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띤 미인의 보조개 ‘신부의 화관’ 조팝나무꽃…아스피린 원료[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 문화일보
  • 입력 2024-05-0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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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밥에서 유래된 조팝나무 꽃이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변 한옥카페 고당 뒤뜰에 곱게 피어있다. 2023년 4월9일 촬영



‘조밥’ 닮았대서 붙은 이름…서양은 ‘신부의 화관’ 명칭칭명
五月雪·미소 띤 미인의 보조개…바이엘사 아스피린의 약효 성분
조팝나무·공조팝나무·꼬리조팝나무(일본조팝나무) 구분

<소리 없이 봄이 다가 오는데/문득 이 눈물은 다 무엇이냐//외진 산밭 가에/하얀 조팝꽃/작년에도 피었는데 그냥 보냈습니다//꼭 잡지 못하고 떠나 간 손/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모두 문 밖으로 나왔습니다//하얗게 아파 옵니다/하얀 것은 다 눈물입니다>



안동 출신 김이대 시인의 ‘조팝꽃’이다. 봄에는 유독 하얀 꽃들이 많다. 팥배(나무)꽃, 이팝(나무)꽃, 산딸나무꽃, 병아리꽃 등 흰 꽃들이 핀 모습이 서럽고 애잔하게 다가온다. 시인에게 외진 산밭 가에 아름답게 핀 하안 조팝꽃의 추억은 ‘눈물처럼 하얗게 아파오는’ 기억이다.

정양자 시인은 ‘백발가’에서 ‘조팝꽃 덤불 둘러보니, 정수리부터 귀밑까지 소금꽃 염전’이라고 할 정도로 봄에 새하얀 눈이 내린 풍광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청계천변에 피기 시작하는 조팝나무 꽃. 2023년 3월25일 촬영



봄과 초여름 시기에 유독 하얀 꽃들이 더 많이 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옛날 칠판에서 찾을 수 있다. 칠판은 영어로 ‘블랙보드(blackboard)’로 ‘검은색 판’이란 뜻이지만 칠판은 사실 ‘진한 녹색’의 판이다. 요즘은 화이트보드도 많이 쓰고, 전자칠판을 쓰느라 녹색 칠판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녹색 칠판에는 하얀색 분필로 쓴 글자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같은 원리로 요즘 피어나는 하얀 꽃들은 신록에서 여름으로 갈수록 더욱 선명한 진한 녹색 나뭇잎들 사이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흰색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래야 나비와 벌을 유인할 수 있다. 이처럼 녹색 숲에서 하얀색 꽃을 피우는 현상을 색의 대비를 이용한 ‘칠판효과(blackboard effect)’라고 부른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역 인근 서울로 7017에 핀 조팝나무 꽃. 2023년 3월 25일 촬영



주택가 공터 공원 등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핀 하얀 봄꽃. 조팝나무꽃은 흰 쌀밥에 노란 좁쌀이 다닥다닥 붙은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5장 꽃잎 가운데 노란색 수술이 몽글몽글 모여 있는 모습이, 좁쌀을 지은 밥처럼 하얀 쌀알과 작은 좁쌀이 모여 있는 모양을 닮았다.

조팝나무는 줄기를 따라 하얀색 작은 꽃이 안개꽃처럼 길게 모여 난다. 흰 꽃이 잔뜩 핀 줄기가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달콤한 꿀 향기도 매력적이다. 농촌에서는 봄에 새하얗게 피는 조팝나무를 보고 모내기를 하였다고 한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돈의문박물관에 핀, 일본 개량종인 분홍색 일본조팝나무. 조팝나무 중 가장 늦게 핀다. 2022년 5월21일 촬영



동양에서는 눈에 띄는 흰 꽃잎보다 가운데의 노란 꽃술 부분에 초점을 맞춰 작명했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는 순백의 꽃잎 이미지에 주목해 ‘신부의 화관(Bridal Wreath)’이라는 우아한 이름을 붙여 대조적이다.

조팝나무 원산은 중국이다. 학명은 ‘스피리어(Spiraea)’. 조팝나무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의약품 ‘아스피린’의 원료가 조팝나무에서 추출한 살리실산이다.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은 1893년에 진통제의 명약인 아스피린을 개발해 초대박을 터뜨렸다. 지금도 연 매출 1조 원에 하루 2억 알 이상 판매되는 전무후무한 히트작이다. 아스피린이 버드나무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아스피린의 약효 성분을 합성하게 된 것은 조팝나무 덕분이다. 바이엘은 조팝나무에서 추출한 살리실산과 아세틸을 합성한 물질의 정제에 성공했다.

살리실산은 진통·해열·소염에 특효다. 애초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해 사용했는데, 맛이 너무 쓰고 자극이 강해 위에 부담을 준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를 아스피린이 말끔히 해결한 것이다. ‘아세틸(Acetyle)+스피리어(Spiraea)’를 합성해 아스피린(Aspirin)이라 이름붙였다.아스피린(Aspirin)은 조팝나무 잎에서 합성한 아세틸살리실산의 ‘A’와 조팝나무의 스피리어(Spiraea)의 Spir에서 따온 이름이다.

조팝나무는 한의학적으로 인후통을 치료하고 몸이 쑤시고 아픈 증상을 다스린다.

조팝나무와 비슷한 꽃이 이팝나무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활짝 핀 하얀 꽃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키가 큰 나무와 키가 조금 작은 나무가 비슷하게 하얀 꽃을 아름답게 피어내고 있다. 키가 큰 나무는 이팝나무이고, 키가 작은 것은 조팝나무이다. 꽃이 쌀밥같이 보인다 하여 이밥나무에서 이팝나무가 됐다.

흰 눈같이 아름다운 하얀 꽃을 4월부터 피운다고 해서 ‘사월설(四月雪)’으로도 불리는 이팝나무와 ‘오월설(五月雪)’이라 불리는 조팝나무는 초여름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하얀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이팝나무는 유소수(流蘇樹)라고 한다. 여름이 시작되는 절기인 입하(立夏) 무렵에 가장 아름답게 핀다고 해 입하수(立夏樹)라고도 불린다. 찻잎을 대신해서 차로 마실 수 있다 하여 차엽수(茶葉樹)라고도 한다. 이팝나무의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us)다. ‘치온(chion)’은 하얀 눈을 뜻하며 ‘안투스(anthus)’는 꽃을 의미하는 라틴어다. 눈처럼 하얗게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는 뜻이다.

조팝나무는 ‘소엽화’라고 하는데 미인이 미소를 지을 때 얼굴을 살짝 나타내는 보조개처럼 아름다운 꽃을 뜻한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공처럼 둥글게 뭉쳐 피는 공조팝나무꽃. 개화 모습이 가장 풍성하고 꽃도 비교적 오래 간다. 5월2일 서울 용산 삼각지 촬영



조팝나무는 꽃과 잎 모양, 개화시기 등이 개량된 여러 품종들이 등장한다. 꽃 모양과 꽃차례가 다른 사촌들이 여럿 있는데 개화시기로 보면, 4, 5월 조팝나무를 시작으로 공조팝나무, 꼬리조팝나무, 황금조합·삼색조팝 순으로 핀다.

이 중에서 공처럼 둥글게 뭉쳐 피는 공조팝은 개화 모습이 가장 풍성하고 꽃도 비교적 오래 가 생울타리나 이른 봄 포인트 조경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키가 작으면서도 잎과 꽃 모두 관상가치가 뛰어나 최근 들어 많이 보급되고 있는 품종은 황금조팝과 삼색조팝이다. 일본에서 개량돼 일본조팝나무로 통칭해서 부르기도 한다. 연중 밝은 황금색을 유지하거나 또는 연녹색, 황금색, 붉은색으로 변하며 화단에서 강렬한 포인트 역할을 한다. 키가 작고 반그늘에도 잘 적응해 실내에서 화분으로 키우기에도 적합하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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