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참상 고발…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나윤석 기자의 고전을 묻다]

■에우리피데스는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한 에우리피데스는 소포클레스·아이스킬로스와 함께 3대 그리스 비극 작가로 불린다. ‘포이니케 여인들’ 외에 ‘메데이아’ ‘트로이의 여인들’ 등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작품을 여럿 남긴 그에겐 ‘평화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킬로스가 비극의 ‘형식’을 정립했다면, 에우리피데스는 ‘주제의식’을 심화한 작가다.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아이스킬로스는 주로 한 장면에 코러스를 제외하고 대사가 있는 인물을 두 명만 등장시켰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나 ‘테베를 공격한 일곱 장수’처럼 극단적 대립을 다룬 작품이 나온 배경이다.

반면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쓴 소포클레스는 반목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을 키우거나 중재하는 제3의 인물을 내세웠다. 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단순한 플롯이 한층 정교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등장한 에우리피데스는 잘 갖춰진 형식적 토대 위에 이야기를 낳은 딜레마적 상황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간의 숙명을 회한 가득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이 그의 장기였다. ‘포이니케 여인들’에서 형제는 물론 이오카스테와 메노이케우스가 모두 죽음에 이르는 결말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관적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역설적으로 절망이 깊을수록 ‘정화 효과(카타르시스)’ 또한 높아지는 것이 비극의 기능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비극이라는 퍼포먼스는 본래 연극이 아니라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거행된 종교의식이었다”며 “죄를 씻고 축복을 얻으려는 종교의식처럼 관객은 비극을 통해 속죄에 이르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3대 그리스 비극 작가를 잇는 계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가톤을 비롯해 수많은 후대 작가가 있었으나 ‘최고의 고전’만 남기는 문화 재편 과정에서 그들의 작품이 모두 소실됐기 때문이다. 3대 작가 역시 한 명당 70∼80편가량을 썼으나 현존하는 작품은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킬로스 각각 7편, 에우리피데스 18편뿐이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