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지에 옮긴 비극적 사랑… 차이콥스키 걸작의 신호탄[이 남자의 클래식]

  • 문화일보
  • 입력 2024-04-04 09:09
  • 업데이트 2024-04-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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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차이콥스키 ‘로미오와 줄리엣’

1870년 초연 뒤 계속 수정
1880년 완성… 5년뒤 공연

셰익스피어 희곡 작품화한
‘환상 서곡’ 중 백미로 평가


클래식(Classic)은 예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좋을 만한, 시대를 초월해 모범성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오랜 시간 동안 세월의 체에 의해 걸러진 값진 것으로 우리말로는 고전(古典)이다. 수많은 클래식 작곡가들은 음악 작품의 주제를 오래된 고전 문학작품에서 찾아왔는데 차이콥스키(1840∼1893) 역시 그랬다.

차이콥스키는 특히 고전의 대명사격인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1564∼1616)를 좋아해 ‘템페스트 op.18’ ‘햄릿 op.67’ ‘로미오와 줄리엣(작품번호 없음)’ 등을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 서곡으로 남겼다.

그중 단연 백미는 두 원수 가문에서 태어난 두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본래 서곡(Overture)이란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발레 음악 등에서 도입부에 연주되는 관현악곡으로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선율이나 작품의 인상적인 부분을 연주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앞으로 펼쳐질 내용을 암시한다. 하지만 관현악 음악이 발전함에 따라 서곡의 규모 또한 점차 커져 나갔고 작곡가들은 독립된 작품으로 서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마침내 ‘연주회용 서곡’이라는 독립적인 관현악 장르로 자리매김한다.

차이콥스키의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관현악 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대표적인 연주회용 서곡 작품이다. 1869년 5월의 어느 날,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였던 29세의 차이콥스키는 러시아 5인조의 수장인 밀리 발라키레프(1837∼1910)와 산책길에 나섰다. 발라키레프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꼭 관현악 작품으로 탄생했으면 좋겠다면서 차이콥스키에게 자신이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구상한 곡의 분위기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날 발라키레프의 제안은 유효했다. 이 일이 있은 지 반년이 지난 9월에서 11월 사이 차이콥스키는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했고, 그 이듬해인 1870년 3월 모스크바에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지휘 아래 초연됐다.

그러나 차이콥스키는 작품에 만족하지 못했고, 수정에 수정을 더한다. 그는 서주와 몇몇 부분들에 수정을 거친 수정본을 1871년 출판했고, 그 이듬해인 1872년 2월 페테르부르크에서 재초연한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최종 개정판을 1880년에 완성해 1881년 출판했고, 공연은 5년 뒤인 1886년이 돼서야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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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의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대표적인 표제 음악이다. 그리고 표제 음악엔 작곡가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주석이 붙어야 마땅하지만, 차이콥스키는 이 곡에 별도의 주석을 붙이지 않았다.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인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과 감상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작품의 초판은 차이콥스키의 나이 29세에 완성된 것으로 차이콥스키 최초의 걸작이자 앞으로 탄생하게 될 걸작들의 신호탄과도 같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로미오와 줄리엣’

작품 도입부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엄숙하고도 긴장감 서린 클라리넷과 바순의 연주가 인상적이다. 이어 이탈리아 베로나의 원수지간인 몬테규가와 캐플렛가의 대립,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름다운 사랑, 로미오가 죽은 것으로 오해해 독약을 마시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줄리엣의 가슴 아픈 서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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