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념대결 넘어 정책 대전환의 場… ‘자유로서의 발전’ 비전 절실[Deep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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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주의 Deep Read - 정책변동과 한동훈의 과제

경제·사회제도, 삶을 제약하는 질곡으로 작용… 노동·공공부문 등 개혁통한 위기 극복 필요
사회통합·경제발전 위한 역사적 갈림길… 한동훈, 자유의 확장 위한 정책 경쟁 이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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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이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전략으로 윤석열 정부가 지난 1년 반 동안 수행한 국정에 대한 ‘정권심판론’을 내세우면서 대장동·김건희 등 쌍특검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586 운동권의 ‘특권정치 청산’을 총선의 가장 큰 쟁점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대한민국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국가 정책의 대전환과 여야 정치권의 정책 경쟁이다. 현재의 경제체제나 사회제도가 모두 국민의 생활을 제약하는 질곡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자유로서의 발전’(development as freedom)이라는 새 비전의 제시가 절실하다.

◇시대가 변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정치를 지배해 온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권력 경쟁은 유효 기간이 오래전 만료됐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두 정치세력 간의 대결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더욱 과격해졌고, 이에 따라 정치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은 더욱 심화했다. 많은 국민이 어떤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부동층 유권자이거나 정치인이라면 질색하는 혐오론자가 됐다. 이번 총선의 향배는 과거의 기득권 정치 청산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제시해 중도·부동층 유권자의 표심을 가져오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나아가 이번 총선에서 청산해야 할 것은 기득권 정치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의 경제·사회를 이끌어 온 경제 성장 일변도의 사고방식이다. 사회 통합과 경제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새로운 정책 구상이 절실한 상황이다.

거대한 파고로 몰려오는 저출산·초고령 사회와 인공지능(AI)·로봇의 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 시대에 오직 사람이 참고 희생하는 경쟁과 성장 일변도 정책은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특히 집권여당의 인식과 대응이 중요하다. 한동훈 위원장은 통합과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는가.

피터 홀(Hall) 교수의 ‘정책변동’ 이론에 따르면, 사회가 더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난관에 봉착했을 때 기존의 관점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정책을 조정하거나 수단을 교체하는 수준의 변화가 아닌 아주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기존 사고방식의 폐기를 요구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노동당 정부가 채택한 개입주의 경제정책을 폐기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정권을 탈환하고 경제와 공공부문을 개혁해 영국의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바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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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서의 발전

이러한 시각에서 한동훈 비대위의 정책 구상을 살펴보자. 먼저 한 위원장이 ‘동료 시민’이라는 표현을 반복해 사용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또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을 하면서 정치인이 쓰는 ‘여의도 사투리’가 아니라 동료와 친구 사이에 쓰는 일상의 대화체를 썼다. 목청 높여 구호를 외치는 운동권 정치인과는 전혀 다른 생활인의 모습이다. 물론 이는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는 정치인의 스타일일 뿐이며 실질적인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대위원 구성을 보면 경쟁 중심의 기존 정책과 차별적 성격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 의원을 비롯해 보육과 교육 분야에서 실무경험이 많은 비대위원, 노인 의료분야 전문가도 비대위에 포진해 있다.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윤도현 비대위원이다. 그는 과거 18년간 보육원 생활을 마치고 갑자기 마주한 사회에 막막함과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자신과 같은 보호 종료 청년들을 위해 자립 청년 지원단체를 꾸려서 운영하는 21세의 청년이다. 이 같은 인적 구성에서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사회 통합을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 이런 인선이 저출산·초고령화로 인해 초래되는 심각한 사회적 변화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정책 구상을 제시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한동훈 비대위가 새로운 구상으로 사회통합을 추구하고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려 한다면 다음 세 가지의 발상 전환적 주장에 적극적으로 답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아마르티아 센(Sen)의 ‘자유로서의 발전’ 개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는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에 필요한 국가정책의 대전환, 그리고 정책 경쟁의 내용과 방향을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

◇정책 전환

첫째, 어린아이는 가장 중요한 공공재다. 어린아이의 양육은 부모만이 책임지는 사적인 의무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양육해야 하는 일이며, 그 가운데서도 기업과 고용주가 책임을 함께 해야 한다. 지금까지 출산 장려 정책은 주어진 근로조건에서 일과 출산·양육이 양립할 수 있도록 보조적 지원을 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는 출산과 양육의 필요에 따라 기업과 고용주가 근로조건을 맞추는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청년들의 창의적 도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패 뒤에 다시 일어서도록 청년을 뒷받침해 주는 제도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대부분 청년은 안정되고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직장을 원하고, 결국 대학입시는 물론 이후 또다시 치열한 입시경쟁에 내몰린다. 그 결과 경제에 필요한 균형 있는 인력 배분에 실패하고 국가 경쟁력은 쇠퇴한다. 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 않고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다양한 교육·훈련기관과 벤처 ‘샌드박스’를 대학과 기업, 사회단체에 설치해야 한다.

셋째, 노인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지금의 고령 인구는 과거와 다르게 적극적인 노동 의지와 근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노동에 참여하는 한국의 고령 인구 비율은 OECD 국가 평균을 훨씬 넘어선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는 그들을 노인으로 상정하고 오직 저숙련·저임금 일자리만 제공하기 때문에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정년제도의 폐지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 고령 인구가 정당하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개혁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러한 정책 기조 위에서 기초연금,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 갈림길

대한민국은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가는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이번 총선은 대한민국이 사회 통합과 경제 발전을 함께 추구하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한동훈 비대위는 새로운 구상과 정책으로 이러한 역사적 임무에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용어설명

‘자유로서의 발전’은 진정한 발전의 목표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장에 있음을 규명한 아마르티아 센 교수의 책. 경제학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센은 아시아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

‘정책변동’이란 정책 목표나 정책 수단에서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는 것. 피터 홀이나 토머스 쿤에 따르면 사회의 주요한 이데올로기의 변화 혹은 패러다임 시프트가 이뤄질 때 정책변동이 생김.

■ 세줄 요약

시대가 변했다 : 오래 한국 정치를 지배해 온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권력 경쟁은 유효 기간 끝나. 시대가 변하면 정책목표나 수단의 단순한 교체를 넘어 기존 사고방식의 폐기를 동반하는 획기적인 정책변동이 요구됨.

자유로서의 발전 : 이 같은 정책변동의 시기에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국가정책의 대전환을 이룰 정책 경쟁을 시작해야. 특히 아마르티아 센 교수가 제시한 ‘자유로서의 발전’ 개념을 되새길 필요.

정책 전환 : 지금은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가는 역사적 갈림길에 있어. 한동훈 체제는 저출산·초고령화로 인한 사회 변화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는 새 정책 구상 내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