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에 대한 공공적 애정 필요… 작가·후원자·제도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 문화일보
  • 입력 2024-04-16 09:11
  • 업데이트 2024-04-1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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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김병수(왼쪽)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고충환(가운데) 미술평론가, 박천남(오른쪽) 2023 한강조각프로젝트 예술감독이 한국 조각의 잠재력과 미래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윤성호 기자



■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 대담

고충환 미술평론가
김병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박천남 한강 조각 프로젝트 예술감독

“디지털 시대엔 아날로그 가치가 오히려 강조된다. 정통 조각의 매력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고충환 평론가

“한국 조각의 정체성 규명이 지속돼야 하고, 이번 시리즈가 그 출발점으로 큰 역할을 했다” -김병수 회장

“국내 조각가들의 경쟁력과 잠재력이 크다, 한국 미술의 균형 있는 성장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박천남 감독


사회 = 최현미 문화부장 chm@munhwa.com

문화일보가 ‘K-스컬프처 조직위원회’와 공동기획한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연재를 마치며 박천남 2023 한강조각프로젝트 예술감독, 고충환 미술평론가, 김병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이 한국 조각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12명의 한국 조각가를 심층 조명한 이번 시리즈에 대해 이들은 ‘K-스컬프처’(Sculpture), 즉 K-조각의 고유성 및 독창성을 규명하는 귀한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정체성 모색의 기회가 전무했던 K-조각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짚고, 공공적 애정과 관심도 촉구했다. 대담은 최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최현미 문화부장의 사회로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K-스컬프처 조직위원회 위원장인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참관했다.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시리즈의 의의를 평가해 달라.

△박천남 2023 한강조각프로젝트 예술감독(이하 박 감독) = 한국 현대조각이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돼 있다. 일 년 동안 꾸준하게 한국 조각가들과 그들의 작품 세계를 연재한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소개된 12명의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주제를 말하는 ‘강호의 고수’다. 그들을 수면 위로 올렸다는 건 그야말로 ‘조각의 영광’이다.

△고충환 미술평론가(이하 고 평론가) = 제도권 미술에서도, 상업적 미술 시장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조각은 마이너 장르다. 이런 열악한 현실에서 12명의 국내 조각가를 심층, 집중적으로 보도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러한 방식의 프로젝트가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병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이하 김 회장) = 한국 조각의 발전을 위해선 정체성 부분이 해결돼야 한다. 그것은 한국 조각의 근현대 역사가 잘 정리돼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이번 문화일보 시리즈가 그 근거 만들기의 시작이 돼 줄 수 있지 않을까.

―시리즈를 토대로 한국 조각의 현주소를 짚어 달라.

△고 평론가 = 조각은 장르 해체가 심화하고, 그것이 보편화·일반화된 상태다. 그 과정에서 한국 조각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붕 뜬 상태에서 어딘가 도려내진 느낌이다. 권진규 등 미술사적으로 잘 정리된 세대도 있지만, 소위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에 대해 미술사적 정리가 부족하다. 이대로 ‘장르 해체’를 맞이하고 있는 듯한 우려도 있다.

△박 감독 = 회화 작업에 비해 시간과 수고는 더 드는데 수요는 적은 편이다. 이동이나 소장도 부담돼 소외돼 있다. 국공립 미술관이든, 갤러리든 조각 전시는 꺼린다. 또 한국 조각의 특징도 명확하게 건져지지 않는다.

―한국 조각은 왜 그렇게 됐나. 왜 특징 없고, 소외된 상태인가.

△김 회장 = 한국 예술에서 조각은 회화나 조소와 동등한 위치에서 논해지지 않는다. 그 이유가 정체성 모색의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어색하고 모순된 지점에 서 있는 것인데, 일부에서 계속 조각은 약하니까 보호받아야 하고, 특색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감독 =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한국 조각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을 이어갈 통시적 기회를 뺏긴 것이 아닌가 싶다. 전후 경제개발 후 배고픔을 해결하자 예술가들은 점차 장르 자체의 특징과 자기 정의에 몰입했다. 그러나 1980년대 현실 이슈 탐색이 강해지면서, 보다 확장적 이야기로 나아가지 못했고, 동시에 설치 미술의 등장, 영상 비디오의 범람으로 급속하게 뉴미디어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다양하긴 해도 명확한 특징이 없는 이유다. 그런데 역으로, 그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고 평론가 = 정통적인 조각은 장르적 특수성으로 인해 전시기획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술사적 의의를 조망하는 드문 경우가 아니라면, 조각을 전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미술 시장에선 또 어떤가. 돈이 안 되고 버겁다. 예나 지금이나 마이너 장르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장 차원에서, 혹은 정책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인가.

△김 회장 = 조각은 현재 아예 정책적 지원 범위 밖에 있는 것 같다. 전통 조각 형태 중 하나인 공예에서 소위 장인이라고 하는 분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안배만 있다. 교육의 틀과 수용자의 입장에서, 조각을 전향적으로 예술 정책의 틀 안에 넣어야 한다.

△박 감독 = 현장 차원에서 공공프로젝트의 경우, 해당 지역 거주자들과의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 조각이 예술적·기능적으로 순기능을 하며 거주자들의 삶의 공간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현실도 돌아봐야 한다. 요즘 상당수 미술대학에서 석조 과정과 주물 과정을 배울 수 없다고 하는데, 예비 조각가와 미래 조각 애호가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

△고 평론가 = 대중과의 접점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전시만 한 게 없다. 조각가들이 작품을 전시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수준 높은 공공 조형물이 제작, 정착돼야 한다.

―그렇다면, K-조각의 미래는.

△고 평론가 = 첨단 미디어가 회화를 대신할 수 없듯, 정통 조각의 감각적인 매력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디지털 및 가상현실과 대비되는 아날로그적인 가치는 점점 더 강조될 것이다. 국내 조각가들의 경쟁력과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이를 지지하고 실현할 수 있는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박 감독 = 미술관이 공공재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상기하고, 조각가와 조각 전시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준다면 미래는 충분히 밝다. 한국 미술의 균형 있는 성장과 발전을 위한 공공적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번 시리즈를 계기로, 앞으로 더 논의되길 희망하는 것은.

△김 회장 =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조각도 작가와 후원자, 그리고 제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기본이다. 이번 시리즈가 그 기본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논의라는 것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꾀해져야 하고, 이것이 학술 세미나 등 심층적으로 연계되기를 바란다.

△박 감독 = 사라지고 잊혔으나, 전설적인 조각가들이 있다. 그들을 좀 더 발굴했으면 한다. 또한 화제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문제 조각’이나 ‘문제 조각가’를 좀 더 조명했으면 한다. 여기에 독점적 조각 분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설치 형식의 다양한 작업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 평론가 = 한국 현대조각의 중추에 해당하는 작가들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및 정리가 필요하다. 지엽적인 시도나 미술사적 조망과는 또 다른, 한국 현대조각의 실질적인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 될 것이다.

정리=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K-스컬프처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윤성호 기자



“한국 조각 자꾸 만나다 보면… 대중의 AQ도 자연스럽게 올라가”

‘K-조각 후원자’ 윤영달 크라운해태회장


“한국 조각가들의 재주와 값어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안타까웠어요. ‘K-조각’이 주목받을 기회를 다양하게 만들어 시도하는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대중들의 ‘AQ’(Artistic Quotient·예술가적 지수)까지 자연스럽게 올라갈 테니 뿌듯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한국 조각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해 온 윤영달(79)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은 최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열린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대담을 지켜본 후 이렇게 말했다.

윤 회장은 이 시리즈를 공동기획한 ‘K-스컬프처 조직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조각가들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한 특별전 ‘한강조각프로젝트’를 수년간 개최했다. 또한 한국 조각의 발전과정을 조망한 ‘K-SCULPTURE 한국 조각을 읽는 스물한 개의 시선’을 미술평론가, 전시 기획자들과 함께 집필할 정도로 미술, 특히 조각 분야에 대한 깊은 애정과 높은 식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윤 회장은 이번 기획 연재의 가장 열정적인 독자이기도 했다. 그는 “신문에서 이렇게 조각가를 다뤘다는 것 자체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면서 “다양한 조각가를 심도 있게 조명한 시도가 돋보였다. 조각의 재료가 굉장히 다채롭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고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를 읽고 느낀 소감을 전했다.

그는 기사에 밑줄을 그어가며 꼼꼼하게 내용을 파악했고, 소개된 조각가들에게 직접 연락해 궁금한 것을 묻기도 했다. 덕분에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조각가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제시나 제언을 원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이번 연재를 비롯해 전시 기획과 책 발간 등 윤 회장의 행보는 조각 홍보에만 목적이 있지 않다. 그는 사람들이 액세서리가 아니라, 삶의 필수품으로서 조각을 만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10여 년 전 한 병원에서 조각전을 열었는데, 휠체어를 탄 환자가 작품을 보고 ‘힘이 생긴다’고 말하더군요. 그때 ‘조각의 힘’을 더욱 확신하게 됐어요.”

3년 연속 열린 한강조각프로젝트 ‘한강을 걷다’엔 이러한 취지도 담겼다. 당시 국내 대표 조각가들의 대형 작품 100여 점이 전시된 뚝섬한강공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설치미술 작품이었고, 시민들은 작품 속을 걸으며, 친근하게 조각의 세계에 빠질 수 있었다.

그는 “조각도 자꾸 봐야 더 잘 알고, 그래야 힘도 느낄 수 있다”며 “그 ‘접점’을 만드는 것에 더욱 힘쓰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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