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이후 급속 발전한 옌볜 … 관계 악화되자 조선족 지위 흔들

■ 옌볜자치주 창립 70주년 르포 上

韓 투자 줄면서 호황 적신호
지역 빈자리 ‘한족’이 채워

옌지 = 박준우 특파원 jwrepublic@munhwa.com

지난 3일 중국 지린(吉林)성 주도 옌지(延吉)에서는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을 기념하는 12만8000발의 폭죽이 가을 하늘을 수놓았다. 실제로 이날 찾은 옌지는 과거보다 상당히 발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선족 공동체는 경제활동을 뒷받침해줬던 한·중 관계가 30년 만에 위기로 돌아서면서 ‘동반 침체’에 빠져든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오랜 기간 일하다 한국에서 최근 돌아왔다는 김모 씨는 옛 옌볜대우호텔 건물을 가리키며 “한때 한국의 옌볜 투자 상징이었던 건물이었지만, 한국과의 관계가 느슨해지면서 지금처럼 낡았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 중앙정부의 대대적 투자와 함께 옌볜의 상당수 일자리를 한족이 차지하면서 조선족 공동체 위상도 급전직하하고 있다.

◇옌볜 성장 밑거름이었던 韓 투자, 한·중 관계 악화로 흔들 = 많은 조선족은 한국과의 관계가 옌변 지역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옌지의 옌볜대학은 중국의 경쟁력 있는 대학이지만 졸업자들이 옌볜에서 할 일은 많지 않다”며 “한중수교 이후 고학력자는 대도시의 한국 기업에 많이 채용되고 일용직 노동자들도 여기보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외부에서 돈을 벌어 옌볜의 가족에게 보낸 것이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김 씨는 “돈이 많이 도니까 사람이 몰리고 건물도 높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악화한 한·중 관계와 코로나19 팬데믹은 관광객 감소와 한국으로의 출입국을 까다롭게 해 옌볜 지역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 김 씨는 “다시 한국으로 가고 싶은데 한·중 관계가 악화되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족 떠난 자리는 ‘한족’이 채웠다 = 현지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조선족이 일자리가 있는 한국이나 대도시로 대거 떠나면서 옌볜 내 조선족 비중은 계속 내려갔다. 설립 당시인 1952년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은 전체 인구의 70.5% 정도를 차지했으나 2020년에는 30.8% 수준에 불과하다. 현재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수는 59만7000명 수준으로 한국에 와 있는 조선족 수 70만8000명보다 적다. 조선족이 떠난 도시의 빈자리는 66%를 차지하는 한족이 채워가고 있다.

한국인이 사라진 관광시설에도 중국 각지에서 몰려든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옌지의 유명 관광지인 중국조선족민속원에는 한복을 입은 중국인들이 돌아다니며 한국과 비슷한 조선족 문화를 즐기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을 접하고 싶어 하는 중국인들이 팬데믹 등으로 한국을 찾지 못하면서 분위기가 비슷한 옌볜으로 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