라는 비판을 회피하고 의석 손실은 막기 위해 만든 더불어민주연합의 울타리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진보당이 독자적으로 원내정당이 될 수 있었을까. 녹색정의당,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자유통일당보다 더 높은 정당 지지율을 얻을 수 있었을까. 공당(公黨)은 공천(公薦)에 무한 책임을 지는데, 민주당은 진보당 출신 국회의원들의 활동에 어디까지 책임질 텐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새진보연합의 용혜인 의원의 비례대표 재선도 마찬가지다. 과연 용 의원이 불출마한 초선 의원들보다 월등한 의정 활동을 했던가. 그렇다 한들 재차 위성정당의 일원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게 타당한가. 권력에 대한 감시가 본령인 시민단체가 왜 사실상 당선이 확정적인 국회의원 후보를 추천하는 권한을 가지는지 역시 의문이다. 더불어민주연합은 민주당에 우호적인 의원 확보 외에 어떤 존재 이유가 있는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국민의힘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는 순번 발표 후 조정이 있었다. 이유는 달랐지만 4년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못해도 10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배출할 여당의 비례대표 순번 선정이 하룻밤 새 확 바뀔 수 있다는 방증이다. 조국혁신당은 상위 순번 10명 중 4명이 재판 중 혹은 수사 중이다. 원내대표가 비례대표 명단에 발끈했다가 참은 개혁신당, 녹색당과 선거연합정당을 꾸린 정의당의 비례대표 순번 정하기가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이런 식이면 비례대표제 자체에 대해 회의가 드는 수준이다. 두 번 실패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확 뜯어고치든 없애든 해야 한다. 다수대표제를 제대로 보완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가 아니라면, 비례대표제를 둬야 할 이유가 없다. 22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님들은 이 논란부터 수습할 염치라도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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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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