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광풍·종교적 광기… 인간은 ‘비합리적 존재’[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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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1-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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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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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투자 이론가이자 군중심리 전문가인 윌리엄 번스타인의 ‘군중의 망상’은 돈과 종교에 얽힌 비합리적 광기의 역사를 돌아본다. 게티이미지뱅크



■ 군중의 망상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 노윤기 옮김 │ 포레스트북스

英 철도버블·美 리먼사태 등
‘투자 흑역사’ 반복하는 인류
9·11테러, 종교개혁 학살 등
폭력적 종교신념과 같은 궤

“종말론·富서사, 인간본능 자극
관점 다양화로 이성적 판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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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작가 찰스 맥케이가 쓴 ‘대중의 미망과 광기’는 집단 사고의 위험성을 꼬집은 고전이다. 맥케이는 네덜란드 튤립 투기 파동과 광란의 십자군 운동을 중심으로 ‘돈’과 ‘종교’에 얽힌 비극의 역사를 고찰했다. 신경과 의사 출신으로 투자 이론가이자 군중심리 전문가로 활동하는 윌리엄 번스타인의 ‘군중의 망상’은 맥케이의 문제의식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책이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기나긴 스펙트럼을 가로지르며 투자 광풍과 종교적 광기 앞에서 거듭되는 인간의 헛발질을 들여다본다. 맥케이의 고전과 비교해 단순히 풍부한 사례를 덧붙인 것을 넘어 최신 연구와 함께 군중심리의 이면을 분석해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책은 집단 망상을 부추기는 배경에 장밋빛 환상을 제시하는 매혹적인 ‘서사’가 자리한다고 지적한다. 잘 꾸며진 이야기로 도피해 고단한 현실을 잊으려는 본능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 속 투자 광풍의 사례는 새 미래를 보장하는 신기술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1840년대 영국의 철도 버블이 대표적이다. 당시 영국 정부는 철도 산업에서 ‘돈 냄새’를 맡은 투자자들이 몰리자 계획한 예산보다 훨씬 큰돈을 쏟아부어 철로 길이를 수천㎞나 늘리기로 했다. 이에 금융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까지 경쟁적으로 주식을 매수했으나 이내 주가가 폭락하면서 영국 국민총생산(GNP)의 절반에 맞먹는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무역 공기업 남해회사의 주식을 잔뜩 사들였다가 2만 파운드를 잃은 뒤 “복잡한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저자는 희대의 회계장부 조작으로 투자금을 공중분해시킨 엔론 사태,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사태까지 아우르며 재앙으로 끝난 투자 광풍의 역사를 돌이킨다.

다양한 종파의 ‘종말론 서사’도 투자 열풍을 초래하는 심리적 구조와 유사하다. 신기술의 유혹이 손쉽게 거액을 안겨줄 것이라는 오판을 부르듯, 종말론 서사는 일그러진 세상을 뒤엎어 정의를 세우고 마침내 구원자가 도래한다는 환상을 전한다. ‘현생’이냐 ‘내세’냐의 차이만 있을 뿐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는 점에서 마찬가지인 셈이다. 물론 일부 투자자의 손실과 산업계 타격으로 끝나는 투기 광풍과 달리 종교적 광기는 피비린내 나는 희생을 부른다. 16세기 등장한 급진적인 종교개혁파로 가톨릭교도를 학살한 재세례파, 9·11 테러 이후 한층 과격한 원리주의에 입각해 대량 살상과 강간을 신학적 이념으로 정당화하는 이슬람국가(IS) 등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현대 미국에서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이스라엘 팽창 정책을 지지하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 역시 IS의 폭력적 투쟁심을 고취하며 돌고 도는 종교적 광기의 악순환을 부른다.

저자는 집단 망상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우선 지도자와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심리학자 필립 테틀록에 따르면 지도자·전문가 집단에는 두 유형이 있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고슴도치형’과 상충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여우형’이다. 전자가 과도한 자신감으로 극단적 예측을 쏟아낸다면, 후자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려는 충동이 덜하다. 흥미롭게도 테틀록은 ‘그러나’보다 ‘특히’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고슴도치형과 달리 여유형은 ‘그러나’의 언급 빈도가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당장 듣기 좋은 ‘특히’보다 거듭 생각을 유도하는 ‘그러나’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테틀록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는 저자의 주장이다.

전문가들이 합리적 의사 결정의 토대를 마련한다면 그다음은 개인의 몫이다. 집단적 판단의 정확성은 타인에 휩쓸리지 않는 개개인에 달려 있다. 저자는 “구성원들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집단지성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라며 개인의 다양한 관점이 섞일 때 합리적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새해 벽두부터 읽기엔 우울하고 끔찍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지만, ‘남’이 아닌 ‘나’를 믿으라는 메시지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820쪽, 4만2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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