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리더십>‘정적 기용’ 박근혜, ‘무릎 사과’ 김종인… 비대위원장 손에 달린 黨 회생

  • 문화일보
  • 입력 2022-08-22 09:41
  • 업데이트 2022-12-2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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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리더십
- 주호영號 출범으로 본 국민의힘 계열 과거 7차례 비대위 역사


현역 물갈이·파격 인사 박근혜
19대총선서 152석 압승 이끌어

약자·경제 메시지 강조한 김종인
재보궐 이어 尹대선승리 밑거름

탄핵국면 구원 김희옥·인명진은
실권 쥐지 못한채 무력하게 퇴장

黨수습·지지율회복 과제 주호영
계파 거리두고 혁신 부각 시켜야



국민의힘이 선택한 구원투수는 주호영 의원이었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잇따라 승리하고도 거듭된 내홍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집권여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은 주 의원은 특유의 ‘화합 리더십’을 발휘해 당을 위기에서 건져낼지 주목된다. 주 위원장은 내부 상황을 수습하는 동시에 지지율이 바닥 상태인 윤석열 정부를 뒷받침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지난 10년간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비대위 체제는 7차례나 만들어졌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역대 여야를 떠나 비대위가 성공했던 사례는 딱 두 가지 경우뿐”이라며 “당내 실권자가 비대위원장으로 나서거나 선거를 코앞에 두고 유력한 대선 후보가 비대위원장을 직접 모셔왔을 때로 그 외 경우는 미미한 성과를 거두거나 아쉬움만 남겼다”고 말했다. 반면에 또 다른 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밖에 안 된 상황에서 출범한 비대위인 만큼 대통령실과 안정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당을 추스르면 큰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 10년간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서 주호영 비대위의 성패를 전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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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의 모범’ 보인 박근혜 = 2011년 12월 한나라당의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대위의 모범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비대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당시인 2011년 말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참패와 당 소속 보좌진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DDoS) 공격 개입 사건으로 홍준표 대표 체제가 흔들렸을 때였다.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당색을 빨간색으로 교체하는 등 강력한 변화를 추구했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현역의원 25%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며 인적 쇄신도 단행했다. 결국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2석을 얻어 127석에 그친 민주통합당을 크게 앞서며 기사회생했다.

박근혜 비대위 체제는 비대위원 구성에서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내 인사로는 당시 직책 기준으로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 외 주광덕·김세연 초선 의원을 기용했다. 외부 인사로는 당시 직책 기준으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상돈 중앙대 교수, 조동성 서울대 교수,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를 임명했다. 김 전 수석은 비대위에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등 보수당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상돈 교수는 중도 보수 성향이면서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 과거와 단절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 그를 징계했던 이양희 중앙윤리위원장이 그때 발탁됐다. 당시 이 전 대표는 20대의 젊은 신예로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박 전 대통령은 쇄신과 파격의 인사, 경제민주화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당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았고 결국 본인이 대통령에 올라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던 비대위원장으로 평가된다.



◇실권 쥐지 못했던 김희옥·인명진 = 2016년 총선에서 ‘과반은 무난하다’던 여권 내부 예상과 달리 한 석 차이로 패배한 뒤 김무성 전 대표가 물러났고 김희옥 전 헌법재판관이 긴급하게 수혈됐다. 하지만 ‘김희옥 비대위’는 2개월 활동에 그쳤다. 김 위원장을 영입하긴 했지만 여전히 당내에서는 총선 참패의 책임을 두고 친박계와 비박계 간 갈등만 있었다. 비대위원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비박계 의원들이 배제되는가 하면, 비대위와 별개로 혁신위원회라는 조직을 꾸려 사실상 비대위가 무력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인명진 비대위’는 탄핵 국면에 출범했다. 2016년 12월 9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이정현 전 대표가 물러났고, 탄핵안 가결 20일 만인 12월 29일 민주화운동가 출신 인명진 목사가 비대위원장으로 영입됐지만 3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인 위원장은 그나마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결과물을 만들긴 했다. 기존 새누리당의 이름을 고수해서는 탄핵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인 위원장은 친박계 청산을 전면에 내걸었지만 곳곳에서 반발에 밀렸다. 친박계 핵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징계도 당원권 정지에 그치며 말뿐인 혁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족수 미달로 상임전국위원회가 열리지 못하는 상황도 겪었다. 결국 친박계의 벽에 부딪히고 비박계의 탈당 상황에 직면했다. 김희옥·인명진 위원장은 결국 실권을 쥐지 못한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부 인사를 영입했지만 전권을 부여받지 못할 경우 혁신 정책은 당내 반발에 밀려 좌초되고 결국 비대위원장이 ‘항복’하고 당을 떠나는 ‘루즈-루즈(LOSE-LOSE)’ 양상인 셈이다.

◇보수가치 재정립 노렸던 김병준 = 2018년 지방선거 참패 후 출범한 김병준 비대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10%대 당 지지율을 30%대로 올리고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려 하는 등 무난한 성과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인적 쇄신 작업이 실패하는 등 결국 당의 체질을 바꾸는 혁신은 부족했다는 비판도 함께 나온다. 김세연 전 의원은 “박근혜 비대위나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가 성공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2018년 6월 지방선거 직후 출범한 김병준 비대위가 당의 안정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음에도 남은 업적이 많지 않아 보이는 건 선거 참패 직후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 위원장이 당시 여권의 맹비난에도 불구하고 보수당의 비대위원장직을 맡았을 때 스스로 목표했던 ‘보수의 가치 재정립’까지 이르지 못한 데에는 김 위원장의 리더십 부족과 함께 지방선거 참패 후 당 상황 수습이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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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구원투수로 등판한 김종인 = 2016년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당선에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 김종인 위원장은 당의 최대 위기 순간 보수정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2020년 4월 15일 국회의원 총선에서 민주당이 위성정당까지 합쳐 180석을 얻는 동안 미래통합당은 103석을 얻는 데 그치자 당시 황교안 대표는 곧바로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심재철·주호영 원내대표의 권한대행 체제를 거쳐 6월 1일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외부 인사가 비대위원장이 됐을 때 취약한 당내 기반을 김 위원장은 전권을 부여받음으로써 어느 정도 리더십을 확립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보수 이념을 강조했던 황교안 체제의 미래통합당과 단절하고 약자·경제 메시지를 강조했다. 2020년 9월에는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광주에 가서 한 ‘무릎 사과’ 등 쇄신책은 2021년 4·7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오세훈 서울시장·박형준 부산시장의 당선과 이준석 대표 체제 출범이 향후 대통령 선거 승리의 기반이 됐다는 게 당내 대체적인 평가인 만큼 총선 참패를 딛고 전국 단위 선거에서 승리할 정도로 당 체질 개선에 성공한 김종인 비대위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화합의 리더십 주호영 제1과제는 혁신 = 주 위원장에 대해서 당내에서는 ‘무난하다’는 평이 많다. 실제 외부 인사 영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중진 의원 중 주 의원을 비대위원장 후보로 꼽은 초·재선 의원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배경에는 원만하고 합리적 성품으로, 적이 없는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히는 주 위원장 특유의 리더십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주 위원장의 리더십에 대해 한 여권 관계자는 “생각보다 상당히 보수 성향이 짙지만 소통과 화합에 소극적인 스타일은 아니다”라며 “100점은 안 돼도 낙제점도 안 받는 무난한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주 위원장이 꾸린 비대위원 면면에 대해서는 대체로 당내 화합과 통합은 염두에 뒀지만 혁신 비대위에는 부족하다는 평이다. 호남 출신인 전주혜 의원과 정양석 전 의원, 주기환 전 광주시장 국민의힘 후보가 비대위원에 포함되며 호남 지역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 아울러 최재민(38) 강원도의원, 이소희(35) 세종시의원의 발탁은 2030 세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10년 전 박근혜 비대위에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기용하고 이준석 당시 20대 청년을 비대위원으로 발탁하는 등의 ‘파격’은 없었다. 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결국 그간 비대위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비대위원장이 얼마나 실권을 쥐고 있느냐, 혹은 당내 견제 세력과의 갈등 혹은 싸움에서 이길 실력이 있느냐에 달렸다”며 “주호영 비대위는 윤 대통령, 혹은 친윤(친윤석열) 진영과 지나치게 가깝지도, 지나치게 멀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혁신 어젠다를 부각시키는 복합적인 ‘과제’를 성공시켜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대구 수성 지역구 5선… MB정권땐 초대 특임장관

주호영은…


1960년생인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구 수성갑·을 지역구에서 내리 5선을 지냈다. 경북 울진 출신으로 능인고와 영남대 법학과를 나왔다.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계파 갈등 끝에 공천에서 배제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한 초선 의원은 “가장 보수세가 강한 대구·경북(TK)지역을 기반으로 정치를 해 온 것이 주 의원의 가장 큰 자산이자 한계점”이라며 “안정적인 정치 활동의 뒷배가 되기도 하지만 혁신 어젠다를 제시하거나 정치적으로 치고 나가야 할 지점을 판단하는 데에서는 TK 출신이라는 점이 단점이 된다”고 설명했다. 주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특임장관을 지낼 정도로 정무 감각을 가진 의원으로 평가받는다. 여의도연구원장,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을 거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바른정당 당 대표 권한대행을 지내기도 했다.
민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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