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총선마다 ‘친북인사 지원’ 지령… 86운동권, 경제동력 깎아먹어” [M 인터뷰]

  • 문화일보
  • 입력 2024-02-16 09:33
  • 업데이트 2024-02-1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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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용퇴론에 휩싸인 86운동권에 대해 김영환(61)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13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1980년대에 형성돼 있던 사고방식이나 정치문화, 관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백동현 기자



■ M 인터뷰 -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국내 북한 지하조직 남아 있을 것
선거철 아닌 평소에도 공작해와

유럽선 좌파가 북한 인권 더 관심
‘인권 지적은 적대시 위한 도구’
野·진보세력 왜곡된 인식 우려
북한 고통받는 주민들 직시해야

북한, 미사일 실험 요란하지만
전쟁 운운은 진정성 없는 얘기


인터뷰 =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정리 =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소련 붕괴 직전이던 1991년 5월, ‘강철서신’ 저자 김영환은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돌아와서는 반체제 지하정당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조직했다. 33년이 흐른 2024년, 김일성은 죽고 아들과 손자에 이어 증손녀 김주애의 4대 세습이 진행되고 있다. 체제에 저항하던 운동권은 어느덧 정치권 주류이자 기득권이 됐고,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청산론’ 논쟁까지 뜨겁다. 그리고 김영환은 여전히 혁명가로 살고 있다. 다만 지금은 남한의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세계 최악의 독재체제가 유지되는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다. 2012년엔 중국에서 114일간 구금되며 고문을 당했고, 2016년엔 북한에서 보낸 요원의 암살 시도도 겪었다. 영원한 혁명가로, 투사로 살아가는 김 위원에게 북한 동향과 민주화 전망을 물었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 화두로 떠오른 ‘운동권 청산론’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북단체 활동이 위축됐다. 북한 민주화 운동은 어떻게 전개됐나.

“북한 내부와 전화 연락은 가능하지만, 코로나19 시기에 인적 교류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상당히 위축됐다. 북한 사람과 만나거나 협력사업을 하려면 중국에서 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롭게 다시 가동하려 한다.”

―최근 북한 인권 상황은.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보는 사람들, 대표적으로 한국 드라마·영화를 보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3배 정도로 강해졌다. 부패한 사회라 예전에는 한국 영화를 보다 걸려도 보위부에 뇌물을 주면 넘어갔지만, 지금은 최고위층에서 다 알기 때문에 단속 방법을 다양화하고 감시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접경지역에서 중국 통신망을 이용해 전화·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대한 단속도 강화됐다. 반면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 단순 범죄에 대한 처벌은 오히려 과거보다 약화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 언급은어떤 의도인가.

“통일을 강조해서 얻는 이익보다 손해가 크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을 통일 대상으로 보면 오히려 한국에 대한 환상이 생기면서 한국을 대안으로 보게 될 수 있다. 전쟁 운운은 진정성 있는 이야기로 보지 않는다. 남북 간 무기 격차가 심한데 포탄 등 무기를 러시아에 팔고, 최근 5년간 군사비행장 3개를 없애버리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채소 생산을 했다. 군수공장에서 농기계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당장 전쟁 준비에 매달려도 격차가 심각한데 그런 짓을 하느냐는 인식이 군 간부들 사이에 있을 것이다. 그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미사일 실험을 요란하게 하고, 공개회의에서 전쟁 불사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다.”

―김주애를 김정은 후계자로 보나.

“북한 매스컴에 나오는 행태를 보면 후계자로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러나 사춘기를 거치며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장담하기 어렵고, 김정은의 마음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왜 서두르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병 가능성도 있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 지도자를 내세우려면 장기간 노출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최근에도 ‘창원 자주통일민중전위’ ‘제주 ㅎㄱㅎ’ 등 간첩단 사건이 있었다. 국내에 북한 추종 지하조직이 남아 있을까.

“그렇게 보고 있다. 그런데 사실 북한에서 대남 지하공작 관련 인력이나 예산이 줄어 왔고 위상도 격하됐다. 김정은이 2010년대 중반 대남 지하공작을 격려하는 훈시를 한 뒤 한때 활성화됐고 동남아 거점 대남공작도 본격화했는데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가 없었고 그나마도 검거됐다. 인력이나 예산 지원은 계속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입장에선 가치가 있어야 돈을 대주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

―북한 체제 변혁이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수 있을까.

“냉정하게 볼 때는 단기간에 가능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북한 체제는 아주 특수한 체제이기 때문에 지도자 한 사람에게 권력과 권위가 몰려 있고, 2인자를 키우지 않는다. 지도자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혼란이 커질 것이다. 지금은 사실 김여정이나 김주애, 김정철을 내세우기도 쉽지 않다. 결국은 간부들끼리 내전을 벌이게 될 수도 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하기 어렵다.”

―1990년대 국내 선거에 북한 공작금이 지원됐다고 증언했다. 4월 총선에도 개입할까.

“북한은 총선 때마다 개입해 왔다고 본다. 선거가 임박해 개입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 지령을 내려서 조직원이나 영향력을 미칠 만한 사람이 당선되도록 공작한다. 개입은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 대북 정책을 평가하면.

“사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지 않나 생각한다. 지난 정부에서 북한에 대해 예의를 갖춰 정중한 태도를 보였는데도 미·북 정상회담이 실패한 뒤 북한은 굉장히 적대적인 자세를 취했다. 북한의 관심사는 제재 해제인데 우리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남북 교류나 경제협력에는 관심이 없다. 약간의 경제적 이득이 있더라도 사상적 영향이 너무 크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임금 책정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진보 진영은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데.

“민주당 국회의원이나 강성 지지층은 북한 인권이란 개념이 왜곡된 인식에서 나온 프레임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동포에 대한 애정이나 남북 관계 개선이 아니라 북한을 적대시하기 위해 인권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선입관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최근에는 진보 성향, 특히 20·30대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북한 인권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유럽에서 인권 관련 회의를 하면 좌파가 오히려 북한 인권에 관심이 많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더는 1980년대식 관점에서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북한 인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면 한다.”

―운동권 청산론을 어떻게 생각하나.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훈장처럼 생각하고 기득권을 누렸다면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청산이 가능한지에는 의문이 있다. 워낙 운동권 인적 저변이 광범위하다. 운동권 핵심 멤버라도 학생회에 가담하거나 형사처분을 받지 않았으면 외부에서 알 수 없다. 민주당 국회의원의 최소 반수 이상은 운동권 출신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청산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운동권 출신이 아니면서 그만큼 열정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민주당에 많이 들어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다만 1980년대에 형성돼 있던 사고방식이나 정치문화, 관성은 극복하려 노력해야 한다.”

―운동권 사고방식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면, 운동권의 유산은 무엇인가.

“대표적인 것은 북한을 바라보는 사고방식, 미국을 보는 관점이다. 북한을 볼 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좌파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다. 동북아시아 20억 가까운 인구 중 가장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인데, 애정이나 연대의식이 없다면 좌파라 하기 어렵다. 좌파라면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연대의식에서 출발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조국 사태’처럼 서로 허물을 덮어주는 태도도 운동권 사고에서 비롯됐나.

“그런 면이 있다. 당시 운동권 내부에도 문제가 많았을 것 아닌가. 그런 걸 드러내는 것은 결국 군부 독재에 유리하다는 논리 때문에 덮어주기에 급급했다. 조국 사태에도 역시 그런 논리가 등장했다. 자신과 반대 위치에 있으면 무조건 독재, 적폐, 수구세력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옛날식 습관이다. 기업에 대한 태도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민주당이 완전히 반기업이라 보지는 않지만, 집권을 여러 차례 했으니 기업이 한국 사회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알 텐데 너무 기업 친화적이지 않은 정당 아닌가. 모든 의원이 그런 입법에 찬성하는 건 아닐 텐데, 누군가 목소리를 세게 내면 반대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

―운동권의 공과를 따진다면.

“공이 있다면, 한국 사회가 사실 더 극단적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흐르지는 않았다. 이석기(전 의원) 등 소수의 움직임 외에는 테러나 무장봉기 등이 없었다. 운동권 세력의 범위나 영향력, 과격성이 1980년대 중반 기준으로 대단히 강했는데 극단으로 가지 않고 유연하게 넘어온 것 아닌가 생각한다. 부정적 측면은, 한국의 경제적 발전 동력이 약화하는데 기업 규제를 가하는 법안을 자꾸 만들다 보니 동력이 더 약해지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다. 북한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야 하는데 혼란을 조성했다는 측면에서도 부정적 역할을 했다.”

■ 김영환 위원 프로필

‘강철’이란 필명으로 알려진 김 위원은 1986년 강철서신으로 북한 주체사상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인물이다. 1991년 밀입북 후 국내에 지하당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조직해 활동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주체사상에 회의감을 품고 1997년 민혁당을 해체, 1999년 구속된 뒤 풀려나 북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1963년 경북 안동 △서울대 공법학과 △구국학생연맹 총책 △반제청년동맹 중앙위원 △조선노동당 당원 △민혁당 중앙위원장 △푸른사람들 회장 △시대정신 편집위원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준비하는미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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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신당에 대한 소회

“ ‘82학번 동기’ 조국… 이젠 다 내려놓고 편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을 만난 1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인터뷰 마지막 질문으로 조 전 장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김 위원은 “동기로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고 주저했지만, 이내 “개인적으론 안쓰럽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대학 입학 후 42년, 그들의 인생은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 김 위원은 강철서신으로 대학가에 주체사상을 전파한 ‘주사파 대부’에서 북한 민주화에 몸 바치는 운동가가 됐다. 반면 조 전 장관은 진보 진영의 총아로 떠오르며 한때 대권 주자로 거론됐지만,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 등에 휘말리며 급전직하 추락했다.

김 위원은 조 전 장관의 창당 이유에 대해 “완전히 쓰러지지 않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명예회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젠 다 내려놓고 편한 마음으로 살면 좋겠다”는 게 조 전 장관을 향한 김 위원의 솔직한 생각이다. 김 위원은 “물론 (2심) 실형을 선고받았으니, 설사 총선에서 당선된다 해도 실형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나”라며 “실형을 산다고 하면 2년이지만 형기를 다 채우지 않을 수도 있고, 편한 마음으로 갔다 오더라도 예전에 내가 살 때보다 지금 감옥은 훨씬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감옥에 처음 들어간 날 뜨거운 물을 식수로 쓰라고 주더라.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완전히 얼어 있었다”며 “요즘은 난방도 되고, 여름에도 극단적으로 덥지는 않다. 조 전 장관처럼 돈이 있으면 살 수 있는 것도 많이 있고, 글 쓰고 싶으면 얼마든지 글도 쓸 수 있다. 다 내려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조재연·서종민 기자
조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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