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세상이 망한다면… 배려없는 ‘아저씨’들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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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 김사장의 요즘 소설

어느 날 소녀들의 세계에서 ‘아저씨’가 사라졌다. 더 정확히 설명하면 ‘아저씨’의 눈에 소녀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인데 놀라지는 마시길.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의 이야기니까. 학계에서는 이를 규명하려 노력했지만 끝내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이 불가사의한 현상과 마주한 ‘아저씨’들은 곤혹스러워한 반면 소녀들은 기뻐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소녀들이 먼저 실감한 것은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이 줄었다는 점이었다. 가슴에, 치맛자락에, 허벅지에 어떠한 것도 들러붙지 않았다. 어른들은 소녀들에게 ‘아저씨’로부터 몸을 지켜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딸이 외출할 때마다 불안과 공포로 곤두섰던 신경도 서서히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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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저씨’는 누구인가? 소설 ‘지속 가능한 영혼의 이용’(한스미디어)에서 작가는 아저씨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아저씨는 자세만으로도 판별할 수 있는데 특히 지하철에서는 다리를 벌리고 앉는다. (2) 상대방이 어리거나 약해 보이면 반말을 한다. (3)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를 포착하면 은근히 눈을 빛내며 버스 안 인파를 비집고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진을 치려 한다. (4) 아저씨 중에는 여성과 청년도 있는데 아저씨 급으로 행동하는 여성과 청년은 아저씨로부터 높이 평가받는다. (5) 자신은 항상 옳지만 설령 틀렸더라도 기분이 나빠졌으니까 책임지라는 식으로 행동한다. (6)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한다.

즉, ‘아저씨’는 성별이나 나이가 아니라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여성이나 아이를 비롯한 약자에 대해 멋대로 말하고 헐뜯고 혐오하는 행동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다. 작가는 왜 아저씨를 사라지게 만들었을까. 출간 직후 인터뷰를 보니 이런 얘기가 있다. “지금의 여성들이 처한 일본 사회의 불합리한 상황을 제대로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어요. 동시에 그런 ‘아저씨’의 시선이나 악의가 사라진다면 여자들이 얼마나 자유를 누릴까도 상상했죠.” 자신의 영혼을 없애지 않고 ‘아저씨’들이 만든 세계에 맞설 의지를 책에 담으려 했다고 한다. 온갖 에피소드를 보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아저씨’는 나뿐이었을까. 만약 세상이 망한다면 공존을 위한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아저씨’들 때문이겠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