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가진 마음[유희경의 시:선(詩:選)]

  • 문화일보
  • 입력 2024-04-0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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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픈 날 밤중에/ 가슴에서 심장이 꿈틀꿈틀할 때도// 괜찮아/ 꿈이 있으니까 꿈틀꿈틀하는 거야/ 꿈꾸는 것은 아픈 것/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틀꿈틀/ 바닥을 네발로 기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마음’

- 김승희 ‘꿈틀거리다’(시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서점의 일상을 요약하자면 ‘고요한 가운데 번잡함’일 것이다.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하루를 보내고 밤이 오면 풀려버린 운동화 끈처럼 맥을 놓아버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즈음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애틋한 동질감을 느낀다. 김종삼의 시 ‘묵화’ 속 할머니와 소처럼 서로의 부은 발잔등을 위로하고 싶어진다.

그날 밤 찾아온 학생은 문 닫을 시간을 넘겨서까지 책장 앞을 서성였다. 잠시 후 계산대 앞에 다가선 그는 시집 말고도 작은 케이크 상자 하나를 같이 내려놓았다. “작년에 건네주신 도움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제야 그를 알아보았다. 작년 가을쯤인가. 그때도 늦은 시간이었다.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서점에 찾아왔다. 시집을 고르는 모습에서 어쩐지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 어머니 쪽을 불러 세우면서 이건 쓸데없는 참견이다 생각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향을 잃은 딸과 막막한 미래에 대한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무얼 어쩌겠는가. 그저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넸을 뿐이다.

그게 무슨 도움이었다고. 멋쩍어하면서 찬찬히 학생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일을 시작했다고, 문학을 공부한다고 말하는 학생의 얼굴이 작년과 달리 환했다. 꿈을 가진 마음의 것이다. 여전히 막막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낯빛이다. 그 맑고 밝음이 내 안으로 옮겨와 그가 떠나고도 한참 서점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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