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 中견제 위해 ‘가치 사슬’ 아닌 ‘신뢰 사슬’ 구축… 韓 생존 기로에”

  • 문화일보
  • 입력 2021-11-1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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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지난 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 건물 5층 연구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 파워인터뷰 -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쿼드·오커스·파이브아이즈 등
신뢰 바탕으로 한 동맹 강화중
4차산업 핵심 기술과 관련해서
美가 한국을 제재할 가능성도

中도 ‘디커플링’시도로 맞불
美·中 ‘냉전 2.0’진행 와중에
한반도 충돌지점 가능성 높아


인터뷰 = 신보영 국제부장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세상이 아무리 편안해도 전쟁을 잊고 지내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

30여 년간 중국 및 미·중 관계를 연구해온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0여 년 전만 해도 미래전략 방정식의 한 항에 불과했던 미·중 관계가 이제는 한국의 생존을 좌우하는 함수 그 자체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중 관계가 ‘냉전 2.0’을 향해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한반도가 플래시 포인트(충돌지점)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위의 동·서양 격언이 공통으로 언급한 것처럼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파트너를 규합하는 이른바 ‘글로벌 신뢰 사슬’(Global Trust Chain·GTC)을 추진하고, 중국 역시 나름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행하는 상황에서 미·중 간 “간헐적 분쟁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생존의 기로’에 설 만큼 중요한 시기지만 한국 외교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입각한 ‘조급한 외교’ ‘조용한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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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외교에 대해서는 “균형외교라기보다는 대증(對症)외교” “모호성의 옷을 입은 무행동(inaction) 외교”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북핵에 대해서도 단기적인 해법은 없다고 단언한 정 교수는 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에 대해 주한미군이나 유엔사 지위 등과 관련해 “위험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의 위기의식은 지난 10월 말 발간한 저서 ‘생존의 기로 : 21세기 미·중 관계와 한국’(사진) 곳곳에 그대로 묻어나 있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미·중 관계가 10년 만에 한반도 운명을 결정짓는 함수가 됐다고 진단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2001년 미국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허용할 때 중국이 서서히 서방과 자본주의 규범 및 가치를 내재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다. 중국은 2008∼2009년 핵심이익을 제시했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확실히 공세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몽’이나 ‘분발유위’(奮發有爲·분발해 성과를 이뤄낸다),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하라) 등을 주장하며 경제적 영향력을 주변국에 사용했다. 한국에 대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관련 제재를 포함해, 영국·프랑스·캐나다·일본·필리핀과 베트남, 심지어 팔라우에도 제재를 가했다. 미국만 빼고 어디에나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결국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변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새로운 접근이 채택됐다. 20∼30년 후 역사가들이 트럼프 행정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최소한 그의 대중정책 전환에 대해서는 상당한 평가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대중정책에 있어서는 트럼프 행정부와 같은 방향이며, 오히려 전선을 확대하고 제재 강도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자기성찰을 기반으로 미국 경쟁력의 제고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중국은 2008∼2009년에 왜 공세적 외교로 돌아섰나.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인해 부풀려진 자신감, 중국판 ‘먼로 독트린’의 수립, 역내 존재감 모색 등의 가설이 있지만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위급 지도부 거처)의 정책 결정 과정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 확정하기는 어렵다.”

―시 주석이 내년 3연임에 도전한다. ‘시진핑 3기’에서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는 더욱 강해질까.

“지난 10년 중국 외교의 궤적을 봤을 때 향후 유화적으로 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유화적으로 가게 되면 미국의 압박에 시 주석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되므로 대내적으로 정통성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목할 부분은 중국도 미국에 대해 상당히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의 구조가 88(미국의 수입) 대 12(중국의 수입)이기 때문에 금액상으로 크지 않더라도 중국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제재 조치에 빠짐없이 대응했다. 또 미국이 ‘디커플링’을 추구하고 있지만 중국 역시 ‘쌍순환’(내수·무역 전략)을 통해 나름의 디커플링을 모색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패권국과 부상국 사이의 관계 전망을 위해서는 통상 3가지 포인트를 본다. 첫째, 양국 간 국력 차가 얼마나 빨리 좁혀지는가인데, 쫓기는 자인 미국의 불안 심리가 작동할 것이다. 둘째, 구조적인 힘의 격차가 줄면서 상호 인식도 급속도로 나빠진다는 점이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국 압박을 일방적으로 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 견제 연합(coalition)을 구축하고자 한다. 향후 ‘동맹의 전이’ 역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 될까.

“바이든 행정부는 다양한 회의체를 만들고 있다. 미국은 이미 여러 일대일 동맹을 갖고 있고, 여기에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3자 협의체),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4자 협의체), ‘파이브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정보공유 동맹체)라는 5자 연합이 있다. 이들 연합체에 공히 참여한 국가는 호주뿐이다. 미국은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GVC)이 아니라 ‘글로벌 신뢰 사슬’을 구축하려 하기에 신뢰는 점차 중요한 자산이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4차 산업 핵심 기술과 관련해서 한국의 딜레마는 보다 깊어질 것이다. 현재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중국의 제재지만, 많은 사람이 잊고 있는 것은 미국이 우리를 제재하거나 보복할 땐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지난 3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가을 단풍이 든 서울대 교정에서 벤치에 앉아 웃고 있다. 곽성호 기자


“文정부 5년 對中정책은 ‘모호성의 옷을 입은 無행동 외교’”

‘6·25전쟁은 항미원조’中주장
동북공정·홍콩 인권탄압에도
韓집권세력은 논쟁없이 침묵

中, 北비핵화협력 가능성 적어
北核해법에 대한 환상 버리고
우리를 지킬 방법 고민 나서야

차기 정부는‘말장난’안했으면
‘국익’에 대한 우선순위 정하고
제대로 된 외교 로드맵 만들길



―역대 한국의 대중·대미정책을 평가한다면.

“흥미로운 사례가 박근혜 정부다. 앞선 이명박 정부에서는 훼손된 한·미 관계를 보수, 강화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뒤 전임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해 한·중 관계의 개선을 모색했다. 2013년 ‘심신지려’(心信之旅·마음으로 믿는 외교) 차원에서 방중했고, 시 주석도 2014년 ‘탐친’(探親·가족 찾기)이라면서 방한했다. 갑자기 친척이 된 박 대통령은 2015년 9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중국의 항일(抗日) 승전 70주년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사드 사태를 계기로 이렇듯 정무화된 우정은 아무 의미가 없음이 드러났다. 현 정부도 시 주석의 방한을 추진하면서 ‘북핵 문제에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부탁한다고 중국이 할까. 중국은 자국 이익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반면 한국 대통령은 2005년 이후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거론한 적이 없다. 외교는 ‘전례와 기록을 먹고 사는 생물’이기에 그 같은 노력이 필요한데도 우리는 조용한 외교를 고수한다. 보수나 비(非)보수나 똑같다.”

―문 정부는 어떤가.

“한국 같은 나라는 실수를 뒤집을 힘이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전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뼈아픈 노력을 해야 한다. 2018년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의 방미·방중을 생각해보자. 당시 정 전 실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같은 선상에 앉았던 반면, 중국에서는 시 주석보다 하석에 앉았다. 문 대통령의 2017년 방중도 마찬가지다. 방중 첫날이 난징(南京)대학살 기념일이라 베이징에 중국 지도자들이 없었다. 왜 날짜를 그렇게 잡았는지 알 수 없다. 방중 기간 중국 지도자들과의 식사도 두 끼에 불과했다. 대통령 개인의 소탈함이 국가를 초라하게 만들면 안 된다.”

―결국 북핵 문제가 역대 한국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닐까.

“미·중 간 협력 공간의 대소(大小)를 결정하는 두 가지 변수가 있다. 하나는 지리적으로 아시아 관련 여부다. 중국이 아시아를 자국의 앞마당으로 보기 때문에 아시아 문제라면 협력의 여지는 적어진다. 다른 하나는 현안의 성격인데, 전통안보 관련 문제일수록 협력의 여지가 적다. 북핵은 아시아 이슈면서 전통안보의 영역이기에 미·중 간 협력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 북핵 관련한 중국의 인식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미국과 달리 중국은 50년 전부터 핵을 가진 러시아·인도·파키스탄과 함께 살아왔다. 인근에 핵보유국이 하나 더 생긴다고 해서 중국이 느끼는 위협감은 상대적으로 적다. 둘째, 북한이 중국의 ‘양탄일성’(兩彈一星·핵미사일과 인공위성의 개발)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는 도덕적 우위가 없다. 셋째,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50∼60% 수준이라면 비핵화가 그나마 가능하겠지만 이미 그 시점을 너무 많이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우리도 이제 해법이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어떻게 우리의 안보를 지킬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문 정부는 내년 5월 임기 말 이전에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다.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들 하지만 이게 이뤄지는 순간 주한미군이나 유엔사 지위 등 다양한 이슈를 물고 나올 하나의 부표가 될 가능성이 있어 위험한 부분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지금 북한이 한국을 타깃으로 하는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데도 우리 정부가 아무 이야기도 안 한다는 데 있다.”

―저서에서 한국의 ‘조용한 외교’ ‘조급한 외교’가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했는데.

“예를 들어 지난해 6·25전쟁 70주년에 외교부는 중국의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저항해 북한을 지원한다) 주장에 대해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게 조용한 외교다. 사드 ‘3불(不)’ 합의도 마찬가지로,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국격이나 평판을 중요시했다면 수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홍콩 민주화나 신장(新疆) 인권 부분도 중요한 문제인데, 민주화 운동을 한 현 집권 세력이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우리 외교의 문제는 그저 하나의 얼굴만 보여주려 한다는 데 있다. 외교는 여러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며, 어떤 이슈에는 협력적이더라도 다른 이슈에 대해선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 공식 기록에 안 남으면 별 소용이 없다.”

―우리에게 국익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까지 중요시했던 국익은 무역·투자·관광이었다. 이제는 일정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격과 평판, 자긍심을 지키려고 해야 한다. 대내적 통합과 대외 안보, 경제적 번영, 여기에 가능하면 통일을 포함시켜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국익을 한 번도 공론화한 적이 없다는 데 있다. 1987년 민주화 직후 몇 년 사이에 했었어야 했는데, 지금처럼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국민의 공감대를 구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의 시계추’(democratic pendulum)로 인해 전임 정부의 정책만 번복하는 구조가 돼버렸다.”

―내년 3월이면 대선이다. 차기 정부의 외교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대선 후보들이 먼저 애매한 말장난을 삼갔으면 좋겠다. ‘신뢰 외교’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니 이런 것. 외교를 잘하는 나라 중 하나가 싱가포르인데 그런 캐치프레이즈를 거의 쓰지 않는다. 차기 정부는 정말 해낼 수 있는 것 몇 가지만 추린 뒤 제대로 된 로드맵과 방법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자꾸 홍보하려 하거나 정무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표를 위해 외교를 하는 것이 외교의 정무화인데, 대체로 거기에서 국익은 무시되곤 한다. 또 전문가들이 귀를 잡도록 허용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정치인들은 견해(opinion)를 갖고 있지만 전문지식(expertise)을 갖고 있지는 않다.”

―앞으로 10년 뒤 2031년에 미·중 관계 완결판을 출간한다면 그때의 전략 지형은 어떻게 돼 있을까.

“2031년의 모습에 대해 지금 추세를 전제로 얘기한다면 미·중 관계는 경쟁(contest)보다는 대결(confrontation) 국면에 더 가까이 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 ‘동맹 전이’에 대한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즉, 중국이 미국의 동맹들을 뺏어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전히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가 한국일 수 있다. 2031년이면 지금으로부터 2명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이다. 그야말로 책에서 쓴 ‘생존의 기로’에서 한쪽이 선택돼 그 결과를 몸으로 느끼고 있는 때일 것이다.”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하나.

“그에 대한 답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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