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간 권력투쟁·공멸 ‘막장 비극’?… 한국 정치현실 거울처럼 비춰”[나윤석 기자의 고전을 묻다]

  • 문화일보
  • 입력 2022-08-23 09:08
  • 업데이트 2022-12-2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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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교수가 꼽은 “포이니케 여인들’

약속 깨고 왕좌 독점하려던 형
외세와 손잡고 조국을 친 동생
1대1 결투뒤 허무하게 생 마감
오이디푸스 두 아들 얘기 다뤄

“멍청한 둘 부딪치면 결국 불행
비극 대사에 핵심 메시지 응축
인간본성 다루는데 그치지않고
다툼이 초래한 결과 들여다 봐


“멍청한 두 사람이 부딪치면 그 결과는 끔찍한 불행일 뿐이다.”서양 고전학자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에우리피데스의 고대 그리스 비극 ‘포이니케 여인들’에 나오는 이 대사에 작품의 핵심 메시지가 응축돼 있다고 했다. 기원전 5세기에 쓰인 ‘포이니케 여인들’은 소포클레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스핀오프(본편에서 파생된 드라마) 같은 작품이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권력에 눈멀어 아버지를 성에 가두고 1년씩 번갈아 테베를 다스리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형 에테오클레스는 약속을 깨고 왕좌를 독점하고자 동생을 추방한다. 이웃 나라 아르고스로 망명한 폴리네이케스는 그곳을 다스리는 아드라스토스 왕의 딸과 결혼한 뒤 아르고스 군대를 이끌고 형을 치기 위해 테베로 진격한다. 서양고전에서 찾은 질문과 응답을 담은 ‘천년의 수업’으로 잘 알려진 김 교수를 지난 1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나 이 시대에 ‘포이니케 여인들’이 지니는 의미를 들어봤다. 작품은 도서출판 숲의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혹은 지만지드라마가 출간한 단행본으로 볼 수 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양 고전학자인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가 지난 1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 앞 벤치에서 ‘포이니케 여인들’이 수록된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숲)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포이니케 여인들’은 어떤 작품인가.

“언뜻 보면 현실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패륜적 상황을 그린 ‘막장 비극’이다. 하지만 본래 위대한 고전은 치밀하게 극화된 환경에서 인간이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지 관찰한다.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사고 실험’인 셈이다. 흔히 대기업 승계 갈등을 다룬 뉴스에 ‘형제의 난’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나. 꼭 재벌이 아니라도 주변엔 ‘남보다 못한’ 원수지간인 형제들이 많다. 적절히 나누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텐데, 조금 더 가지려는 욕망이 상대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포이니케 여인들’은 그저 수천 년 전에 쓰인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작은 에테오클레스’이자 ‘작은 폴리네이케스’인 우리를 거울처럼 비추는 고전이다.”

비극에서 형제는 각자 군대를 동원한 전쟁이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끝날 기미가 안 보이자 1대1 결투를 치르기로 한다. 칼자루와 돌덩이를 들고 달려든 두 사람은 모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숨이 멎는다. 작품 속 표현대로 왕국을 놓고 다투던 형제는 겨우 ‘자기 몸 하나 누일 땅’만 차지하고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것이다. 김 교수는 극 중 상황이 국내 현실정치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했다. 그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전면전을 언급하며 “난맥과도 같은 여당을 보라”고 지적했다. “같은 이념 아래 정권을 쟁취하려 뛰어온 이들이 자그마한 권력을 더 차지하겠다고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포이니케 여인들’은 다툼을 초래하는 인간 본성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다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들여다본다. 형제의 결말은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린 권력 투쟁이 필연적으로 공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형제의 어머니이자 오이디푸스의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형제를 중재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자살한 이오카스테를 다시 살려놓은 이유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형제의 난’을 지켜보는 엄마에 감정 이입하면 관객의 슬픔이 극대화될 수 있다. 아울러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이오카스테는 우리 시대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협치(協治)’를 상징한다. 그는 에테오클레스에겐 ‘야망의 여신’이 아닌 ‘평등의 여신’을 따르라고 충고하고, 폴리네이케스에겐 ‘제 몫을 차지하겠다는 명분이 정의롭다 해도 남의 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조국을 침공하는 건 합리화될 수 없다’고 조언한다. 오늘날 시민들이 ‘공평’하게, 그리고 ‘평화적’으로 진보와 보수 진영에 번갈아 기회를 주는 집단지성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형제가 죽은 뒤 왕권은 이인자였던 크레온에게 넘어간다. 크레온은 이오카스테의 오빠이자 형제의 외삼촌. 문제는 그가 왕위에 오르기 직전 예언자로부터 ‘아들 메노이케우스를 희생 제물로 바치면 나라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신탁을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크레온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신탁이 소문나면 시민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몰래 이 나라를 떠나라”고 말하지만, 아들은 조국을 위해 검은 칼을 자신의 목 깊숙이 찔러넣는다.

―메노이케우스는 에우리피데스가 생각하는 참다운 리더십을 구현한 인물인가.

“그렇다. 아마도 메노이케우스는 전쟁에 뛰어든 이름 없는 시민도 ‘자신의 일’이 아닌 ‘나라의 일’에 헌신하는데, 왕족이 목숨을 아까워하며 도망가는 건 치욕이라 여겼을 것이다. 상당수 한국인에겐 아직도 ‘힘없고 약한 서민만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권력자는 꼼수와 편법으로 피해간다’는 자조적 의식이 있지 않나. 에테오클레스·폴리네이케스 형제와 반대편에 선 메노이케우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다.”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은.

“그리스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기원전 431년부터 27년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였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포이니케 여인들’을 연극으로 감상하며 공연장 바깥에서 칼과 창을 겨누고 있는 동족의 비극을 떠올렸을 것이다. 작품의 결말처럼 두 나라 역시 상처만 남긴 채 패권을 테베에 넘겨줬다. ‘포이니케 여인들’은 한국전쟁 이후 70년가량 흐른 지금까지 남북이 대치 중인 한반도에도 여러 생각 거리를 남긴다. 이 작품에 비춰 본다면, 외세와 손잡고 조국을 친 폴리네이케스를 반면교사로 삼으며 남북이 대화할 수 있는 끈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제목이기도 한 포이니케 여인들은 극에서 코러스(합창단)를 담당한다. 주요 인물이 아닌 코러스를 제목으로 내세운 이유는.

“테베를 세운 시조(始祖)인 카드모스는 원래 고향이 포이니케(페니키아)다. 코러스로 등장하는 여인들은 노예로 팔려가던 중에 잠시 테베에 들른 것으로 설정돼 있다.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라 시조의 동향인(同鄕人)들이 참혹한 비극을 목도한 셈이다. 이 여인들은 테베 시민이 아니기에 테베 왕족을 향해 소신에 어긋나지 않은 의견을 내놓고, 테베에 뿌리를 둔 외지인이기에 충정 어린 조언을 건넨다. ‘옳지 못한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악행을 정당화하기 위한 좋은 말은 아름답지 않다’와 같은 핵심 대사가 코러스를 통해 발화되는 것은 여인들이 보조적 역할에 머무는 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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