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엄” vs “웰다잉” 끝없는 논쟁… 한국은 ‘연명의료 중단’ 만 허용[Who, What, Why]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전승훈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 What - 안락사 딜레마

전총리 부부 안락사 네덜란드
2002년에 세계 최초로 합법화

국내, 김할머니 사건 등 계기
2018년부터 ‘존엄사’ 제도화

시행 4년간 사례 20만건 달해
연명거부 서약 218만명 등록
2022년 ‘조력 존엄사’법 발의

제도 장점 인정되는 분위기속
의료계·종교계 반대입장 다수

드리스 판 아흐트(93) 전 네덜란드 총리가 지난 5일 70년을 해로한 동갑의 아내 외제니 여사와 손을 잡고 ‘한날한시’에 숨을 거뒀다. 두 사람은 23세 대학생 시절 만나 결혼했고 세 아이를 기르며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어려움이 닥친 것은 2019년 판 아흐트 전 총리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부터다. 거동이 어려워진 판 아흐트 총리 곁에는 외제니 여사가 있었지만 그 또한 노환으로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 함께 삶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안락사를 택했다.

◇고통스러운 삶 대신 ‘죽음’ 택하는 사람들 = 판 아흐트 전 총리 부부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네덜란드가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의회는 당시 “회복 가능성 없이 극심한 고통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법을 통과시켰다. 환자가 참을 수 없는 큰 고통을 겪고 있으며 치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조건이 달렸지만, 점차 안락사 기준이 완화돼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경우나 미성년자도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도 안락사를 비롯한 ‘죽음을 택할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환자가 죽음에 이르도록 약물을 투여하는 ‘안락사’는 금지하고 있지만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장치를 정지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인정하고 있다. 이른바 ‘존엄사’다.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되면서 2018년 2월부터 존엄사가 인정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전승훈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이 법은 담당 의사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중 일정한 요건을 갖춘 환자에게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연명치료 중단 외에 조력사(의사가 약물을 이용해 환자 자살을 돕는 행위)나 안락사는 위법이다.

시행 4년여 만인 지난해까지 연명치료를 거부한 사례가 20만여 건에 달했다. 2019년 12월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83세의 나이에 존엄사를 택해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을 거부한 채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기로 미리 서약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등록한 사람도 해마다 늘고 있다. 법이 시행된 2018년 한 해 동안 10만529명이던 등록자 수는 2021년 100만 명을 넘어선 115만8585명으로 10배 넘게 늘어나더니 지난달 218만9601명으로 200만 명을 돌파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5일 한날한시에 안락사를 통해 세상을 떠난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의 생전 모습. AP 뉴시스

◇‘생명 존엄’과 ‘웰다잉’ 사이 평행선 논쟁 = 국내에서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되기까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9년 김 할머니 사건 등이 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의료진이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를 가족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킨 사건이다. 이 환자는 퇴원 후 곧바로 사망해 의료진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았다. 이 사건으로 병원들은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을 계속 병원에 붙잡아두게 됐고, 환자들이 퇴원을 원해도 거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2009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던 식물인간 상태 김 할머니(당시 76세) 사건으로 상황은 반전됐다. 김 할머니 가족은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뗀 지 201일 후 사망했다. 당시 법원은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해 이뤄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써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존엄사를 합법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국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조력 존엄사’도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조력 존엄사는 환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존엄사보다 더 적극적인 개념이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2년 6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조력 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 한해 희망하는 경우 담당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의료계와 종교계는 여전히 생명을 사람의 손으로 중단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 다수다. 의료진은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따르는 치료자여야 한다”며 6개월 시한부와 말기 환자 판정이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든다. ‘참을 수 없는 고통’ 또한 치료로 경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계 또한 생명을 다루는 것은 ‘신의 영역’으로 남겨진 생을 조기에 종료시킬 권리는 인간 누구에게도 없다는 입장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수십 년간 가족을 간병하던 사람이 환자를 살해하는 사례나 중병의 고통을 참지 못해 비참한 자살이 일어나는 경우를 보면 안락사 제도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면서도 “스스로 생명을 끊을 권리를 제도화하는 방안에 대해선 여전히 윤리적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전했다.

정선형 기자 linear@munhwa.com

■ 용어설명

◇안락사 = 의료진이 환자에게 사망에 이르도록 약물 등 투약.

◇조력 존엄사 = 의료진에게 약물 처방을 안내받은 후 환자 스스로 결정.

◇존엄사 = 환자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