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행동 늦된 나영이… 기초수급 엄마는 치료비 없어 2년을 흘려보냈다[가난한 ‘금쪽이’ 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 문화일보
  • 입력 2023-11-27 10:34
  • 업데이트 2024-01-0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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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김유종 기자



■ 가난한 ‘금쪽이’ 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 (1)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다

5세 되기 전 이상 감지했지만
가족 4명에 소득은 月150만원
초등 입학해서야 첫 검사 받아

언어·인지치료 등 받고 있지만
지원 끊기면 중단해야 할 위기

혼자 못 둬 일하러 못가는 엄마
“아이 잘못에 가난한게 아니니
교육·치료 평등하게 받았으면”


“우리 나영이, 조금만 더 빨리 치료했다면, 지금처럼 힘들어하진 않았을 텐데….”

나영이 엄마가 나영이를 ‘다르다’고 인식한 것은 5살도 되기 전이었다. 딸은 유독 또래보다 늦었다. 5살이 되서야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간단한 국어·수학 문제를 푸는 데도 또래 친구들보다 3∼4배의 시간이 필요했다.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다 = 엄마는 나영에게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병원으로 향할 수 없었다. 경제적 이유에서였다. 4인 가족인 나영이네의 가계수입은 외벌이인 아빠의 월급 150만∼200만 원뿐이었다. 월세로만 90만 원이 나갔다. 엄마는 한 ‘맘카페’를 통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교육청 지원으로 심리검사와 치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영이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교육청 지원으로 처음 검사를 받았다. 나영이의 정신건강을 의심한 지 2년 만이다. 나영이는 여러 번의 추가 검사를 통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경계선 지능장애(지적장애 수준은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지적능력) 진단을 받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던 ‘정보’ = 엄마는 나영이의 치료를 위해 미루던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했다. 다른 사람이 낸 세금을 사용한다는 생각에 힘든 생활에도 신청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주민센터, 구청, 교육청, 학교 등에도 기초생활수급자로서 받을 수 있는 지원들을 알아봤다. 일부 담당자들은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아무것도 없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영이 엄마는 “아이의 치료를 지원해주는 정책이 있냐고 물으면 대부분 잘 모르고 있었고, 먼저 알려주는 곳도 없었다”며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가정의 경우, 삶이 바쁘고 모르는 게 많다 보니 정보를 직접 알아보는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나영이는 엄마가 직접 발로 뛰며 지원책을 알아본 덕에 현재 교육청이 제공하는 주 1∼2회의 인지치료, ‘아동청소년심리바우처’를 통해 주 1회 언어치료, 초록우산의 후원을 통해 주 1회 미술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 중단의 두려움 = 나영이는 1년 남짓한 기간의 치료를 받으며 이전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지금도 한글을 완전히 떼지 못했다. 시계로 시간을 읽는 것도 힘들어한다. 청각적 집중력이 약해 선생님, 친구들이 하는 말을 잘 놓치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지적받는 일이 잦다. 친구들이 놀리거나 때려도, 의중을 파악하지 못해 적합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나영이 마음속에는 억울함과 우울한 감정이 계속 쌓였다. 폭식증으로 이어졌고, 소아비만과 성조숙증까지 왔다. 엄마는 나영이가 올해 6월 지역 내 기초건강복지센터를 통해 받은 종합심리평가서를 읽고 한참을 울었다. 나영이의 고통과 외로움을 선명하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직접 문장을 완성해 아이의 심리 상태를 알아보는 ‘문장완성검사(SCT)’에서 나영이는 ‘내가 좀 더 나이가 많다면, 나쁜 아이들 훈나어’ ‘남자 아이들은 악마’ ‘내가 만일 동물로 변할 수 있다면, 싫은 아이들 먹기. 왜냐면 나프니까’라고 적었다.

◇치료는 장거리 지원은 단거리 = 문제는 ‘앞으로’다. 당장 내년부터 치료 공백이 생긴다. 심리치료 비용을 지원하는 아동청소년심리바우처는 올해 처음 받게 됐는데, 내년 연장 심사를 받아야 한다. 연장되더라도 최대 2년까지만 사용이 가능해 내후년은 받을 수가 없다. 미술심리치료 역시 1년 후에는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현재는 여러 지원 덕분에 치료 비용이 한 달에 10만 원 정도이지만, 기초수급 가정으로서는 이마저도 부담일 때가 있다. 나영이 엄마는 “지금 지원이 끝나면 치료를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울먹였다. 엄마는 치료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나영이가 차가 오는지 살펴보지 않고 길을 건너거나 쉽게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포기했다. 나영이 엄마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낸 세금을 받아 기초수급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잖아요. 자신들의 탓으로 가난한 게 아니잖아요. 아이들 누구든 평등하게 교육과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정신건강 문제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학교나 지역사회가 꾸준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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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두 아이, 12년 동안 치료비 1억1290만원 썼네요”

■ 남매 완치 시킨 김정현씨

정년보장 직장 관두고 매달려
아들 ‘인서울 대학’ 까지 보내

“형편 넉넉한데도 비용 부담돼
국가가 장기적인 지원해주길”


“12년 동안 1억1000만 원이 들었네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나 싶습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던 남매. 엄마 김정현(46·사진) 씨는 올해 초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로부터 ‘치료 종결’을 들었다. 처음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간 지 12년 만이다. 김 씨는 “‘승민(아들)이는 이제 병원 안 와도 됩니다’ 그 말 한마디를 듣는 데 12년이 걸린 거죠. 매주 가던 병원에 갈 일 없는 요즘이 저에게는 꿈같아요”라고 말했다.

아들이 ‘남들과 다르다’고 느낀 건 5살 때 다른 친구 얼굴에 상처를 내면서다. 어렸을 때부터 정신이 없고 부산스러워 키우기 힘들었지만,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준 것은 처음이었다. 바로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고, ADHD 진단을 받았다. ADHD라는 병명도 익숙지 않았지만, 김 씨는 즉시 아이에게 약을 먹였다. 약 부작용이 생겨 잠깐 복용을 멈추고 대체요법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아이의 흥분이나 주의력 부족을 개선시키는 데는 소용이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때 김 씨는 ‘치료 종결이 될 때까지 절대로 치료를 멈추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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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 씨는 오로지 두 자녀의 치료에만 매달렸다. 승민이의 치료를 진행하던 중 딸 윤아도 저장강박 증세를 보였고, 역시나 병원에서 ADHD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위해서는 놀이치료, 미술치료, 사회성치료, 심리상담 등이 필요했다. 김 씨는 당시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두 아이의 치료를 위해 사직서를 냈다. 직장을 포기하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반복되자 자연스레 우울증이 생겼다. 김 씨는 아이를 치료하면서 느꼈던 답답함이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DHD 학부모 자조모임’을 만들어 다른 부모들과 어려움을 나눴고, ‘대한ADHD지원협회’를 만들어 이들과 함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는 두 아이의 ADHD 치료기를 담은 책을 냈다. 김 씨는 “충분한 치료와 관심만 있다면 ‘금쪽이’도 잘 클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계속 알리고 싶다”며 “하지만 이러한 일을 저 같은 개인이 아닌, 국가가 해준다면 더 든든할 것”이라고 말했다.

꾸준하고 지속적인 치료 끝에 승민이는 올해 성인이 됐다. 컴퓨터를 좋아하던 적성을 살려 ‘인서울 대학’에 입학했다. 예체능에 두각을 보이던 윤아도 원하던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여전히 두 아이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편이다. 그렇지만 이전과 달리 자신의 상태를 알고,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줄 안다. 친구도 많이 생겼다. 건강한 학생·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 씨는 “아이들이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 씨 가족처럼 모두가 아이의 치료를 위해 큰 비용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 씨는 “우리는 다행히 금전적으로 부족하지 않아 최대한 아이의 치료를 지원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아이들의 차도가 없거나, 지출이 많은 날에는 비용이 부담스러웠다”며 “여유롭지 못한 집에서는 돈 때문에 아이의 치료를 중단하거나, 아예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정신질환 치료라는 것이 6개월, 1년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가에서 장기적인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조율 기자 joyu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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