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권리장전 성공을 위한 3大 제안[문화논단]

  • 문화일보
  • 입력 2024-01-0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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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디지털 신질서에 대한 국제적 표준을 선점하려는 세계 각국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류의 보편적 번영을 위한 디지털 기술에 대한 가치와 규범 정립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정부의 노력은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너무 모범적인 내용만을 담은 까닭일까? ‘디지털 권리장전’이 기대만큼 큰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디지털 권리장전의 성공을 위해 다음 3가지 제안을 해 본다.

하나, 디지털을 빼고 읽어 보라. 디지털 권리장전에서 디지털을 빼고 읽어 보라니 역설적인 제안이다. 디지털이 불러일으키는 큰 오해 중 하나는 디지털로 인한 새로운 윤리, 가치와 규범이 지상 최대의 과제처럼 과장된다는 점이다. 디지털 권리장전의 대원칙에서 ‘디지털’을 빼고 읽어 보자. (디지털 환경에서의) 자유와 권리 보장, (디지털에 대한) 공정한 접근과 기회균등,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사회, 자율과 창의 기반 (디지털)혁신 촉진, 인류 후생의 증진은 디지털이 없더라도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와 규범이다. 우리가 촉구해야 하는 것은 인류가 추구해야 할 이 보편적 가치와 지금까지 구현할 수 없었던 공동 번영 사회를 디지털을 통해 어떻게 제대로 이뤄낼지에 대한 고민이다.

둘, 디지털을 배우고 이야기하라. 디지털 권리장전을 기초로 새로운 가치와 구체적인 규범을 만들어 내는 더 어려운 일이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작업을 진두지휘해야 할 지도자들이 디지털 기술의 미래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살피고 있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지난해 9월 13일 척 슈머 미국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개최된 인공지능(AI) 인사이트(Insight) 포럼에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순다르 피차이, 샘 올트먼, 일론 머스크 등 22명의 디지털 기술 기업 리더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미국 정치 지도자들은 7시간이 넘게 디지털 기술의 미래와 전망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는데, 앞으로 8차례 이상 개최될 것이라고 한다. 국회 토론회 행사의 짧은 환영사와 사진 몇 장, 의정 활동용 장식품으로 AI에 대해 몇 마디 얹기보다 열심히 배우고 고민해야 할 때다.

셋, 디지털 권리장전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언어로 기술돼야 한다. 디지털 권리장전의 성공은 얼마나 많은 시민의 참여와 공감대를 끌어내느냐에 달렸다. 비록 디지털 권리장전이 정부 주도로 작성됐다 하더라도 시민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디지털 권리장전을 재해석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나 소수 전문가가 중대한 원칙을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방식은 오늘날엔 어울리지 않는다. 디지털 권리장전은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가볍고 유연해야 할 뿐 아니라, 시민들이 자유로운 언어로 다시 기술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열어 둬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시대’ ‘디지털 심화시대’의 성격을 철학적으로 풀어보면 ‘메타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는 ‘함께’와 ‘너머’의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함께’는 ‘인간과 기술의 공존을 모색해야만 하는 시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고, ‘너머’는 ‘기술이 인간 반성적 사유의 한계를 초월하는 시대’로 그 뜻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권리장전 발표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인간과 기술의 공존을 모색하고 기술이 인간 중심적으로 발전하도록 규범을 만들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다. 이 중요한 일에 더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참여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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