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가치외교 비판하는 ‘엉터리 진보’

  • 문화일보
  • 입력 2023-05-30 11:39
  • 업데이트 2023-05-3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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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자유·인권 가치와 진보 지향성
상충 아닌데 尹 가치외교 비판
중·러 시장 잃게 된다는 논리

일제 침략도 정당화할 위험성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가
웅비 배경이고 국익과도 일치


윤석열 대통령을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는 ‘자유’다. 각종 연설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몇 번 썼는지 헤아려 보는 것은 이제 언론의 루틴이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35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33번, 유엔총회 데뷔 연설에서 21번, 3·1절 기념사에서 8번, 미국 의회 연설에서 최다 46번 등 정부 출범 이후 1년 동안 연설마다 등장한 자유라는 단어는 총 509회라고 한다. 경제(557회), 국민(532회)이라는 단어만큼 많이 사용한 용어이니 윤 대통령이 자유라는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가치는 자유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인권·민주주의·법치와 같은 이른바 보편가치이기에 대통령은 틈만 나면 국내외에서 이를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자유와 보편가치 강조에 대해서 이른바 진보 언론과 학자들이 외교의 영역에서 날 선 비판을 하고 있다. 진보라는 지향성과 자유라는 보편가치는 상극이 아닐지언정, 이들은 외교의 영역에서 자유를 강조하는 ‘가치외교’를 하게 되면 많은 권위주의 국가가 등을 돌리고,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큰 시장을 잃어 국익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같은 자유 진영의 미국, 일본, 유럽도 중국·러시아와 회색지대에서 딜을 할 텐데 순진하게 우리만 가치외교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충고한다.

언뜻 들으면 국제정치를 통찰하는 매우 현실적인 진보의 외교 원칙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사실 매우 작위적이고 폭력적인 과거 제국의 국제정치관에 지나지 않는다. 즉, 국가 간의 관계는 사람 간의 관계와 달리 도덕과 가치보다는 계산과 힘이 지배한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이른바 진보 세력이 지금도 뜨거운 가슴으로 비판하는 일본의 제국주의가 바로 저 논리에서 정당화됐고, 당시 계산에 빠른 조선의 위정자들은 나라를 힘센 제국 일본에 팔아넘겼다. 수많은 생명과 수많은 사람의 자유와 인권이 말살되는 국제정치인데도,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우리 정부에 너무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지 말고 계산적으로 살라고 훈계하는 초현실적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국내 사회과학계에서는 아직 아무도 던지지 않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역사상 한 번도 대륙과 해양을 웅비하며 제국을 건설해 보지 못했던 우리가 어떻게 지난 40, 50년간만은 예외적으로 세계를 헤치고 다니면서 선진 강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게 됐을까’이다.

이에 대한 답은 복합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우리가 세계시장에서 마음껏 활약할 수 있도록 한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질서에 있다. 자유롭고 개방된 세계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전 국제 질서에서는 척박한 좁은 땅에서 강대국 눈치를 보면서 어렵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게 우리의 역사다. 그만큼 국제정치에 있어서도 ‘자유’ ‘개방’ ‘법치’라는 가치가 중요한 것이고 그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질서야말로 지금 우리의 국익에 직결된다. 제국의 질서는 사라지고 보편가치의 질서로 국제정치는 진보했는데, 진보 세력은 보편가치에 대해 겉치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질서에서 세계 2위의 강대국으로 발전한 중국은 다극화라는 이름으로 국제 질서의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자기 완결적인 중국 중심의 닫힌 경제권을 구상하면서, 주변국을 자국의 시장 안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시장을 통한 세력권의 형성이며 추격 국가에 대한 사다리 걷어차기다. 위협도 안 되는 대만에 무력을 불사하고 통일한다고 선언했다. 호주·미국·캐나다 등지에서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드러나고 있고, 우리의 자유에 위협을 가하는 북한의 핵 개발을 방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군사대국 러시아와 세계 2위의 강대국인 중국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흔들고 있다.

우리 정부가 주창하는 가치외교는 조지 부시 행정부 때 미국 네오콘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던 그런 가치외교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자유와 보편가치, 그리고 국익을 지키는 매우 현실적인 외교다. 그 내용과 추진 방법이 아직 체계적이고 세련되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문제의식과 방향은 역사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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