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소통 혁명’ … 첫 주인공은 고래가 된다?[북리뷰]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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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돌고래 무리 중 한 마리가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을 돌아보고 있다. ‘고래와 대화하는 방법’에 따르면,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과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나눌 첫 번째 동물은 고래다. ⓒ Daniel Torobekov·에이도스 제공



■ 고래와 대화하는 방법
톰 머스틸 지음│박래선 옮김│에이도스

향유고래, 몸의 4분의 1
소리 내고 듣는 데 사용
바다에서 살아남기위해
무리따라 ‘노래’ 로 대화

드론·수중음향 센서로
고래 소리 녹음·분석
‘동물과 소통시대’ 앞둬

인간만 말할 수 있다는
오만 깨고 교감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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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 바다에 사는 포유류, 때로 맥없이 학살을 당해 그 처참한 광경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오랜 세월 도시를 밝히는 기름으로, 기계를 돌리는 윤활유로 인간 사회를 지탱해 온 동물…. 고래에 대한 우리 대부분의 지식과 감각은 여기서 더 나아간 적이 없다. 그리고 아마도 더 나아갈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가끔 ‘바다의 신비’와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경탄하고, 종종 코앞에서 고래를 볼 수 있다는 유혹에 못 이겨 거금을 주고 관광객용 배에 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대화’라니…. 상상도 해본 적 없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인류의 미래를 위해 숲을 지켜야 한다거나, 심해를 더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매일같이 서점에 깔리지만. 꽃과 나무, 산짐승과 바다 생물 모두 인간의 친구고, 공존해야 할 지구 동료라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듣고,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고래의 슬픔에 대해, 사랑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소 ‘앞서’ 나간 듯한 제목에 마음이 뾰족해지지만, 책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더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새 마음이, 그리고 머리가 ‘몽글몽글’해질 때까지. 영국의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는 고래의 마음속에 우리와 같은 생각과 감정이 꿈틀대고 있다며, 은유가 아닌 실제 행위로서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고래 언어’ 해독을 위한 최첨단 기술과 연구, 실험 성과를 소개하고, 저자가 진행하고 있는 고래 언어 번역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설파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말보다 동물의 소리는 열등하다는 인간 중심주의와, 그래서 인간만이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인간 예외주의’를 꼬집는다.

책은 혹등고래 무리의 기운찬 점프로 인해, 미국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저자가 목숨을 잃을 뻔한 날부터 시작한다. 그 ‘사고’로 인해 저자는 고래에 푹 빠지게 되고, 21세기 고래 생물학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게 된다. 특히, 해양 포유류 학자 로저 페인이 고래의 노래를 처음 밝혀낸 후 본격화한 고래 연구가 현재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앞으로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지가 책의 핵심인데, 우리가 몰랐던 고래의 다양한 면면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묘미가 크다. 예컨대, 고래는 포유류 중 가장 다양한 소통 채널을 지녔다. 빛이 없고 광활하고, 그래서 위험한 바다에서 ‘노래’로 대화하고, 무리를 짓고, 여행하고, 번식하고, 생활하며 이른바 ‘문화’를 만들고 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향유고래는 몸의 4분의 1 이상을 소리를 내고 듣는 데 쓴다. 인간의 고막은 150데시벨이 넘어서면 파열되는데, 이들은 최대 230데시벨까지 소리를 낼 줄 안다. 고래의 노래가 수백m~수백㎞까지 울려 퍼진다는 건 꽤 알려져 있는데, 그 소리도 무리마다 다르고, 또 일종의 ‘유행’도 있어서 노래를 바꿔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고래는 정교한 소리 기관과 기능을 가졌고, 그래서 저자는 동물과 인간 사이 ‘소통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 첫 주인공이 고래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것이다.

반면, 인간을 보자. 우리는 소가 듣는 것의 절반도, 또 코끼리의 우르릉거림도 듣지 못한다. 쥐가 행복할 때 내는 소리는 인간의 가청 범위를 넘어선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맡을 수 있는 향기, 볼 수 있는 색깔, 느낄 수 있는 힘의 크기란 얼마나 제한적인가. 저자는 ‘말’ 잘하는 인간이 다른 동물의 모든 소통 채널을 소홀히 취급한다면서, 우리가 “소리 거품 속에서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현재 CETI(Cetacean Translation Initiative)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이는 바다 고래의 삶과 생태, 커뮤니케이션 이해를 목표로 추진되는 것으로, 바다 위에 드론을 띄워 고래를 촬영하고, 수중음향 센서로 고래의 소리를 녹음한다. 고래의 이동 경로와 생태를 파악하기 위해 인식표를 부착하고, 연구용 선박을 통해 고래의 배설물과 심전도, DNA와 점액까지 채취한다. 이어, 인공지능(AI)이 사진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고래의 신원을 확인하고, 생애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고래의 언어를 해독하고, 삶의 비밀을 풀고자 한다. 이 경향은 최근 실리콘밸리에 부는 열풍 중 하나인데, 여기엔 반려동물 산업이 무기 산업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한 배경도 있다. ‘동물 소통’ 연구와 기술에 거대 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없다’고 단정해버리던 현미경 이전 시대의 사람들처럼, 우리의 시각과 감각은 여전히, 얼마나 편협하고 모자란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을까. 그러니, 동물 소통 기술의 최전선에서, 저자와 함께 고래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워 보는 건 ‘옳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다. 고래의 노래를 듣는 일, 고래의 마음을 읽는 일. 즉, 인간의 오만을 깨는 일이야말로 동물과 지구, 이 지구에 사는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첫걸음이니까. 436쪽, 2만3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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