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중 견제에 韓기업 참전 첫 요청… 수출 경쟁력 약화 우려

■ “마이크론 대체물량 수출말라”

中 보복에 동맹국 협력 요구
삼성·SK “아직 요청 없어”

미국이 한국 정부에 “한국 기업이 중국 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대체 물량을 수출하지 말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대중국 반도체 전쟁에 한국 기업들을 참전시켜 미국 반도체 기업 압박에 나선 중국에 보복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미국의 요청으로 인해 국내 반도체 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백악관의 요청은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 DC를 방문하는 민감한 시기에 나왔다”며 “미국이 인도·태평양 안보 지역에서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국과 협력해왔지만, 동맹 국가에 자국 기업을 움직여달라고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매출액 308억 달러 가운데 25%를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 올린 마이크론은 중국의 안보 심사가 제재로 이어질 경우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이번 사안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중국이 마이크론을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칠 지렛대로 쓸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요청에서 비롯됐다고 FT에 전했다. 그는 “(이번 요청은)미국이 자국이나 동맹국 기업을 겨냥한 어떠한 경제적 강압도 동맹, 파트너와 공조할 것이라는 점을 중국에 보여줌으로써 중국의 노력을 좌절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FT는 “한국 정부가 경제안보 의제를 내세워 동맹국들을 집결하려는 미국의 노력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확장억제뿐 아니라 첨단기술동맹 등 해결 과제가 많아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에 상당 규모의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어 큰 파장이 예상된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진위 파악에 집중하면서도 “아직 정부로부터 요청받은 사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 업계에서는 상황의 진위조차 알 수가 없다”면서 “(미국 정부의 요청이) 사실이라면 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는 반응도 나온다. 범용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굳이 국내 기업들이 마이크론의 공백을 채우지 않더라도 시장에서 쉽게 제품을 구할 수 있어 중국 압박 카드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이날 장중 1% 이상 내렸다.

황혜진·임정환 기자 bes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