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대사의 위태로운 불통[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4-1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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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베이징 특파원

기원전 265년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 장수 백기(白起)의 공격을 받던 한(韓)나라 상당 지방의 군수 풍정(馮亭)은 영토를 지킬 방도가 없자 이 땅을 인접한 조(趙)나라에 바친다. 당시 조나라의 명장 염파(廉頗) 등은 진나라에 침공의 빌미를 준다며 반대했지만, 조나라 효성왕(孝成王)은 땅을 받는다. 3년 뒤 조나라는 진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됐고, 여기서 효성왕은 장평 지방에서 그럭저럭 진나라 군대를 방어해내던 염파를 대신해 젊은 조괄(趙括)을 새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조나라의 중신이었던 인상여(藺相如)에 조괄의 모친까지 나서 사령관 임명을 반대했지만, 효성왕은 자신의 인사 정책을 밀어붙였고, 전장에 나선 조괄은 수십만의 군사를 잃는 대패를 당한다. 조나라는 징집된 수많은 장정을 잃으면서 한때 존립 위기에까지 내몰렸다.

지난 10일 진행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한 대표적인 이유로 ‘불통’이 꼽히고 있다. 고물가와 민생고 등을 이유로 야당이 거센 정권심판론을 거론하고 나섰지만, 민심이 결정적으로 돌아선 계기는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의 ‘언론인 회칼 테러’ 협박 발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도피성 주호주 대사 임명 등으로 대표되는 대통령실의 불통 행보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의대 정원 확충 문제로 의료계와도 척을 지면서까지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고 나간 정부의 태도는 전통적인 여당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 불통 행보의 결과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거대 야권을 탄생시켰다. 많은 사람은 야당의 방해 속에 현 정권이 ‘식물 정부’가 돼 그 피해를 국민이 볼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낙선이 유력했던 나경원, 안철수 등의 생환은 여당에 위안이 됐고, 향후 반전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그리고 중국 교민 사회에선 또 다른 ‘불통의 아이콘’이 떠오르고 있다. 수차례 불통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던 정재호 주중 한국 대사가 그 주인공이다. 2022년 취임 이후 독단적 행보로 현지 교민과 사업가, 특파원들과 잇달아 마찰을 빚었던 정 대사에 대해 중국 외교계 관계자들은 그다지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고, 정 대사와의 소통도 많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외교부 내에서조차 심심치 않게 반발을 샀던 정 대사는 최근 대사관 직원에 대한 폭언 논란으로 외교부 내 조사까지 받게 됐다. 이 상황에서도 정 대사는 많은 사람이 우려를 제기했던 외국 대사들과의 친목 만찬 및 영화감상회를 강행해 또 한 번 빈축을 샀다. 외교 인사에 대한 신변 문제 등 석연치 않은 이유를 대며 행사장을 찾은 취재진을 몰아내던 대사관 관계자들의 모습은 많은 이에게 이른바 ‘입틀막’(입을 틀어막는다)으로 명명된 과잉 경호 논란으로 문제가 된 그의 고등학교 동창,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를 연상시켰다. 계속되는 불통 행보 속에 교민들은 한·중 외교 관계가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현지에서의 생활이 악화하고 있음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선거 패배 후 이를 국민의 뜻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여 국정 쇄신에 나서겠다고 밝혔던 윤 대통령과 달리, 정 대사의 ‘마이 웨이’ 행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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