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사용자 개념 확대’[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4-0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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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산업부 차장

최근 만난 경영계 인사는 “HD현대중공업 하청노조가 원청업체를 단체교섭 상대방으로 주장하는 소송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기업들의 걱정이 크다”며 “선고 결과에 따라 지난해 폐기된 ‘노란봉투법’이 되살아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 인사가 언급한 소송은 2017년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가 HD현대중공업(당시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것이다. 원청인 HD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 소속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3심은 대법원 1부에서 담당하고 있었으나, 지난달 11일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일부 진보 성향 대법관의 임기 종료(8월) 전에 선고가 이뤄질 경우 노조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노조가 승소한다면 기업은 수많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느라 정상적 활동을 하기 어려워진다.

언뜻 보면 경영계의 이런 주장은 기우(杞憂)처럼 느껴진다. 앞서 1심(울산지법)과 2심(부산고법)에서 모두 회사 측이 승소했기 때문이다. 이 소송의 쟁점은 원청인 HD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 소속 노조의 단체교섭 당사자인 ‘사용자’에 해당하느냐다. 노조는 HD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는 원청과 하청 근로자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도 같을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최근 노동계에 우호적인 판결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지난달 12일 대법원 2부는 현대제철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61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2건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현대제철이)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인사, 근태 상황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월엔 서울고법 행정6-3부가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재심 판정을 취소하라”며 CJ대한통운이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원은 원청인 CJ대한통운이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작업환경 개선이나 근로시간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택배노조와의 단체교섭에 직접 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란봉투법 내용처럼 사용자 개념을 대폭 확대한 결정으로, CJ대한통운은 상고한 상태다.

노조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판결도 있었다. 공동불법행위자들의 책임비율을 개별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는데, 지난해 6월 대법원은 책임제한의 정도를 개별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경영계는 “대법원이 불법행위자를 보호하려 한다”고 반발한 바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HD현대중공업 소송의 대법원 판결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현재 대법관 중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임기를 시작한 대법관이 5명이고, 심지어 2명은 지난달 부임했다. 이들이 사건을 충분히 검토할 겨를도 없이 선고를 서두르기보다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숙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산업 현장의 대혼란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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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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