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자’ 말 안듣는 나지만… 존중하고 손 꼭 잡아주는 아내[사랑합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5-0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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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23년도 신반포중앙교회 여신도 회장단 모습. 앞줄 왼쪽 아내(박상숙)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윤미, 이혜경, 남은현 씨.



■ 사랑합니다 - 내 평생의 반려자 박상숙

서울 잠원동 소재 신반포중앙교회 여신도 회장을 마친 아내가 그동안 함께 수고한 교인들과 부부 동반 저녁 식사를 약속했다며 동행을 청했다. 아내는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나는 즉답을 피한 채 말귀 못 알아듣는 아이처럼 딴전 피우며 아내 눈치를 살폈다. 평소 불교적 성향이 강한 나는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반감 때문에 교인들과의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부부 싸움은 사소한 다툼에서 생겨나는 법,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신경돌기들이 예민하게 공기의 내면을 더듬고 사나운 눈빛이 부부애의 본류를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초조했으나 일단 버텨 보기로 했다. 그 순간 아내는 불필요한 신경전은 이쯤에서 멈추는 게 좋다는 듯, “빨리 옷 입어요.”

하며 말을 건넸다. 눈에는 화가 가득했으나 꾹 참는 눈치였다.

“아니, 교인끼리 식사하면 되지,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내가 왜 가야 해.”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투가 튀어나와 버렸다.

“아니, 회장을 마친 입장을 이해 못 해요?”

아내는 독 오른 뱀처럼 나를 째려보았다. 입술에 바른 붉은 루주가 피처럼 흘러내렸다. 괴기영화 한 장면이 스쳤다. 부부 싸움에 연전연패인 내가 무슨 깡으로 도발했을까. 갑자기 심장으로 독이 퍼진 듯 숨이 차오르고 삼시 세끼의 밥그릇이 공복의 불안을 느꼈다. 젊은 날 위대한 권력이었던 내 월급봉투가 사라진 자리, 어느새 아내의 혀끝이 새로운 권좌임을 그때야 알아차린 나는 슬그머니 옷을 입었다.

교인들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좋았다. 맑게 웃는 미소는 오월의 모란 같았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 나와의 이질감이야 어찌 되었든 그래도 성경을 가까이 한 교인들의 몸 낮춤은 아름다웠다. 특히 크림색 목도리를 살짝 두른 모던보이 스타일의 고규영 님은 밥값을 내겠다고 하여 더 멋져 보였다. 나에겐 꽤 어색한 식전 기도가 끝나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식사가 이어졌다. 한정식의 너른 밥상 위에 놓인 음식들이 꽃잎처럼 웃는 듯했다. 그러나 자리가 불편해서일까. 혀끝의 미각이 마음의 미각을 앞서지 못했다. 교인들과 만남이 없던 나는 울음을 훔쳐 먹은 아이처럼 눈치껏 밥을 먹었다. 그중 교인 한 분은 “교회에서 자주 봬요. 오늘부터 우리 다 같은 교인이죠?” 하며 웃었다. 순간, 목으로 넘어가던 음식이 급브레이크 걸린 자동차처럼 후진을 했다. 올 때부터 교회 나오라고 강요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났다. 나는 침착하게 마음을 다독이며 “네 하나님의 좋은 말씀 자주 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고 마음에 일도 없는 거짓말을 했다. 순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으나 인간의 본질적 사고는 쉽게 변하지 않는 법.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자아가 형성되어 온 정신구조로 실체적 경험 없이 변화를 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종교 문제는 더 그렇다. 물론 사악한 인간에게 종교는 절대 필요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예수가 죽은 지 3일 만에 어떻게 살아났는지, 이 광활한 우주의 수많은 별을 하나님은 어떻게 창조하셨다는 말인지, 종교란 과학의 벽을 뛰어넘는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이라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무조건 믿으라는 기독교의 설득은 나의 뇌 구조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이 모든 의심을 교인들에게 따져 묻고 싶었으나 오늘은 비록 눈칫밥일망정 공짜로 얻어먹었으니 머리 아픈 질문일랑 접어두고 교인들과 사랑의 인사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365일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 나가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오는 길,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을 헤며 저 별들 진짜 하나님이 다 만드신 걸까. 하고 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윤동주 시인한테 묻기로 했다.

김재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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