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평행세계 속… 이름·시대·시작점 같은 4명의 주인공[북리뷰]

  • 문화일보
  • 입력 2023-11-2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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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3 2 1
폴 오스터 지음│김현우 옮김│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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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폴 오스터(사진)가 국내에 10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자,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평생을 기다려 온 것만 같다”고 고백한 책이다.

1947년 3월 3일 미국 뉴저지 교외에서 태어난 아치 퍼거슨의 삶을 탄생부터 청년기까지 세밀히 그려낸 성장소설인데 많은 부분에 오스터의 삶이 녹아 있다. 작가는 퍼거슨보다 한 달 빠른 1947년 2월 3일에 태어났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금세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어느 부분에선 화재로 사망한 퍼거슨의 아버지가 어느 부분에선 멀쩡히 살아 있기 때문.

‘4 3 2 1’엔 모두 4명의 퍼거슨이 등장한다. 이름도 같고 같은 시대에 살며 같은 시작점을 지닌 퍼거슨이지만 각기 다른 네 갈래의 삶을 살아간다. 퍼거슨의 탄생 이전을 이야기한 부분을 제외하고 유년기를 다룬 1부분부터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을 다룬 2부분, 20대의 이야기를 다룬 7부분까지 모두 네 가지 버전으로 나란히 펼쳐진다. 어떤 퍼거슨은 손가락 두 개를 잃고, 어떤 퍼거슨은 날마다 친구들에게 얻어맞고, 또 어떤 퍼거슨은 불의의 사고로 죽어 이후의 이야기가 없다. ‘평행세계’와 비슷한 설정이다.

오스터는 방송 등을 통해 ‘4 3 2 1’을 쓰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을 밝힌 바 있다. 사고로 사망한 ‘퍼거슨-2’의 이야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데, 14세의 작가가 청소년 캠프에 참가해 친구들과 숲속을 하이킹하던 때 바로 옆에 있던 친구가 벼락을 맞고 숨을 거둔 일이다. 그때 이후로 오스터는 언제 닥쳐올지 모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소설엔 삶의 가능성만큼이나 죽을 수도 있었던 순간, 죽음의 목격, 너무 이른 죽음, 즉 죽음의 가능성이 가득하다. 제목도 ‘1 2 3 4’가 아닌, 한 명씩 줄어드는 ‘4 3 2 1’이다. 오스터는 우리가 언제나 삶과 죽음의 가능성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신은 어디에도 없다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삶은 어디에나 있고, 죽음도 어디에나 있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그렇게 합류한다.”(2권 731쪽)

네 명의 퍼거슨의 이야기를 다 읽은 후 우리는 그중 한 명의 퍼거슨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퍼거슨이 하나로 뒤섞인 어떤 인물의 삶을 보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생각해볼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 선택하지 않은 길, 함께하는 사람, 잃은 사람. 현실과 후회와 가능성이 혼재한 채 이 모두와 함께하는 게 내가 아닐까 하고.

1·2권을 합쳐 1500쪽이 넘는 분량의 책에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집안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부터 바로 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테니 말이다. 전 2권(각 808·744쪽), 각 2만20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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