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도 식지않는 실버 학생들 학구열에 큰 보람[자랑합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4-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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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신사문화센터 영어소설반에서 필자(김숙자)의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는 실버 학생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 자랑합니다 - ‘영소설반’ 학생들

지난 2월로 우리 신사문화센터의 영어소설반이 22주년을 맞았다. 한창 손주 돌볼 나이에 책을 펴들고, 그것도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쓴 소설을 읽느라고 오랜 세월 머리를 맞대어 왔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우리 학생들 중에는 최고로 80대의 할머니까지 있으니, 내가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영어소설반을 처음 개설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학생들이 지금보다 많이 젊어서 50대 초반이 주축이었고, 선생인 나 또한 50대가 끝나기 몇 년 전이었다.

첫 교재는 영화로도 알려졌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였는데, 내용은 다들 재미있어했지만, 미국 농촌을 가 본 적이 없어 현장감이 좀 부족했었다. 때마침 미국에 여행 갈 기회가 생겨, 큰맘을 먹고 시간을 내서 아이오와로 날아가 매디슨 카운티까지 차를 렌트해 몰고 갔다. 서울에 돌아와 수업시간에 그곳의 전원 풍경과 지붕을 덮은 다리, 또 여주인공 프란체스카가 살았던 집의 내부구조까지 상세히 전해 주니, 이제는 소설의 내용이 생생히 느껴진다며 모두 좋아했었다.

그 뒤로 가능하면 읽고 있는 소설의 현장을 찾아가 보려고 노력해 왔다. ‘데미안’(영역본)을 읽을 때는 저자 헤르만 헤세의 생가로부터 신혼집, 만년에 살던 스위스 집과 무덤까지 두루 찾아갔었다. 오 헨리의 ‘현자의 선물’이나 ‘마지막 잎새’의 현장을 찾느라고 미국 맨해튼의 뒷골목을 누비기도 했고, ‘위대한 개츠비’가 파티를 열던 대저택의 원형을 찾아, 또 그 당시 저자 피츠제럴드가 상류 사람들과 교제하며 살았던 집을 찾아 롱아일랜드를 훑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어언 22년이 지났다. 한번 입학하면 10년이 넘어도 졸업(?)할 생각 없이 계속 영어소설을 읽으러 오는 실버 학생들. 그들이나 나나 모두 똑같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영소설 시간을 기다리며 사는 ‘화요일의 여인들’이 되었다. 서울과 근교만이 아니라 충청, 강원에서까지 화요일이면 달려 올라오는 열정적인 학생들을 바라보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간혹 친구들이 물어올 때가 있다. 도대체 그 학생들은 10년, 20년이 되도록 배울 게 남아서 오는 것이냐고. 또 선생인 나는 월급을 얼마나 받기에 이 나이까지 강단에 서서 생고생을 하는 것이냐고. 그러면 나는 간단히 대답한다. “학생들도 나도 모두 책 읽는 게 재미있어서!”라고. 그래서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을 것처럼 끝없이 책을 읽는 거라고.

언젠가 나에게 ‘선생이 팔자인가 보다’고 말해 준 그 사람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학 졸업 후 근무했던 모교에 사직서를 낼 때 ‘이젠 선생 노릇도 끝인가’ 했었는데, 운명의 힘이 그리도 거셌는지, 남편을 따라 미국에 건너가서도 또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었고, 5년 만에 귀국해 소설 번역을 하다가 우연히 만들게 된 ‘영어소설반’을 이제껏 계속 부둥켜안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운명이나 팔자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보다 더 큰 것 하나가 분명히 있다. 바로 우리 영소설반 실버 학생들의 뜨거운 학구열이다. 세월이 가도 식지 않는 무한의 열정으로 책을 읽는 우리 학생들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타고난 선생이라고 해도, 친구들 말처럼 이 나이에 이런 ‘생고생’을 하고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며칠 후 ‘화요일의 여인들’과 함께 읽을 ‘이넉 아든’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다음에는 이넉과 애니와 필립이 살았을 만한 바닷가 동네들을 찾아 영국의 해안을 쏘다녀 볼까 생각하며, 옛날 매디슨 카운티 여행 때 프란체스카의 집에서 사 온 투박한 ‘먹’에다 커피 한잔을 따라 놓고 꿈을 꾸듯 앉아 있다.

김숙자(신사문화센터 영소설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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